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과 특별사이.

by 갑자기 흰수염

지키고 싶은 게 있었다.

나, 가족, 사랑. 그중에 특히 나.

지킬 수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인생의 몇 년을 보내다 보니 자존감도 쑥쑥 자랐으나 뽕도 커졌다. 때론 오만으로 흘렀다. 경계해야 할 일이었으나 실수에서 배우기도 했고 누군가 나지막이 말해주기도 했다.

그래도 그 뽕이 내 삶의 유지력이었다.

“돈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좋다. 즐겁다. 그것으로 된 것 아니냐”

갑자기 쑤욱하고 흰머리가 한가닥 두가닥 보일 때쯤 저 말밖에 안 남았다.

친구는 오래전에 결혼했고 이미 아이가 세상에 나왔으며 이제는 집을 샀다. 순간순간 숨통 조이는 일을 척척 잘 해냈다.

나의 말은 허공에서 형체도 없이 날아다녔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꾹꾹 눌러써보아도 도무지 종이 위에 쓰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친절하게 말했다.

“우리도 잘 먹고살아보자. 늙어서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냐”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혹 짙은 확신이 들었다.

술 한잔 기울일 저녁, 퇴근길에 잠시 들러 담배 한 대 태울 수 있는 시간이면 충분했는데 친절한 말들은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대꾸하지 못했다.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가족 그리고 실체 없는데 존재한다는 내 가정. (사랑, 나)

‘생각하지 마. 꿈꾸지 마. 바라보지 마. 자신을’

‘눈을 감아. 마음의 소리를 들어봐. 아직도 들리냐. 그것 참 신기한데?’

썩어서 나오는 마음속 토사물을 택시 기사님은 깨끗하게 치워주셨다.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겠는데, 그래도 정작 본인이 뭘 해야 할지 답을 알고 있는 거 같은데요? 돈 벌어야죠. 부모도 부양하고 앞으로 가정도 꾸리실 거고”

보편과 특별 사이에서 취해 살았다.

보편의 무게를 특별에 기대며 비껴간 척했다. 특별에 나를 걸었다고 생각했다. 실상은 한 발자국도 가까워지지 못한 채 특별만 가불했다. 연체를 거듭하니 특별한 자괴감과 그간 보편의 원금에 이자까지 더해져 문을 두드렸다. 보편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당연한 것을 왜 묻나. 그냥 해야 하는 일을 왜 의심하나.’

ㄱ이 친절하게 말했다.

“나도 너처럼 살고 싶다”

ㄴ이 털어놓듯 위로했다.

“나도 혼자 살면 방 한 칸 오피스텔이면 된다”

ㄷ이 회상하듯 강조했다.

“나도 너였으면 돈보다 사회가 좋은 일을 했을 거야”

ㄱ, ㄴ, ㄷ이 함께 말했다.

“나 지금 행복해”


나는 바보같이 또 혼자 고민했다.

정작 ‘너’는 안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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