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이제 한번 일어서봐라”
밤늦게 갑자기 걸려온 전화 너머에서 들려온 말이었다. 갑작스러워서인지 당혹스러움때문인지 너무나 선명하게 머리에 들어오는 말이었다.
“나도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1년동안 망연자실 누워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너무 갑작스러웠고 돌아가시면서 모든 게 무너졌다. 그래서 폐인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가 아장아장 기어다닐 적 이야기였다. 커가면서 어렴풋이 들어온 아버지의 이야기. 갑작스런 전화도 당혹스러웠지만 진심을 전하는 전화기 너머의 초라한 아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울렁거렸다.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아버지가 집을 나갔을 때 부터라기 보다 커오면서도 좀처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 공간에 함께 있으면 왠지 어색하달까.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항상 움직이는 쪽은 아버지였고 가만히 앉아있는 건 나였다. 그런 아버지가 야밤에 술도 취하지 않을 채 전화를 걸고 아들에게 마음을 열어놓으니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보지말아야 할 것을 보다 들킨 것처럼 나는 대답도 하지 못했다.
“꼭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아빠는....”
“네”
이 부분에서는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아빠는...” 뒤에 이어지는 말을 들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추측해보건대 긍정적이고 전도유망한 답변은 아니었으니라. 건강하게 키워 사회로 내보냈으나 여적 부모를 제대로 모신 적도 없는 나였다. 지나가는 자랑거리도 되지 못해 죄스런 마음이 내 몸 한편에 떡하니 터를 세운 지 오래였다. 자식이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 연로한 아비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나오게 하면 안됐다. 본능적으로 느끼고 말을 끊었다.
“알겠어요. 아버지. 챙겨드세요”
본능적이었지만 논리적이진 못했다. “식사는 꼭 챙겨드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급하게 말해야 했기에 “챙겨드세요”로 끝났다. 아버지도 더 이상 말을 잇지는 않았다. 그렇게 선명한 통화가 끝났다. 술 취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용기내서 하는 아버지였기 때문에 이번 전화는 너무 선명한 나머지 예리하기까지 했다.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까지는 아니었지만 통화를 끊고나서도 한동안 어두운 창문 저편을 계속 바라봤다.
항상 생각했다. 일어나야 한다. 항상 생각했다. 나는 괜찮다. 항상 생각했다. 나는 잘 될거야. 항상 생각해도 다가오는 시간이 항상 같지는 않아서 항상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는게 두려워지고 있던 시기였다. 숨 쉴 여유는커녕 숨을 쥐구녕도 찾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거처도 알 수 없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전화는 내일은 다를거야라는 희망까지는 아니어도 뿌리깊은 온기를 전해줬다. 일어나는게 뭔지 모르지만 일어서는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골방 속 어두운 이불로 찾아들어오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