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책을 함께 읽기 시작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처음엔 그림책 위주로 시작했고, 지금은 글자가 조금씩 늘어난 책도 함께 본다. 하지만 아직도 책을 읽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에게는 글자 많은 책이 부담이 될 때가 있다. 줄글이 빼곡히 들어찬 책을 펼치면 어느새 몸이 뒤척이고 눈길이 다른 곳으로 향한다. 그럴 땐 괜히 내가 더 조바심이 나곤 했다. 아이에게 맞는 책이 뭘까, 어떻게 하면 책과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도서관에서 아주 낯설지 않은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표지에 작게 적힌 제목, ‘숨은 고양이 찾기’. 어릴 적 내가 푹 빠졌던 ‘월리를 찾아라’와 닮은 느낌이 있었다. 표지 속 사람들 사이로 어딘가 숨어 있을 고양이를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이 책을 아이와 함께 보면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시선이 쏠렸다. 한 장 가득 펼쳐진 장면들. 베이커리, 푸딩속 사람들, 아이스크림 가게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어딘가에 고양이가 숨어 있었다. 말 그대로 숨은 고양이를 찾는 책이지만, 생각보다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고양이는 색과 자세를 바꿔가며 우리를 피해 숨고 있었다. 우리가 예시에 나와있는 고양이와 똑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아이와 나는 한참을 책을 응시하며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이게 고양이 아닐까?"
"응? 아닌 것 같은데, 자세가 다르잖아."
"그럼 이건?"
"고양이긴 한데, 색이 조금 다르네."
이런 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찾는 건 단 하나의 고양이였지만, 그보다 더 많았던 것은 서로의 생각을 묻고 대답하고, 웃고 실망하고 다시 도전하는 그 시간이었다. 아이가 책에 이렇게 몰입하는 걸 오랜만에 본 것 같았다. 고양이 하나 찾는 데 10분이 훌쩍 지났지만, 그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게다가 고양이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책 속에는 다양한 미션들이 숨어 있었다. 병아리 옷을 입은 닭이 걷고 있는 장면도 있었고, 손을 꼭 잡고 웃으며 걷는 두 사람, 어딘가에 숨어 있는 네잎클로버도 있었다. 한 페이지 안에서도 찾을 게 이렇게 많다는 걸 알게 되니, 아이의 눈은 더 반짝였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글자가 적다는 데 있다. 글을 읽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글이 없기 때문에 아이가 더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하고, 무엇이 맞는지 나와 이야기하며 추리하고 상상했다. 독서는 읽는 행위만이 아니었다. 보는 것, 찾는 것, 느끼는 것, 말하는 것. 그것이 모두 하나의 ‘읽기’라는 걸 이 책은 알려주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놓였던 건, 아이가 책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한두 장 넘기고 "다 봤어"라고 말했을 텐데, 이번에는 페이지마다 머물며 더 보고 싶어 했다. 때로는 "엄마, 다시 앞장 볼래"라고 말하며 거꾸로 넘기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책을 고른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 우리가 함께 이토록 오랜 시간을 웃으며 이야기하게 될 줄 몰랐다. 숨은 고양이를 찾는 일이, 이렇게 따뜻한 경험이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아이가 책을 읽기 힘들어할 때, 꼭 글로 이루어진 책만이 해답은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가끔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책에 흥미를 잃을 때 이와 같은 책들이 아이에게 책의 흥미를 올려줄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책 한 권이 아이의 세계를 넓혀주고, 부모와 아이 사이를 더 가까이 이어줄 수 있다는 걸 느낀 하루였다. 책이란 결국,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어떻게 읽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숨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에게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