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강요받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야 비로소 책을 읽기 시작한다는 것을, 저는 지난 한 달간 조금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방법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무언가를 보상해주거나, 미션처럼 과제를 주고 수행하게 해보기도 했죠. 물론 처음 며칠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책보다 보상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더 큰 것을 원했습니다. 아이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졌고, 책 읽기의 본래 목적은 희미해져 갔습니다. ‘왜 이런 방식이 어른들에겐 익숙하면서도 아이들에겐 한계를 보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려던 저녁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책을 펴려던 찰나,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오늘은 책 보기 싫어”라고 말했을 때, 저는 한 박자 멈춰 섰습니다. 억지로 책을 보게 하면 읽는 흉내는 낼지언정, 그 안의 문장은 마음속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냥 아이 옆에 앉아 조용히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아이가 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왠지 모르게 답답하고, 괜히 조급해지고, 또다시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라는 자책이 고개를 듭니다. 하지만 그 순간들을 지나며 저는 조금씩 배웠습니다. 아이의 컨디션과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요.
그런 고민을 품은 채, 어느 날 우리는 고척돔에 있는 서울아트 책보고에 가게 되었습니다. 큰 기대 없이 들렀던 그 공간에서 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동화책을 읽고, 책 위에 기대어 그림을 그리고, 옆 아이와 책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 말 그대로 ‘책이 중심이 되는 자연스러운 공간’이었습니다. 저 역시 말없이 아이 곁에 앉아 책장을 넘겼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도 조심스럽게 책을 한 권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권, 또 한 권. 그렇게 읽은 책이 여섯 권이나 되었죠. 집에서는 아무리 유도해도 집중하지 않던 아이가, 오히려 그 공간에서는 스스로 책을 찾고 읽고 있었습니다. 신기했던 건 그날 집에 돌아와서였습니다. 아이가 읽은 책 제목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짧게 감상도 말해주었습니다. “이 책은 주인공이 엉뚱해서 웃겼어요”, “여기 그림이 진짜 멋졌어요.” 저는 순간 멈칫했습니다. 이게 바로, 아이 안에서 일어난 ‘자발적인 반응’이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날의 경험은 저에게 커다란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게 하려면, 책을 가르치려 들기보다 ‘책을 중심으로 한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시키는 것’이 훨씬 강력하다는 사실을요. 책을 읽는 공간의 공기,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대화들. 그런 요소들이 모여 아이를 조금씩 책으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아이는 “그때 본 책 중에 그거 다시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곤 합니다. 저는 말없이 웃으며 도서관 책가방을 챙깁니다. 아이가 스스로 걸어 들어간 독서의 세계, 저는 이제 그 곁에서 조용히 함께 걸을 준비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