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딸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세계를 더 가까이에서 관찰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놀이터, 학원 대기실, 등하굣길, 학교 앞 분식집 같은 곳은 아이들 세계가 펼쳐지는 아주 생생한 무대입니다. 그런 공간에서 자주 마주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누구는 언제나 중심에 있고, 누구는 늘 주변을 맴돌며 서성입니다.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아이'는 따로 있다는 걸 자주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왜 어떤 아이는 유독 친구가 많을까?", "왜 어떤 아이는 항상 모임의 중심이 될까?"
아이들을 관찰하다보니 생각보다 명확한 패턴을 보여주었습니다.
먼저, 인기 많은 아이들은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고 잘 들어줍니다. 자기 얘기를 하느라 바쁜 또래들과 달리, 그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의 말에 "진짜?" "그래서 어떻게 됐어?" 같은 반응을 자주 보였습니다. 상대를 중심에 놓고 대화하는 능력. 이건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자신의 감정을 말로 부드럽게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좀 속상해", "나 이거 조금 무서운데", "이건 내 생각이랑 조금 달라" 같은 말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합니다. 이런 말들은 상대방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표현하는 아주 중요한 기술입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이런 말들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걸까?" 놀랍게도,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대부분 책 읽는 습관을 들여준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는 책 속 인물들의 감정과 갈등, 대화 방식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의 마음을 읽고, 표현하는 법을 익힌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계속하는 아이들, 친구들이 뭘 하자고 해도 자기 의견만 내세우는 아이들은 종종 금세 사이가 틀어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거 안 하면 나 안 해!", "난 그거 하기 싫어. 내가 하고 싶은 거 할래!" 이런 말이 몇 번 오가면, 친구들도 지칩니다. 결국 다음번 놀이에는 그 아이가 끼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곤 합니다.
아이들의 세계도 생각보다 빠르게 ‘관계의 기술’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기술은 단순히 사회성이 좋다고 퉁칠 수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대화, 그리고 책 속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익혀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딸과 책을 읽으며 자주 물어봅니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친구가 이런 말을 하면 너는 어떻게 할래?" 딸은 잠시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말합니다. 그 순간이 저는 참 소중합니다.
정답은 없어도, 함께 고민해보는 그 과정에서 아이는 자기만의 판단력을 조금씩 키워가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저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관찰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그걸 글로 적는 일. 아이와의 시간을 통해, 저는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글을 쓰는 경험을 딸과 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결국 아이의 사회를 함께 배우는 일이라는 걸 느낍니다. 그 속에서 아이도 성장하고, 부모도 같이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인기 많은 아이들의 공통점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힘, 그걸 아이가 키워갈 수 있도록 옆에서 따뜻하게 지켜봐주는 어른의 역할, 그게 전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