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아마 꿈.

by 갑자기 흰수염

반짝 반짝, 아마 꿈.


“우리 저녁 먹을래요?”

“네..뭐 그럼 여기 가까이.. 아니 저기 내려가면 자주 가는 데 있어요. 거기 가든지.”

“좋아요”

남수는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관심 주지 않던 사람이다. 혹은 밀어내던 사람이다. 겉모습이 전부로 보이는 사람이 갑자기 속마음을 드러내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퇴근길 습관처럼 들르는 작은 선술집으로 들어섰다. 사장의 핀잔이 메뉴판처럼 흘렀다.

“이놈의 새끼, 저 징글맞을 놈 또 왔네”

“거, 매일 오다시피 하는데 징글맞다니”

“맨날 남자 혼자 와서 홀아비 냄새 풍기면서 술처먹고 가니깐 내가 안타까워서 그래”

“거참, 오늘은 혼자 아니에요”

사장이 이어서 들어서는 수영을 봤다. 얼굴에 미소가 지나갔다.

“써글놈이 그래도 죽지는 않았나 보네. 이쁜 처자 이리 와서 앉아. 여기여기”

남수 앞에 수영이 앉았다. 아직도 남수는 어색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혹은 잘 된 건지 생각을 시작했다. 수영은 말없이 골똘한 표정의 남수를 슬몃 보고는 고개 숙여 살포시 웃었다.


남수가 여기로 온 지 1년이 다 돼 간다. 부장의 지시를 어기고 마음대로 써서 내보낸 기사가 완벽한 오보였다. 이것저것 쌓이고 찍힌 것들이 모여 남수는 결국 지방으로 발령났다. 사회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알 것 같기도 한 그 정의를 위해 남수는 기자 생활을 했다. 주말 없는 생활도 익숙했다. 몸이 고되도 마음이 충만하니 어렵지 않았다. 같은 곳을 보는 동료들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과 함께하는 술 한잔은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늘어가는 뱃살과 턱살만큼 도무지 알 수 없는 정의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도 했다. 그런 생활이 멈춰섰다. 지방에 내려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맥없이 모든 생활이 풀어졌다. 하루의 열정보다는 후회와 자책이 남수를 괴롭히다 체념과 포기가 슬며시 그를 채웠다. 소주병과 맥주 캔 사이에서 잠에서 깬 남수는 불현듯 봉사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왠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이 아니면 봉사활동을 할 수 없을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껏 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월급에서 얼마큼 기부하는 게 전부였다. 사회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남수는 그렇게 태어나자마자 첫 선물로 ‘버림’ 받은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남수를 경계했다. 남수도 아이들과 어색했다. 어떻게 다가가는지 남수는 몰랐고 아이들은 새로운 사람에게 가길 주저했다. 그래도 남수는 매주 토, 일 출근하듯 보육원을 찾았고 공휴일에도 갔다. 기자생활과 전혀 다른 의미로 남수를 채워주는 시간이 늘었다. 위로받는 남수와 빛나는 웃음의 아이들이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 처음 수영을 보았다. 보육원을 찾은지 6개월 쯤 되던 때, 갑자기 보육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공무원이 점검하러 오거나 국회의원이 티 내러 오는가 싶어 신경쓰지 않고 아이들 밥그릇을 닦고 있었다. 잠시 후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람들 사이로 작은 키에 선명한 누군가가 지나갔다. 주변 사람들이 흐릿해지고 그 사람만 조명을 비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첫눈에 반한 게 아니었다. 일반인이 연예인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었다. 평소 연예뉴스는 보지도 않는 남수였지만 수영이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흔하게 장차관, 국회의원을 만나던 남수인지라 지위에 따른 사람의 높낮이에 익숙하지만 당당한 그였다. 스쳐지나가는 수영은 대한민국 최고 여배우라는 타이틀 이외에도 외모에서 풍기는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왠지 남수는 심사가 뒤틀렸다.

‘기껏 배우 하나 오느라 이렇게 호들갑 떨었던건가. 저 사람은 뽐내러 온 거야 뭐야’

온전하게 아이들이 중심이 돼야 할 장소에서 어디서나 주인공이 될 법한 그녀가 여기서도 주인공처럼 행동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딱 그 뿐이었다. 남수는 우르르 몰려간 인파를 뒤로하고 건물 밖으로 나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회사에 출근해 있는 남수에게 보육원장이 전화했다.

“선생님, 오늘 애들 체육대회인데 오실 수 있을까요?”

“그래요? 미리 말씀해주시면 좋았을텐데, 제가 지금 회사입니다”

“네 맞아요. 평일이라 일부러 말씀 안드렸는데 애들이 선생님이 꼭 와야 한다고 졸라서 어렵게 한번 전화드려봤습니다”

“네, 그래도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원장님. 일 끝내고 맛있는거 사서 잠깐 들를게요”

통화를 마친 남수는 오늘 스케줄을 살펴봤다. 오전 회의를 마치고 온 부장에게 갔다.

“저 오늘 연차 쓰겠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 있어?”

“네, 급히 가봐야 할 때가 있어서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렇게 해. 근데 몸이 어디 안좋나. 여기서 적응도 잘 못하는 것 같고 항상 겉도는거 같은데 안 그럴 때도 됐잖아”

그동안 참고 있던 부장도 남수에게 한소리를 했다. 남수는 어설픈 웃음 지으며 자리로 돌아와 퇴근 준비를 했다. 회사를 나서며 불편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보육원에서 채우는 시간이 남수를 더 웃게했다. 깜짝 선물처럼 보육원 아이들에게 갈 마음으로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보육원 밖에서도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는 모습이 보였다. 급하게 차를 대고 아이들에게 향하자 우르르 달려들었다. 보육원장이 다가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되신거에요. 너무 무리하신게 아닌지 걱정이에요, 선생님”

“괜찮습니다. 제가 좋으면 된 거죠 뭐”

운동장 한 편에 설치한 천막에 수영의 모습이 보였다. 남수의 시선을 알아챈 보육원장이 말했다.

“고맙게도 서울서 먼 길을 와주셨어요. 가서 인사라도 나누시죠. 선생님”

“아니에요. 뭐 아는 사람도 아니고, 알 사람도 아닌데요. 전 괜찮습니다”

체육대회는 오후까지 이어졌다. ‘일부러’와 ‘무관심’ 사이 어디쯤의 마음으로 남수는 수영을 모른 체 했다. 우연히 가까운 자리에 있어도 슬몃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물건을 건네줄 때도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채 손만 내밀었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소품을 정리할 때 수영이 남수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저번에도 뵜는데 처음 인사드려요”

물끄러미 남수가 수영을 쳐다봤다.

“인사할 게 있나요. 어차피 애들 좋아서 오는 사람들인데 애들한테만 집중하면 되죠”

살짝 당황한 기색의 수영이 말했다.

“그렇긴한데 그래도 인사하면 좋잖아요”

“네 그래요”

남수는 짧은 대답을 뒤로하고 소품을 들고 옮겼다. 수영이 옆에 있는 박스를 들고 뒤따르며 말했다.

“근데 무슨 일 하세요? 평일이라 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무슨 일 하는지가 중요한가요. 오고 싶으면 오는거죠”

회사에서 급하게 온 터라 남수는 목에 건 사원증을 하루종일 차고 있었다. 카디건 안에 있던 사원증을 수영이 보지는 못했지만 사원증을 연결한 목줄에 회사 로고를 보았다.


다를 것 없는 일요일 점심, 남수는 뒤늦게 보육원에서 밥을 먹었다. 수영이 들어와 식판을 남수 앞에 놓았다. 매니저로 보이는 남성이 따라 앉았다.

“또 보네요. 안녕하세요”

“네”

남수는 신경쓰였다. 밥도 다 먹었는데 일어나야 할지, 차분히 기다려야 할지. 할 이야기도 없는데 시선은 어디로 둬야할지 곤란했다.

“가까이 사시나봐요. 자주 뵙네요”

“네”

“오늘도 저녁에 가실 건가요?”

“네”

대화 의지가 없는 단답형 대답이 이어지자 옆에 앉은 매니저 표정이 울그락불그락 변해갔다. 그러다 들으라는 듯 말했다.

“거참,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저렇게 성의없이 말을 해”

남수도 순간 빠직했다. 혼잣말인 것처럼 내뱉었다.

“왜 앞에 와서 귀찮게 하지”

매니저가 일어섰다.

“지금 뭐라고 한거요?”

“못들으셨나? 다시 말해줘요?”

“거, 대체 뭐하는 사람이 그렇게 삐딱해. 사람이 말을 걸면 친절하게 말해줘도 되는 거 아닌가”

“수영이 말하면 항상 친절하게 대답해줘야 하는건가. 그건 너무 폭력적이지 않나. 그리고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뭐 좀 대단한 사람이면 태도가 달라지려고 물어보는거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보쇼, 여기서 해야 할 것에만 집중합시다. 왜 쓰잘데 없이 계속 여기에 와서도 다른 일을 신경쓰지?”

남수는 매니저, 수영의 얼굴도 보지 않고 식당을 나왔다. 그 이후로 한동안 수영을 보육원에서 보지 못했다. 남수에게 그 시간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에 신경쓰이는 작은 무언가 하나 정도였다. 주중에 회사에 있을 때 ‘수영’이란 검색어로 기사를 찾아본 정도랄까.


보육원 사람들이 분주한게 느껴졌다. 역시나 그녀가 도착했다. 남수는 운동장으로 나가 수영에게 관심없는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내가 그렇게 싫어요?”

남수 등 뒤에서 수영이 말했다.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질문하는게 직업인 그였다. 듣고 싶은 대답이 나오게끔, 상대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필요에 의한 질문을 했던 그였다. 수영이 남수의 대답을 듣지고 않고 이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돼요.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쌀쌀맞아요. 제가 혹시 재수없게 행동한게 있나요?”

“아니요”

“근데 왜 그래요?”

“수영씨는 왜 그래요. 우연히 같은 장소에서 본 사람이고 딱히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도 아닌데... 꼭 모든 사람에게 관심받고 사랑받아야 하는건 아니잖아요?”

“그런거 아니에요”

“그럼 왜 그래요?”

“저도 그게 궁금해요”

수영은 황급히 몸을 돌려 왔던 길로 엉성한 걸음을 걸었다. 남수도 알 수 없는 화끈함이 밀려왔다. 남수 옆에 있던 아이가 남수의 손가락을 살며시 잡았다.

“삼촌, 이모 좋아해?”


아이가 던진 작은 말이 남수의 마음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너무 급하게 휘저어서 잔 밖으로 넘치기도 하고 너무 천천히 휘저어서 도저히 무슨 마음인지 분간이 안됐다.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미간을 찌푸릴 정도로 집중하기도 했다. 남수는 사회가 궁금했었다. 사회를 이끄는 사람이 궁금했었다. 한 여자가 궁금해졌던 건 기억나지 않았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과 사귀었던 적은 있었다. 남수는 일하는 모습의 그녀를 좋아했던 것이고 그 외 모든 부분에서 부딪히면서 자연스레 헤어졌다. 그녀는 헤어지며 “꿈만 꾸지 말고 현실적으로 살라”는 충고도 해줬다. 남수는 최근 연애부터 고등학교 연애까지 생각해봤지만 추억만 가득할 뿐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다. 다가오는 주말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제발 오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안절부절 주말 아침에 됐고 ‘나는 평안하다, 나는 괜찮다, 나는 침착하다’는 이상한 되새김을 반복하며 차에 올랐다. 보육원에 주차하며 ‘연예인 차’가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다행스럽게 없는데 못내 아쉬웠다. 점심시간에도 식당 밖을 자주 쳐다봤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난데없는 요상한 마음이 남수를 흔들었다. 울그락불그락하던 매니저 얼굴이 남수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이들 얼굴에 일일이 뽀뽀를 해주고 보육원을 나섰다. 유독 맑은 저녁 하늘에 별들이 깨끗한 빛을 내뿜었다. 적당한 밤의 추위가 남수의 기분을 좋게 했다. 피식 웃으며 작은 해프닝으로 생각하려던 찰나였다.


“남수씨”

뒤를 돌아보자 수영이 보였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 보육원에는 못들어가고 남수씨 나올 때까지 기다렸어요”

남수는 또다시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었다. 수영이 말했다.

“우리 저녁 먹을래요?”

남수는 마음으로 크게 웃었다. 마음으로 크게 안도했다. 마음의 큰 동작 때문에 입은 어설피 움직였다.

“네..뭐 그럼 여기 가까이.. 아니 저기 내려가면 자주가는 데 있어요. 거기 가든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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