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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박씨 Jun 07. 2024

고마워요, 아버지

덕분에 이렇게 편안하게, 밥 먹고 살고 있어요...

2024년 5월 21일 새벽에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2년 전 봄, 뇌출혈로 수술받으시고 입원하신 후 2년 2개월을 병원에서만 계시다 결국 나오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2주 정도 지난 오늘 아버지 사망신고를 했네요.


입원하기 2년 전인 2020년 1월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었네요.

아버지, 남은 시간

무던한 제가 아버지의 변화에 대해 느낄 정도였으니 어쩌면 아버지는 이미 오랜 시간 전부터 조금씩 이별을 준비하고 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건강하셨던  아버지의 마지막 사진, 22년 3월 13일 

위 사진은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지는 듯해서 큰맘 먹고 스튜디오에 가서 남긴 사진입니다. 차마 당신의 영정 사진을 미리 찍자고 말씀드릴 순 없어 아이들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말씀드리고 찍은 사진이네요. 성인이 되고 이렇게 가까이서 아버지와 마주 보고 사진을 찍은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도 이때 아버지의 건강한 모습을 담아 놓아 참 다행입니다. 


2년 2개월간 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버지 7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셨습니다. 해방둥이로 태어나 국민학교 졸업하자마자 생계를 위해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먹기 살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할머니와 떨어져 사시고, 와이프를 먼저 보낸 체 22년을 사셨고, 큰아들 마저 먼저 보내는 큰 슬픔을 두 번이나 겪으셨으니 그 고통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막내가 서글서글한 성격도 아니고 생각해 보면 삶이 참 불쌍하기도 하고, 참으로 외로우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살아계실 때 따뜻한 한마디, 손 한번 더 잡아 드릴걸 그랬습니다. 한 없이 죄송한 마음입니다.


간병이라는 신세계

아버지가 병원에 계셨던 2년 2개월, 게다가 코로나 시국이라 직접 간병하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면 스스로 거동을 하지 못할 경우엔 간병인이 꼭 필요하더군요. 의료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간병인이 병원 생태계에서는 왠지 모르게 음지에서 기생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간병비도 간병비일 뿐만 아니라 90% 이상이 중국동포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

병원 생활 중 대부분의 시간은 아버지의 의사 표현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거동을 못하시게 되고, 근육이 줄고, 말수가 줄어들고... 그러면서 눈빛마저 희미해져 가는 걸 지켜보며, 죽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입에 떠올리기 죄송하지만, '안락사'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되고, 연명의료중단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제일 고통스러운 건 아버지이셨겠지만, 지켜보는 가족도 힘들더군요. 항상 마음 한편에 무거운 돌 같은 게 걸려 있는 것 같아, 놀면서도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항상 들곤 했어요. 뭔가 기분이 다운되는 듯한 느낌이..


한없이 슬픈 일이지만, '이제 고만 내려놓고 편히 가셔라!'

나중에 들으니 장례식장에서는 왜 울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하는 친척도 있었다고 하네요. 담담히 보내드렸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외롭지 않고, 아프지 않고, 평소 그려셨던것처럼 자유롭게 놀러 다니실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이제 엄마, 와이프, 큰아들 만나서 싸우지 말고, 화내지 말고 즐겁게 지내셔!!

저만 빼고 다 모이신 가족들!

전 여기서 주신 숙제를 잘 마무리하고 늦게 합류할게요!! 남은 가족은 제가 잘 케어해 보도록 할게요. 


아버지, 고생 많으셨어요! 미안하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부족한 것 없이 잘 키워주신 덕분에 이렇게 밥 값하고 잘 살고 있습니다! 이제 아프지 마시고 편안하게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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