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벼랑 끝에 선 ADHD인의 마음속으로

XR 작품 <Impulse: Playing with Reality>

by 문요


아카데미상 수상 배우 틸다 스윈튼(Tilda Swinton)이 내레이션을 맡은 <Impulse: Playing with Reality>는 관객의 실제 공간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40분 길이의 혼합현실(MR) 경험입니다. 이 작품은 ADHD의 혼란, 창의성, 그리고 감정의 강도를 직접 체험하게 합니다.

ADHD는 여전히 많은 오해 속에 놓여 있습니다. 상당수는 진단조차 받지 못한 채 살아가며, 그 결과 성인 ADHD 당사자의 자살률은 일반 성인에 비해 5배에 달합니다. 이 작품은 ADHD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작품 소개 영상입니다.
https://youtu.be/apgQxXwx7WE?si=36qldc3FyKwpAEve



우리는 흔히 집중하지 못하는 순간마다 ‘나 혹시 ADHD가 아닐까?’ 하고 의심하곤 합니다. 특히 각종 미디어와 SNS에 노출되면서 더 집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죠. 저 역시 어떤 일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고 있더라고요.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말이에요. 요즘은 누구나 가벼운 정도의 주의력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상태가 극단적인 수준이라면 어떨까요? 영국에서는 수감자 네 명 중 한 명이 ADHD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문제아, 혹은 게으른 사람으로 쉽게 낙인찍힌 누군가에게 ADHD는 비참한 삶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Impulse>의 제작진은 신경과학자와 심리학자들과 협업해, ADHD 스펙트럼의 가장 극단적인 지점에 있는 사람들과 100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경험하는 감각과 사고의 흐름을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작품을 설계했습니다.


작품이 시작되면, 내가 앉아 있는 현실 공간 위로 화려한 그래픽이 쏟아지고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게임에 참여하게 됩니다. 게임은 다소 당황스럽습니다. 설명은 충분하지 않고 눈앞에는 색색의 타일들이 정신없이 등장합니다. 컨트롤러로 타일을 흡수한 뒤 그것이 사과와 같은 형체를 띠면 실제 사과 모양의 사물에 던져 맞추는 방식입니다.


혼합 현실(MR) 방식을 사용해, 현실세계 앞에 현란한 그래픽 세상이 펼쳐진다.


룰을 이해하지 못한 채 헤매다가 어느 순간 깨닫게 되지만, 이미 속도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빨라져 있습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상황은 걷잡을 수 없고 결국 ‘이걸 왜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게임이 끝나면 눈앞을 가득 채우던 그래픽은 사라지고, 내가 서 있는 실제 공간이 다시 드러납니다. 그제야 방금 전의 혼란스러운 게임이 ADHD인의 머릿속을 잠시나마 체험해 보는 과정이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그것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를 몸으로 겪은 것입니다.


그래픽만 봐도 어질어질



이후에는 실제 ADHD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한 채 늘 삶의 낭떠러지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사고를 위험한 강도 계획에 집중시키는 오마르(Omar),
존중받기 위해 스스로 기상천외한 캐릭터를 만들어낸 에럴(Errol),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하나의 게임으로 바꾸는 리앤(Leanne),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기 직전에 선 타라(Tara)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에럴은 높은 첨탑의 꼭대기나 공사장의 레일 위에 올라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오마르는 주차장에 세워진 모든 차량의 유리를 깨부수면서도,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스스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리앤은 자신을 게임 캐릭터로 여기며,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부수는 일이 일상입니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저지른 행동 뒤에는 깊은 후회가 반복됩니다.


작품은 그들의 성장 배경 또한 함께 보여줍니다. 부모의 학대와 폭력, 또래 집단의 괴롭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미치광이가 되어야 했던 사람, 타인의 판단에 휘둘려 좌절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사람, 자신을 향한 분노가 용암처럼 끓어올라 스스로의 얼굴을 때리던 사람의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그들은 한 가지에 집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모든 것에 동시에 반응하는 상태로 살아갑니다. 그 끝에는 강력한 자살 충동이 뒤따르기도 합니다.


스스로의 화를 주체하지 못해 불을 지르는 사람


정신을 차려보면 높은 빌딩의 꼭대기에 올라와 있는 사람


그러나 작품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논문을 찾아 읽고 경험을 기록해 나가는 사람, 자신을 이해해 주는 어린 아들과의 시간을 통해 마음을 회복하는 사람, 자살 충동을 1년 넘게 이겨낸 자신을 축하하며 대학 진학을 결심한 사람의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바라보는 동안, 관객은 그들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ADHD인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다만 게임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서사가 시작되다 보니, 이것이 여전히 게임의 일부인지 아니면 경험담을 단순히 ‘보는’ 단계인지 혼란스러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 점에서는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전체적으로 매우 정신없는 체험이기도 했습니다 (멀미가 나기 직전). 그러나 어쩌면 그것 자체가 이 작품의 의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매일 엄청난 양의 정보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봐야 할 것, 결정해야 할 것, 흘려보내야 할 것들 사이에서 쉽게 혼미해질 때가 있죠. 이 모든 자극에 즉각 반응하지 않고 잠시 눈을 깜빡인 뒤 멈추는 것,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에만 대응하는 태도는 ADHD 당사자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것에 반응하지 말고, 잠시만, 잠시만 멈춰보자.





<Impulse: Playing with Reality>는 ANAGRAM이 제작했으며, FLORÉAL과 France TV가 공동 제작했습니다. 본 작품은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화제 이머시브 부문에서 수상했습니다.


-Director: May Abdalla, Barry Gene Murphy

-Production: Anagram (Kirsty Jennings, John Hunter), Floréal (Avi Amar, Katayoun Dibamehr)

-Running Time: 35 min

-Language: English

-Country: UK, France

-Main Cast: Omar, Errol, Leanne and Tara - as themselves

-Voice: Tilda Swinton





현재 메타 스토어에서 판매하고 있어요. 작업이 궁금하신 분들은 체험을 추천드립니다.

https://www.meta.com/ko-kr/experiences/impulse-playing-with-reality/6468391126573976/


[이미지 출처]

-https://impulse-xr.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