⟪역사적 예수 논쟁⟫의 쟁점 정리
대럴 L. 복(Darrell L. Bock)의 《역사적 예수》(Studying the Historical Jesus: A Guide to Sources and Methods, 2002)는 보수적 복음주의 관점에서 역사적 예수 연구를 소개하고 옹호하는 입문서이자 안내서이다. 이 책은 예수의 실존성과 복음서의 신뢰성을 방어하며, 비평적 방법론을 수용하면서도 신앙적 결론을 지키려는 균형을 시도한다.
복음주의와 역사적 예수 연구의 긴장 관계
많은 사람들은 복음주의적 관점과 역사적 예수 연구가 양립 불가능한 것이라고 느낀다. 비평가들은 복음주의적 성서관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를 왜곡시킨다고 주장한다. 복음주의자들, 특히 평신도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의 회의적 접근 자체를 성경에 대한 거부로 여겨 경계한다.
그러나 저자는,
복음주의적 입장에서도 역사적 예수 연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그 가능성은 연구 목적과 한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전제할 때 성립한다고 제한한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목표와 한계
연구의 목표: 현재 존재하는 다양한 자료와 증거를 통해 가장 개연성 있는 예수상을 재구성하는 것.
연구의 본질적 한계
- 자료적 한계: 이용 가능한 역사적 자료는 매우 제한적이다.
- 시간적 한계: 1세기 문화를 완벽히 이해하기에는 시간적 격차가 너무 크다.
- 잠정적 성격: 새로운 발견에 의해 기존의 이해가 뒤집힐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 예시: 사해 두루마리의 발견으로 유대교 맥락에서 예수 이해가 크게 변화했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발전 과정
초기 연구(제1 탐구)
- 계몽주의적 배경에서 시작.
- 예수에 덧씌워진 교리적, 신학적 층위를 벗겨 '진정한 예수'를 찾고자 했다.
중기 연구(제2 탐구)
- 예수의 묘사에서 그리스적인 층위를 분리, 제거하고자 시도.
- 그러나 사해 두루마리 발견 이후, 그리스적이라 여겨진 요소가 유대적인 맥락을 가질 수 있음이 밝혀졌다.
현대 연구(제3 탐구)
- 예수를 철저히 제2성전기 유대교라는 맥락 속에서 파악.
- 예수가 직접 살았던 역사적 환경에서 출발하는 접근법으로서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
예수에 대한 기록의 성격과 가치
'기억된 예수'의 개념
- 우리가 가진 예수에 대한 기록은 모두 타인의 기억과 증언에 기초하고 있다.
- 사도행전 1:21-22가 보여주듯 초기 기독교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를 직접 경험한 이들의 증언과 기억이었다.
타인의 증언의 역사적 가치
- 흔히 개인의 직접 기록(자서전)이 가장 가치 있다고 여겨지지만, 이것은 오해다.
- 예수의 경우 타인의 증언이 그의 생애와 가르침, 영향력을 전달하는 핵심적인 수단이었다.
- 복음서가 제공하는 다양한 관점은 예수의 인격에 대한 다차원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영향력에 기초한 역사적 가치
- 예수의 영향력과 자극이 없었다면 그의 사역 자체가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 이 영향력은 역사적 연구의 타당성을 제공하는 근본적인 증거이다.
역사적 방법론과 진정성 기준의 적용
역사적 방법론의 한계
- 시간 간극과 자료적 제한으로 인해 역사적 증명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 단일 증언이나 불확실한 자료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할 수도 있다.
진정성의 기준 (진위 판별 기준)
- 복수 증언: 다양한 증언에서 교차적으로 나타나는 자료의 신빙성.
- 비유사성: 예수 시대 이후의 전승과 유사하지 않아 독창적일 가능성이 높은 자료.
- 일관성: 신뢰할 수 있는 자료와 양식적으로 일관된 자료.
- 아람어층: 원어인 아람어적 표현을 반영하는 자료.
- 당혹성: 초기 교회가 창작하기에 너무 당혹스러운 자료.
- 문화적 적응성과 역사적 개연성: 당시 문화와 정황에 부합하는 자료.
이러한 기준들을 통해 연구자들은 예수에 대한 자료를 평가하고 선별하지만, 그 결과는 잠정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가치와 의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예수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결과의 잠정성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접근은 예수에 대한 신뢰할 만한 골격을 제공할 수 있다. 예수의 역사적 맥락, 특히 유대교 정황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접근은 여전히 탐구할 가치가 충분히 존재한다.
정리
역사적 예수 연구는 복음주의적 신앙과 모순되지 않는다. 다만 연구 목적과 방법론적 한계를 분명히 인지할 때에만 그 연구는 정당한 가치를 지니며 의미 있는 결과를 제공할 수 있다. 결과는 항상 잠정적이지만, 예수를 기억하고 전달한 이들의 증언을 역사적으로 엄밀히 분석하는 일은 충분히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작업이다.
예수의 실존에 대한 질문
이따금 "예수가 과연 존재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예수의 실존을 지지하는 광범위한 증거가 존재한다.
요세푸스의 증언
-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 18:63-64에서 예수를 언급한다.
.. 기적 수행자로서 예수의 명성을 기록하였다 ("놀라운 일을 행하는 자").
.. 유대인 지도자들의 반대에 의해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한 사실을 기술하였다.
.. 예수의 죽음 이후에도 그를 따르는 무리가 여전히 존재했음을 관찰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무리가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 다만, 현재 전해지는 본문은 일부 그리스도인 필사자들에 의해 수정된 것으로 보인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핵심 내용은 요세푸스 자신이 작성한 것이라는 데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한다.
요세푸스의 추가 언급
- 『유대고대사』 20:200에서도 야고보를 언급하며, 그를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라고 표현한다.
- 이를 통해 요세푸스가 이미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독자들에게 소개했음을 알 수 있다.
로마 제국 시대의 추가 자료
- 2세기 초반 로마의 역사학자들인 타키투스와 수에토니우스도 예수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증언한다.
.. 이들은 요세푸스와 유사한 방향에서 기본적인 사건들과 인물을 다루었다.
- 이처럼 유대와 로마 양측 자료 모두 예수의 실존을 지지하고 있다.
후기 유대교 자료
- 보다 후대의 유대교 문헌들도 예수의 존재를 전제로 논의를 진행한다.
- 특히 예수 운동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도, 예수의 실존 자체를 부정하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평가
예수가 여러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단편적으로만 드러나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 연구는 기껏해야 예수의 골격에 접근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 방법론은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이해를 제공하지 못하지만, 다양한 접근법을 가진 사람들 간에 대화의 출발점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결과의 범위는 제한적일지라도, 역사적 예수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탐구할 가치가 있는 작업이다.
전제
역사적 예수 연구는 유대적 요소와 그리스-로마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힌 문화적 정황 속에서 예수의 핵심 관심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예수는 유대 문화권에서 등장했고, 국가적·종교적 개혁을 촉구하는 운동을 주도했다. 예수는 단순한 예언자 이상으로 하나님 나라의 중심인물이었다.
세례 요한과의 관련성
예수는 세례 요한과 밀접히 연관되었으며,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이 여러 자료에 의해 확증된다. 세례 사건이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높은 이유는,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이 초기 교회에게 당혹스러웠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당혹성의 기준). 이를 통해 예수는 세례 요한과 같이 국가적 갱신과 회개 운동에 헌신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 사역의 특성: 주변인에 대한 관심과 포용
예수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부정한 자, 죄인 등)과 식탁 교제를 나누는 등 적극적으로 주변인을 포용했다. 예수의 포용적 태도는 정결과 경건함을 엄격히 구별한 당시 유대교 운동들과 강하게 대비되며, 당시 사회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예수의 가르침: 하나님 나라와 전적인 헌신 요청
예수 가르침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였다.
예수는 자신을 직접적인 소망의 대상으로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전적 헌신과 제자도를 요구했다. 예수는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촉구했으며, 가족에 대한 충성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을 더 우선시하였다.
예수 사역의 중심 주제: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성취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며 이미 임했다고 선포했다.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는 작게 시작하여 크게 확장된다는 점에서 당시 유대인들의 기대(처음부터 강력한 승리의 나라)와 달랐다. 하나님 나라의 표징으로 예수는 기적과 치유를 행했으며, 이는 하나님 나라가 현재 도래했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증거였다.
시대적 초점: 고난을 통해 성취될 메시아의 역할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공공연히 밝히지 않고 오히려 신중하게 행동했는데, 이는 정치적 혁명가로 오해받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로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이며 고난을 받을 메시아라는 점을 강조했다. 예수가 자신을 '고난 받는 인자'로 묘사한 것은 역사적 진정성을 강하게 지니며, 초대교회가 창작하기에는 매우 당혹스러운 내용이었다(베드로를 '사탄'으로 지칭하는 사건).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위한 속죄를 성취할 것을 예고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의 준비: 죄 사함과 성령의 부어짐
예수는 새로운 시대를 위해 죄 사함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했다.
예수의 가르침(예: 산상수훈)은 하나님께 헌신된 삶, 자비와 용서, 마음의 정결을 추구하는 성품을 형성하도록 촉구했다. 하나님을 유일하고 친밀한 아버지로 인식하고, 죄 사함을 베풀며, 필요를 채워주는 삶을 살아갈 것을 요청했다. 예수는 성령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 마음'을 주겠다는 약속을 제시했고, 이는 새로운 공동체가 성령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도록 하는 원천이 되었다.
기적과 치유의 역사적 의의
예수가 비상한 일을 했다는 점은 당대 자료들에서도 부정되지 않는다. 당시 비판자들도 기적 자체가 아닌 기적의 출처를 문제 삼았다. 예수의 기적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지였다. 예수는 죄를 용서할 권세와 병든 자를 고칠 권능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나타냈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의 죽음을 통해 성립되는 새 언약과 용서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했다.
예수 사역의 마지막 국면과 죽음의 의미
예수의 사역 말기에 중요한 사건들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며, 이는 예수 사역의 핵심 주제들이 압축적으로 나타난다.
예수의 죽음은 그가 주장한 권위(메시아적 정체성)가 유대 지도자들에게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초대교회의 핵심 메시지로, 예수가 하나님에 의해 신원되고 높여졌음을 선언하며,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았다.
정리
역사적 예수 연구는 단지 도덕 교사나 예언자로서의 예수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중심인물이자 메시아적 소명을 성취한 고난 받는 인자로서 예수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예수의 생애와 사역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핵심으로서, 자비와 용서, 성령을 통한 내적 변화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작은 것으로 시작하여 점차 포괄적으로 확장되는 왕국이며,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은 이 나라의 본질과 목적을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고백 사건
사건의 개요 및 진정성
- 예수가 제자들에게 자신을 누구라 생각하는지 질문한 사건으로, 베드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다.
- 사건이 구체적 장소(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교회의 창작물이라 보기 어렵다.
- 베드로가 예수를 이해하는 방식에 한계가 있음을 예수가 지적(‘사탄’으로 책망)했다는 내용도 교회의 창작이라 보기 힘들다(당혹성의 기준).
의미와 중요성
- 예수가 메시아적 정체성을 수용하면서도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상을 거부했음을 나타낸다.
- 예수의 역할은 고난을 포함한 메시아로서, 단순한 예언자를 넘어 하나님 계획의 중심인물임을 강조한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사건의 역사성 문제
- 예수가 왕처럼 입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즉시 제지당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의구심이 있지만, 실제로 당시 예루살렘은 축제 기간이라 혼잡했으며, 예수가 군중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역사성이 있다.
사건의 특징
- ‘승리적이지 않은’(non-triumphal) 입성으로, 소수의 제자들이 주도한 작은 사건이었으며, 로마나 유대 지도자들이 즉시 개입하지 않을 만큼 눈에 띄지 않았다.
- 예수는 다윗적 왕의 상징을 이용했으나 위엄이나 정치적 선포가 없는 겸손한 왕의 모습으로 입성했다.
성전 정화 사건
사건의 진정성과 역사성
-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 모두에 등장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초기 교회가 로마 당국의 경계를 받을 수 있는 위험한 이야기를 굳이 창작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역사적 신빙성이 높다.
의미
- 예수는 성전 제도 자체보다는 성전을 운영하는 종교 지도층을 비판했다.
- 그의 행동은 상징적이고 예언적이며, 성전의 타락을 지적하고 종말론적 회복(만민을 위한 기도의 집)을 제시한 것이다.
최후의 만찬 사건
사건의 역사성
- 예수가 체포되기 직전에 제자들과 중요한 식사를 가졌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 만찬이 유월절 식사였는지 여부는 논쟁이 있지만, 최소한 유월절 분위기 안에서 이루어졌음은 분명하다.
사건의 신학적 의미
-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새 언약을 맺는 희생으로 해석했다.
- 이는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으며, 예수가 자신을 통해 구속의 시대를 열 것으로 이해했음을 나타낸다.
유대 지도자들의 예수 조사 및 심문
심문의 성격
- 이 사건은 공식적인 유대교 재판이 아니라 로마 총독에게 예수를 고발하기 위한 비공식적인 조사에 가까웠다.
-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의 발언에서 신성모독의 근거를 찾으려 했다.
예수의 발언과 그 영향
- 예수는 시편 110:1과 다니엘서 7:13을 인용하거나 암시했으며, 이로써 자신을 신적 권위를 지닌 메시아로 제시했다.
- 유대 지도자들은 이를 신성모독으로 간주했고, 정치적 이유로 빌라도에게 예수를 고발하는 근거로 삼았다.
빌라도의 심문과 예수의 십자가 처형
처형 이유와 과정
- 예수의 공식적인 죄목은 ‘유대인의 왕’으로서 로마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이었다.
- 빌라도는 예수가 실제로 무장봉기를 일으킬 인물은 아니었지만, 유대 지도자들의 정치적 압박과 사회적 혼란 가능성을 우려하여 처형 결정을 내렸다.
역사적 신빙성
- 예수의 처형은 역사적으로 매우 확실한 사건이며,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의 존재는 사건의 사실성을 뒷받침한다.
- 이 죄목은 초기 기독교가 임의로 창작할 이유가 없는, 매우 민감한 정치적 요소였다.
부활 사건과 신원의 문제
부활 사건의 역사적 신빙성
- 빈 무덤을 여인들이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당대 문화에서 여성의 증언이 무시된다는 점에서 교회의 창작으로 보기 어렵다(당혹성의 기준).
- 제자들의 초기 반응(의심과 혼란)은 창작된 이야기로서는 매우 부적절하며, 교회가 일부러 만든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부활의 신학적 의미
- 부활 사건은 예수가 주장한 자신의 신원과 사역이 하나님에 의해 확증된 사건으로 해석되었다.
-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통해 그의 메시아적 주장을 신뢰했고, 그 신뢰는 초대 교회의 핵심 메시지로 자리 잡았다.
정리
-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중심인물이자 고난 받는 메시아로 제시했다.
- 예수 사역의 핵심 사건들(베드로의 고백, 예루살렘 입성, 성전 정화, 최후의 만찬, 유대인 조사와 로마의 심문 및 처형)은 예수의 자기 이해와 초기 교회의 메시아적 이해를 보여주는 역사적 토대를 지닌다.
- 부활은 역사적 예수의 신원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 확증으로 간주되어,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가 긴밀히 연결되도록 했다.
이러한 사건들의 역사성과 의미는 예수의 사역과 주장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역사적 토대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임을 확인하게 된다.
대럴 L. 복(Darrell L. Bock)은 《역사적 예수》에서 복음서의 역사성과 신뢰성을 옹호하면서도, 역사적 예수 연구의 방법론을 신중히 수용하려는 보수 복음주의 입장을 대표한다. 그는 역사적 방법이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지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비판적 성서학자들, 특히 바트 어만(Bart Ehrman),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 Crossan), 마커스 보그(Marcus Borg) 등은 복의 전제를 문제 삼으며 여러 방향에서 반론을 제기해다.
1. “복음서는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 → (아니다) 복음서는 신학적 창작물로서, 역사적 정확성이 제한적이다
반론 요지:
음서는 기록 당시의 공동체 신앙과 신학이 반영된 문헌으로, 예수의 실제 행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는 않는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관점에서 그의 삶과 말을 재구성했으며, 이것은 객관적 역사 서술과는 다른 기술이다.
복의 입장은 복음서와 역사 전기 사이의 차이를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대표적 학자: 바트 어만
“복음서는 신학적 의도에 따라 구성된 문헌이지, 객관적인 전기가 아니다.”
2.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로 인식했다” → (아니다) 초기 공동체가 예수에게 투영한 메시아상일 수 있다
반론 요지:
예수가 스스로 메시아임을 인식하고 행동했다는 것은 복음서의 후대적 신학 해석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예수는 아마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종말론적 선지자였을 뿐이며, 메시아사상은 그의 죽음 이후에 제자들에 의해 형성된 것일 수 있다.
대표적 학자: 존 도미닉 크로산
“예수는 자기 자신을 메시아로 자처하지 않았으며, 메시아 개념은 그의 죽음 이후 발전한 것이다.”
3. “복음서는 신학적이면서도 역사적이다” → (아니다) 신학적 목적이 강하면 역사적 왜곡 가능성도 커진다
반론 요지:
복음서가 신학적으로 구성된 이상, 저자들은 선택, 배치, 강조를 통해 특정 해석을 유도한다. 신학적 목적은 종종 역사적 사실을 가공하거나 재해석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복은 신학과 역사 사이의 긴장을 충분히 비판적으로 분석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대표 입장: 마커스 보그
“복음서에 담긴 신앙 고백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것이 곧 역사적 사실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4. “비평 방법은 신앙을 도울 수 있다” → (아니다) 보수적 전제는 비평 방법의 본질을 제약한다
반론 요지:
복은 비평적 방법론을 수용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복음서의 무오성과 조화 가능성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진정한 비평은 성경 본문을 ‘문제적일 수 있는 역사 자료’로 보는 태도를 전제로 해야 한다. 복음서를 신앙의 출발점으로 삼은 채 역사적 비평을 시도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불균형하다.
대표 입장: 바트 어만
“복음서를 신뢰할 만한 것으로 가정한 뒤 비평을 하는 것은 역사비평이 아니다. 그것은 신학적 변증이다.”
요약
대럴 복의 입장은 복음서의 신뢰성을 방어하지만, 신앙적 전제가 강하게 작용하여 역사비평의 엄밀성을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논평] 로버트 M. 프라이스
『유대적 환경』
1세기 유대교와 헬레니즘 경계 문제
보수적 비평가와 변증가들은 마르틴 헹엘을 인용해 1세기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헬레니즘과 경계가 허물어진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예수의 헬레니즘적 요소는 최소화하고, 기독론·기적·영지주의 같은 요소들은 위험하다고 간주하며 분리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복음서 전승의 역사적 신빙성을 옹호하기 위해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대적 예수" 개념은 종교 간 화해(유대교-기독교 관계 개선)의 결과로 부상했으며, 신구약 간 이질적 요소를 배제하고자 한 전통주의자들의 이익과도 맞아떨어진다.
요한복음, 영지주의, 유대교의 관계
대럴 복 등은 요한복음의 용어와 개념이 영지주의 기원이 아니라 사해사본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불트만은 이미 요한복음에 나타난 유대-헬레니즘 혼합을 인식했다.
영지주의적 세례 전통과 쿰란 공동체의 관계에 대한 Kurt Rudolph의 연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복은 예수가 사회 주변부(부랑자, 죄인, 문둥이)에게 접근한 사실을 강조하나, 이는 당시 제2성전기 유대교에서는 이례적이므로 예수의 독자적 통찰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메시아상 재정의 논쟁
복은 마가복음 8:27-30의 가이사랴 빌립보 고백을 중시하며, 예수가 고난 받는 종으로 메시아 개념을 재정의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후기 기독교 합리화의 결과로 보이며, 마가복음 자체도 메시아 관점들을 조정하고 조화시키려는 시도였다(브레데의 "메시아 비밀" 이론과 유사).
불트만은 부활 후에야 예수가 메시아로 선포되었다는 초기 기독교의 양자론적 기독론을 강조한다.
역사적 예수의 실존 문제
복은 예수의 실존을 확신하고 요세푸스, 타키투스 기록을 신뢰한다. 하지만 설령 요세푸스·타키투스가 예수를 언급했다 하더라도, 이는 "설교자 예수"의 존재를 증명할 뿐, 신격화된 예수의 역사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유대인 반대자들도 예수의 역사성을 완전히 부인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랍비 트리포 논쟁 참조).
예수의 세례 문제
복은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비평을 통해 확증된 결론"으로 수용하지만, 세례 장면 역시 후대 교회의 필요(세례 권장)를 반영한 구성일 수 있으며, 초기 기독교 변증을 위한 도구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혹성 기준"으로 볼 때 세례 사건은 역사적일 수 있지만, 초기에는 요한과의 연결이 오히려 유리했을 수 있다.
예수의 '내가 왔다'/'인자' 발언
복은 '내가 왔다', '인자가 왔다'는 예수 발언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그러나 불트만은 이런 발언들이 후대 교회의 성육신 신학을 반영하는 회고적 구성이라고 본다.
노먼 페린은 '인자' 발언들이 다니엘 7장, 시편 110편, 스가랴 12장 등을 미드라쉬적으로 해석해 생성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복음서의 '인자' 발언은 예수의 직접 발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예루살렘 입성 사건
예수가 종려주일에 나귀를 타고 입성했다는 이야기는 스가랴 9:9과 사무엘상 9장(사울 이야기)의 영향을 받은 문학적 재구성일 가능성이 크다. 군중의 환호 역시 시편 118편에 의거했다.
마가복음은 예수를 "왕"으로 호칭하지 않지만, 마태, 누가, 요한은 예수를 왕으로 강조하여 덧붙였다.
성만찬과 유대적 배경
철저히 유대인인 예수가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제의를 제정했을 가능성은 낮다.
성만찬 제의는 디오니소스나 오시리스 신비종교와 유사하며, 디다케나 다른 초기 기독교 그룹에서는 빵과 물, 빵과 소금만을 사용한 사례도 존재했다.
예수의 재판과 자칭 메시아 문제
복음서 재판 장면은 열왕기상 22장의 미가야 장면을 모방한 듯하다.
예수가 자신을 메시아라고 명확히 선포했다는 기록은 불확실하다. 마가복음의 '나는 …이다'(I am) 발언은 후대 첨가로 간주되며, 실제 예수의 대응은 애매모호했을 가능성이 크다.
전체적으로 이 글은 보수적 변증가들의 일관성 없는 태도와, 역사적 예수에 대한 보수적/전통주의적 해석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특히 불트만의 비평적 방법론과 양자론적 기독론 인식을 옹호하며, 후기 교회의 전승 과정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참고 도서:
⟪역사적 예수 논쟁⟫ - 예수의 역사성에 대한 다섯 가지 신학적 관점
로버트 프라이스, 루크 존슨, 존 도미니크 크로산, 제임스 던, 대럴 복 (지은이), 새물결플러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