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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정리

Macro View로 들여다 본 소설 ⟪모순⟫

독서 토론 준비를 하며... [ 한 쪽 (one page) 감상문 ]

by KEN

리뷰 프레임

대부분의 소설 리뷰는 미시적 관점(micro view)에서 진진이라는 인물의 시선을 평면적으로 따라가는 데 머물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비슷한 관점의 리뷰를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소 거칠더라도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마치 새의 눈(bird’s-eye view)으로 작품 전체를 조망하는 방식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여기에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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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니 ‘따라 하기’ (Female Cop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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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건강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끊임없이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특히 수컷들의 경쟁은 알파 메일(Alpha male)로서 집단 내에서 가장 먼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데 집중됩니다.


암컷 역시 강한 유전자를 남기는 데 상당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죠. 가능한 한 가장 강한 수컷과의 짝짓기를 통해 우수한 유전자를 확보하고자 하지만, 진화생물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이상적인 수컷을 찾는 일이 늘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이때 암컷은 일종의 집단지성적 전략을 택하는데, 바로 자신보다 앞서 선택한 언니 암컷의 짝을 따라 선택하는 것입니다. 즉, 앞선 개체가 선택한 상대는 적어도 실패할 확률이 낮다는 일종의 ‘검증된 기준’이 되는 것이죠.


이러한 경향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하나의 집단이나 덩어리로 묶어서 생각할 때 나타나는 일반화, 즉 보편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사고방식과도 유사합니다.


소설 ⟪모순⟫은 바로 이러한 일반화되고 보편화된 가치와 관점에 대한 도전이자 뒤틀림을 시도하는 작품으로 읽혔습니다.


2.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이야기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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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은 오랫동안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오로지 공통된 성질을 추상화한 ‘보편성’만을 추구해 왔습니다. 나의 개인적 감정과 느낌을 배제한 채 인간 삶을 비롯한 모든 존재를 차갑게 객관화하고, 오직 보편적 가치만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 하이데거 이전까지 2천여 년간 존재론을 지배한 관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이러한 전통적 존재론에 강력한 반론을 제기합니다. 그는 ‘보편성’이라는 틀로는 포착될 수 없는 ‘나’라는 존재의 이야기에 주목했던 것입니다. 개별적 존재가 느끼는 구체적인 감정과 생생한 삶의 경험 즉 기쁨과 슬픔, 행복과 상실의 기억 같은 개인적인 순간들을 강조하면서, 지금껏 보편성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지고 잊혔던 각 존재의 특수성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소설 ⟪모순⟫은 바로 이와 같은 하이데거적 관점에서 삶의 개별성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시도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읽혔습니다. 제게는.


3. '구체적이고 생생한 삶의 한가운데에서 "삶과 투쟁하는" 개별자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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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는 소설 ⟪모순⟫에서 엄마와 이모, 그리고 주인공 진진의 삶을 통해 끊임없이 충돌하는 가치관들을 제시합니다. 작가는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와 빈곤이라는 상반된 가치들이 서로 맞부딪히는 장면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보편적 가치의 기준에서 볼 때, 엄마는 불행한 환경 속에서도 삶을 선택하며 행복을 찾아간 인물이고, 이모는 외적으로는 모든 행복의 조건을 갖췄지만 내면의 빈곤으로 인해 결국 죽음을 선택한 인물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의 그 ‘언니 따라하기’는 어떤 기준을 중심으로 해야 할까요?


겉으로 드러난 행복 속에 내면의 불행이 자리 잡은 이모의 삶(나영규)과, 스스로는 행복할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과정이 수반되는 엄마(김장우)의 삶 사이에서 진진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렸던 것일까요?


이러한 고민 끝에 내린 진진의 선택이 과연 모순적이었을까요? 오히려 작가는 진진이 선택한 삶이 아니라, 엄마와 이모를 둘러싼 기존의 사회적 가치와 그이들의 실체적 삶의 형태 자체가 모순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작가는 독자에게 "너의 삶은 어떠한가?"라고 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즉, ‘너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부가하여...]

(1) 양희은의 노래 ⟪엄마가 딸에게⟫

스크린샷 2025-03-27 오후 4.16.32.png 양희은이 부른 ⟪엄마가 딸에게⟫의 스토리가 생각났습니다. "너의 삶을 살아라!" 하는...

이 글을 옮기면서 세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중 하나가 양희은이 부른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래였습니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특히 “너의 삶을 살아라!“라는 가사에 이르렀을 때 왈칵 눈물이 쏟아졌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작가 양귀자가 독자인 나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그 말, "너의 삶을 살아라!"와 연계되는 그런...


(2)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영화 ⟪우리가 끝이야⟫

또 하나는 영화 ⟪우리가 끝이야⟫입니다. 매력적인 배우인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주연으로 연기했던 최근의 영화입니다. 동명의 소설도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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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가정 폭력의 문제를 엄마와 아빠로부터 시작된 그 악순환을 나에게서 끝내고 내 딸에게까지는 순환되지 못하게 하겠다는 한 엄마의 시선을 그린 작품입니다.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영화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조금 맥이 다릅니다. 자신에게까지 내려오는 숙명과도 같은 가정폭력이라는 사슬을 "결코 내 딸에게만큼은 되물림 하고 싶지 않다"는 적극적 개입인 것입니다. 엄마가 딸인 진진의 선택에 전혀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 극히 객관화된 대상중의 하나였던 ⟪모순⟫에서의 엄마와는 완전히 다른 선택인 것이죠.

이런 삶의 형태 또한 우리 곁에는 흔히 있는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 영화가 대비되었던 것입니다.


(3)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아마 처음 이 시를 접했던 건 중학생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족과 떨어져 도시로 유학 온 어린 시골 소년의 마음을 흔들었던 이 시는, 이후 오랜 시간 아니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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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동안 문득 이 시가 떠오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엄마와 이모, 애증의 아버지, 그리고 이모부와 사촌들까지, 그들 각자가 삶 속에 수많은 ⟨가지 않은 길⟩을 남겨둔 채 살아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진진 역시 자기만의 또 다른 ⟨가지 않은 길⟩을 남기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삶이고, "그것이 인생"이라는 독백을 남기면서 말입니다.



[최종 정리]

이렇게 정리된 나의 소설 읽기는 다음과 같은 ‘한 장의 독후감’으로 재정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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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서적

⟪모순⟫ 개정판, 양귀자, 쓰다, 2013 (초판 발행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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