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 감자탕

무한

by 갑자기 흰수염

당산 감자탕.


줄어드는 사회생활만큼 빨리 쪼그라드는 지갑에 싼 것, 싼 곳을 찾아다녔다. 돈에 물들 대로 물든 나겠지만 과소비는 안 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사는 행위 자체를 줄이진 못했다. 컴퓨터를 켜면 인터넷 창에 쇼핑 코너가 눈에 띄었고 휴대전화로 무엇인가 하다가도 중고거래 앱을 켜놓고 무심코 화면을 아래로 쭉쭉 내리는 나를 발견했다. 돈을 쓰는 규모는 줄였어도 횟수는 퇴사 이전 평균을 유지했을 것이다.

당산 감자탕은 우연히 발견했다. 우연이지만 당산 골목길을 돌고 돌다 이 집은 괜찮겠거니 하고 들어간 곳이었다. 평소 입맛이 까칠한 나지만 갈수록 집을 나서면 겸손해졌다. 맛보다는 가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특히나 퇴사 이후 데이트 비용에 심각한 불평등이 생겼다. 에스는 기꺼이 불균형을 받아들여줬지만 미안한 마음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퇴근 후 비교적 돈을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하루의 고단함을 날려버렸던 우리였으나 이제는 그리할 수 없었다. 나는 고단함을 느낄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고 어느 정도는 에스의 지친 일상을 위로하고 싶었으나 지갑 속에 차곡차곡 넣어둔 카드의 잔고가 카드 자체 무게만큼 가벼워졌다. ‘비싸도 돼, 맛있는 거 먹자’에서 ‘싸고 맛있는 집 이래’로, 여기에 더 나아가 ‘가격 착하다. 여기 가보자’로 자연스레 바뀌었다. 당산 감자탕도 그런 집이었다. 가게 이름은 감자탕이었지만 메인 메뉴판에는 1인분 만원, 무한리필 삼겹살이 먼저 적혀있는 곳.

나는 에스와 그곳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 병을 먹었다. 사장님의 인심도 무한리필이었다. 갓 무친 파무침에 적당히 익은 김치가 일품이었다. 잘 먹는 우리를 보고 김치도 직접 담근 것이라며 자랑까지 하는데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렇게 싼데 김치가 국산이네’라고 흡족해 한 나였다. 접시를 비우자마자 매의 눈으로 지켜보다 냉동 삼겹살을 처음 준만큼 후하게 가져다주는 사장님의 손길에 절로 마음이 녹았다. 첫 방문 이후 에스와 당산에서 자주 만났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무한리필 삼겹살만 먹었다. 국내산 돼지고기가 아니어도 좋았다. 우리 땅에서 자란 것이 소중한 것인지 알지만 독일산 삼겹살도 맛났다. 나도 몰래 쪼글아든 마음만큼 내밀기 부끄러워지는 지갑이었지만 여기서만큼은 아니었다. 유독 다른 가게와 달리 이 곳에서는 나를 더욱 드러냈다. 조금 더 친절하게, 조금 더 쾌활하게 사장님을 대했다. 손님 대다수는 할아버지와 인근 직업훈련학교 학생들이었다. 할아버지 한 둘이 모인 식탁과 학생 서넛이 모인 식탁의 웃음 깊이는 달랐지만 넉넉한 소리는 같았다.

음식으로 사람을 위로한다고 했다. 그저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라거나 신체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숫자적 놀음이 아니라 괴롭고 외롭고 힘들고 지칠 때 먹었던 그 음식과 시간이 사람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리라. 어느 순간 싼 집만 찾는 나지만 에스에게 항상 부끄럽게 이야기한다.

“여기 오면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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