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만큼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고 집에 도착했다. 힘겹게 휴대전화기로 손을 뻗어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나 왔어...”
“응. 지금 나갈게요”
아들이 나와 차 문을 열자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내려 집으로 걸어 올라간다. 주차가 서툰 엄마를 위해 여느 때처럼 아들은 지정석에 엄마 차를 댄다. 엄마가 오기 한 시간 전 아들은 오징어볶음을 해놓았다. 2층까지 걸어 올라가며 엄마가 좋아하는 표정을 기대했으나 엄마는 별 말이 없다. 오늘도 일이 힘들었겠거니 생각한 아들은 홀로 앉아 오징어볶음에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한다. 오늘따라 유독 말이 없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도 들지만 아들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설거지나 빨리 해놓고 집안 불을 다 꺼서 엄마가 조용하게 잘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한다. 설거지가 끝날 무렵 엄마가 아들을 거실로 부른다.
“나 잠깐 할 말 있어. 여기 좀 앉아봐”
아들은 괜스레 불안해진다. 그제, 어제, 오늘 아침까지도 별 일 없었지만 항상 일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불쑥 찾아온다. 아들이 소파에 앉고 엄마가 말을 꺼내려할 때 벌레가 형광등 밑에서 춤을 춘다. 거슬리는 장애물을 치우는 잠깐 사이에도 아들의 불안함은 커져간다. 오래도록 취업이 안돼 가뜩이나 위축된 그였다.
“내가 이런 말은 안 하고 싶은데 해야겠다”
서두부터 무서운 기운이 감돈다. 엄마의 감정을 알아챈 아들은 더욱 고개를 숙인다.
“오늘 아침에도, 잠깐 쉬는 점심에도 기다렸다. 문자 하나 보내는 게 그렇게 어렵니”
죄지은 듯 고개 숙인 아들은 아직도 무슨 일인지 모른다.
“내가 환갑이야. 다른 날도 아니고 환갑이라고. 내가 돈을 달라고 했니. 내가...”
터져 나오는 감정이 말을 앞선다.
“다른 날도 아니고 내가 이제 60이야. 그런 날인데 아침에도, 점심에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집에 들어와 보니 어떻게 미역국 하나 안보이니. 내가 너네 한데 얹혀사니. 돈을 달라고 했어? 집에서도 나가서도 잠 못 자는 너 걱정하며 잘되기만을 바라는데 오늘 이건 좀 너무하지 않니”
불안했던 죄가 확정되자 아들은 더욱 고개를 들지 못한다.
“내가 너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고개 그렇게 숙이고 있지 말고. 아... 들어가서 잘게”
1분도 안 되는 사이 집안 공기는 얼어붙었다. 향긋하길 바랐던 오징어볶음 냄새가 집안 곳곳에 배여 아들의 머리를 더욱 어지럽힌다. 혼자 남은 아들은 무겁기만 공기에 짓눌려 한동안 소파에 앉아있다.
올해 초부터 엄마는 ‘곧 있으면 환갑’이라고 넌지시, 때론 강렬하게 말했다. 아들은 ‘환갑’이라는 단어에 닿지 못했다. 환갑까지 무병장수한 부모에 대한 고마움과 그 쯤되면 자식이 당연하게 부모를 부양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아들이었지만 ‘60세 가장’ 엄마가 출근한 아침, 텅 빈 집에서 만큼이라도 자기 자리를 만들고자 청소와 빨래, 음식을 하는 아들만 있을 뿐이었다.
습관처럼 인터넷을 들여다보며 입사지원서를 작성하고 저녁 해가 지면 초라해진 얼굴을 고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온 엄마를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생활을 반복하는 아들이었다. 온몸이 삐그덕거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엄마의 신음소리에 아들의 밤은 더욱 어두웠다. 이른 아침, 아들이 깰까 가스 불도 켜지 않고 찬 밥을 먹고 나가는 엄마의 기척을 모르는 아들이 아니었다. 도둑고양이처럼 현관문을 열고 닿는 소리가 나면 아들도 조용히 일어나 주방에 엄마가 남겨둔 그릇을 보며 눈물 흘렸다.
거실 불 끄는 소리도 죄스럽게 느껴지는 아들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한동안 책상에 앉아 멍하니 있다.
‘왜 기억을 못했을까. 매년 깜짝 선물과 꽃다발을 준비했었는데 왜 이번에는 아무 기억도 하지 못한거지’
직업을 구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들은 요일을 구분하는게 두려웠다. 처음에는 월별 계획, 주간 일정까지 짜면서 24시간을 확인했다. 붙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정장 입고 사람 앞에 서고, 아쉽지만 이번 채용에서는 귀하를 모시지 못했다는 문자를 받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점차 아들의 시간은 날짜, 요일 구분이 필요없는 시간으로 흘렀다. 돈 버는 일을 하고 있지 않으니 주중과 주말을 구분할 필요도 없었고 간혹 업데이트 되는 채용공고는 매일 구직 사이트를 전전하는 아들의 지원사 작성 시간을 따라잡지 못했다. 쓰고 또 쓰고 새로이 써보기도 한 입사지원서는 차곡차곡 컴퓨터에 쌓였고 이 질문에 그때 썼던 내용, 저 질문에 한번 붙어본 다른 회사 지원서 내용을 짜깁기하는 요상한 능력이 커져가던 터라 채용 지원 데드라인도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건승’을 기원하며 채용 공고에 나왔던 1차 서류 발표일, 2차 시험 발표일, 최종 입사일을 다이어리에 적어두기도 했지만 몇 달 뒤 오늘에 적혀있는 ‘그 회사의 그 날’들은 아들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들은 점차 요일을 기피했다.
아들은 책상 한구석에 묻혀있는 다이어리를 펼친다. 빼곡하게 적힌 일상들이 지나가고 한동안 텅 빈 종이들이 뒤를 잇는다. 그리고 오늘의 장에 멈춰 선다. ‘엄마 환갑 생일’이라고 적은 못난 글씨가 일어선다. 이름 모를 눈물이 흐른다. 이유 모를 무기력이 평상시처럼 아들을 덮으려 하지만 머리를 세차게 때린다. 아들의 밤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