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이는 그 자리에 서서 나를 기다렸다.

by 친절한기훈씨

드라마 속 한 장면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직장인 엄마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급히 회사를 향해 가던 길에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그 자리에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가만히, 조용히, 엄마를 지켜보았죠.


엄마는 늘 바쁘게 출근하느라 앞만 보고 달렸지만,

아이는 늘 그 자리에 서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죠.


육아휴직을 하며 저는 그런 장면들을 종종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어린이집 입구에서 보면 여러가지 상황이 펼쳐져요.

가방을 놓고 와 허둥대는 부모, 지각을 걱정하며 숨 가쁘게 달려온 부모, 아이를 맡기고 나서야 겨우 한숨 돌리는 부모들까지 보았죠.


그리고 그 앞에 선 아이들. 무덤덤하게 교실로 들어가는 아이, 울며 안 가겠다고 버티는 아이, 선생님께 씩씩하게 인사하며 들어가는 아이가 있습니다.


모두 다른 감정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날도 저는 우연히 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세 살 아이를 아침 7시에 맡기고, 저녁 7시가 넘어서야 데리러 온 부모의 장면이었어요.

그 아이는, 긴 하루를 어린이집에서 보낸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작년 제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맞벌이 부부인 저희는 아침부터 전쟁을 치르듯 하루를 시작했어요.

7시 30분이면 첫째는 어린이집 그리고 둘째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회사로 향했죠.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진땀을 흘리며 지하철을 뛰었고, 회사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하루 종일 긴장 모드로 일해야 했습니다. 간혹,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6시쯤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었어요.


그날 만큼은, 덜 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안을 수 있었죠.

지금 둘째는 네 살. 육아휴직 중인 요즘은 제가 좀 더 일찍 어린이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가면, 저 멀리서 저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떠오릅니다.

그 눈빛 속엔 부러움이 묻어 있었고,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데, 선생님이 조용히 말씀하셨어요.

“오늘은 아빠가 빨리 왔다고, 아이가 친구들한테 자랑했어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작년 우리 아이는 하나둘 친구들을 집으로 보내고, 마지막까지 남아 엄마 아빠를 기다렸겠구나 생각이 들며,

그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아이는 말하지 않아도 기억하고, 기다리고, 바라보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저는 이제야 그 눈빛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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