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내가 만난 사람들과 만날 사람들

조선왕조의 설계자 정도전

by 랄라라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뀌기도 합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 또한 나를 만나 그들의 삶이 변하기도 합니다.

정도전은 이색이라는 훌륭한 스승과 정몽주라는 친구를 만나 유학자로서 성장합니다. 하지만, 함께 공부하며 자란 정도전과 정몽주는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정도전은 고려를 버리고 조선을 개국하였습니다. 정몽주는 고려를 개혁하려 하였으나 역시 태종의 손에 죽음을 당하나 충신의 상징으로 기억됩니다.

치열한 삶을 살았던 정도전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지 생각해봅시다.


살기를 탐내는 것은 평안한 일이 아니다!

정도전은 1362년 과거에 합격하여 관리의 길을 시작합니다. 성균관에 들어가 순조롭게 출세의 에 길을 걷고 있던 정도전이 만나게 되는 인물은 권문세족입니다. 공민왕이 죽고 우왕이 즉위하면서 이인임, 염흥방 등의 권문세족이 권력을 잡습니다. 권문세족은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의 땅을 빼앗아 그들의 땅을 넓혔는데, 그 땅이 강과 산을 경계로 할 만큼 넓었으며 백성들은 송곳을 꽂을 땅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어요. 거기에다 권문세족들은 친원반명, 즉 원나라를 가까이하고 명나라를 배척하는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어요. 정도전은 망해가는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면서 새롭게 나라를 건국하여 힘이 강해지고 있는 명나라를 멀리하는 것이 옳지 않은 외교라고 생각하였으며, 백성들의 어려운 삶이 권문세족의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지요. 권문세족들은 이런 정도전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어요. 1375년 원나라에서 사신이 고려로 왔어요. 원나라와 고려가 힘을 합쳐 명나라를 공격하자는 것이었지요. 이인임 등의 권문세족들은 정도전에게 사신을 접대하도록 했어요. 하지만, 정도전은 이를 거부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내가 사신의 목을 베어 오거나 아니면 묶어서 명나라로 보내겠다”

결국 정도전은 전라도 나주로 귀향을 가게 되었답니다. 3년의 귀양살이가 끝난 뒤에도 다른 관리들의 미움을 받아 6년간의 떠도는 유랑생활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느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이러한 정도전의 모습은 그 이후에도 바뀌지 않습니다. 정도전이 유배를 가면서 쓴 시 <감흥>에서도 그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 예부터 사람은 한번 죽는 것이니

살기를 탐내는 것은 편안한 일이 아니다>

쇠는 두들길수록 더 단단해진다.

사람들은 노력하는 일이 실패로 돌아가고 힘든 삶이 계속될 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을 하게 됩니다. 포기하거나 더욱 노력하는 것입니다. 정도전은 후자였습니다.

유배생활 중 정도전에게 찾아온 소중한 만남은 가난하고 순박한 백성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농사짓고 국가에 세금을 내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으며, 지혜로웠습니다. 그곳에서 백성들의 삶을 모르는 관리, 이론만 알고 실천을 모르는 학자의 지식이 얼마나 거짓인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후 6년간의 유랑생활은 정도전에게 길고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제자를 가르치며 삶을 꾸려나갔으나 정도전을 미워하던 관리가 그의 집의 헐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정도전은 농민과 친구의 집에 빌붙어 살기도 하였으며 스스로 농사를 지어 식량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머릿속은 나라와 백성을 위한 ‘개혁’이라는 두 글자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1383년 정도전은 드디어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이성계를 만나게 됩니다. 정도전은 당시 왜구 토벌로 이름이 높았던 이성계를 만나러 함흥으로 갑니다. 부패한 관료로 인해 힘든 백성들과 나라를 구하기 위한 개혁에 필요한 힘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바라본 이성계와 그의 군대는 잘 훈련되어 있었으며 무기들도 잘 정비되었습니다. 이성계 역시 정도전의 국가 경영관에 대해 감탄하였습니다. 이성계는 개혁을 주장하는 정도전에게 협력과 지원을 약속하였습니다.

나라도, 임금도 백성을 위해 존재할 때만 가치가 있다.

정도전은 개국 1등 공신으로 막강한 권력을 차지하고 새 나라의 전반적인 제도와 국가정책을 결정하였습니다. 정도전은 1394년 <조선경국전>을 편찬하게 됩니다. 이 책은 국가를 통치하는 규범으로 조선왕조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으며, 후에 조선을 다스리는 기준이 되는 최고의 법전 <경국대전>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조선왕조를 설계해 간 정도전이 생각한 국가의 경영은 재상 중심제입니다. 정도전은 왕조국가의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어리석거나 난폭한 사람이 왕이 되었을 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훌륭한 재상이 정치적 실권을 가지고 임금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신하를 잘 통솔함으로써 해결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임금은 상징적인 존재이며, 나라의 모든 일은 신하들이 모여 결정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판단한 것이지요.

왕조 사회에서 그의 이러한 생각은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조선왕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이루고 있는 백성이 중요하였습니다.

그는 “나라도, 임금도 백성을 위해 존재할 때만 가치가 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이 개국된 지 6년 만에 이방원(나중에 3대 임금 태종이 됨)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충절의 상징으로 격상된 정몽주에 비해 두 왕조를 섬긴 변절자 또는 처세에 능한 간신으로 비판받았어요. 그는 조선이 끝나가는 고종 때 가서야 공신 칭호를 돌려받습니다.


이렇든 정도전은 권문세족, 고통받는 백성들, 이색과 정몽주, 이성계, 이방원을 만나며 다양한 삶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하지만, 결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함께 했던 사람들에 따라 다양한 삶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 이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도전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며 3가지 질문을 스스로 해봅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그 사람을 통해 ’나‘는 어떻게 변하고 싶은가?

나는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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