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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티나 Jun 15. 2020

사노라면

오늘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서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30대 후반에 마주한 내 모습은..

참 많이도 변해 있었다.


10kg이나 불은 몸무게는 거울에 여실히 보였다. 배에 힘을 줘보기도 하고 좀 더 날씬해 보이게 옆으로 서보기도 하지만 변한 건 없다. 3년 전, 필리핀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변화된 환경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바로 내 몸무게였다. 그리고 불어난 몸무게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변함이 없었다.


2년째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데 슬프게도 매번 실패한다. 예전에는 밥 한 끼만 굶어도 금방 몸무게가 빠졌었는데 이제는 많은 에너지를 들여 남들보다 더 노력하지 않으면 0.1kg 조차 빼기 힘들다.


문득 중학생 때가 생각났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그때는 중2병이 온 교실에 전염병처럼 퍼져있었다. 그 당시 나와 같은 반의 남학생들은 삶의 무엇이 그토록 괴롭고 힘들었던지 반항과 일탈을 일삼았다.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여자애들을 놀리는가 하면 키와 덩치가 조금 큰 녀석들은 작은 애들을 교묘히 괴롭혔다.


한 번은 내가 당번이었을 때었다. 하필 같이 당번 차례가 된 친구가 반항과 일탈을 일삼는 그 남학생 무리들과 잘 어울려 다녔던 소위 날라리였다. 그녀는 교복 치마를 보통 여학생들보다 짧고 딱 달라붙게 고쳐 입었고 최신 유행하는 깻잎 머리도 했었다. 지금 보면 촌스러워 보이는 그 스타일이 그때는 왜 그렇게 예뻐 보였던지 모르겠다.  그녀와 같이 하는 당번 활동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떨지 뻔히 보였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본인 담당의 일을 하지 않아서 담임 선생님이 잔뜩 화가 났다.  


"당번 누구야!? 얼른 일어나!"


나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났다. 그녀도 담임 선생님은 무서웠던지 바로 일어났다. 당번 활동 좀 열심히 하라는 선생님의 일장 연설이 시작되었고 나는 내 할 일을 다 하고도 혼나는 상황이 무척이나 짜증 났다. 그래서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온 힘을 다해 째려봤다. 그러자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시자마자 그녀가 내 자리로 씩씩거리며 왔다. 그녀는 내 책상을 발로 툭툭 차며,


"야~! 종 치면 화장실로 따라와!"


하는 것이었다.


그녀를 째려보는 것으로 소심한 반항을 했던 나는 화장실로 따라오라는 말을 듣자마자 심장이 콩닥콩닥 뛰며 겨드랑이에 땀이 흐르는 것 같은 큰 긴장감에 휩싸였다. 나는 속으로 제발 종아 치지 말아라 하고 되뇌었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그녀는 어느새 그녀와 친한 날라리 무리들을 다 불러 세웠다. 수적으로 보나 깡으로 보나 화장실로 가면 왠지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책상에 엎드려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얼른 시간이 흘러 수업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자 그녀가 내 자리로 오더니 다시 책상을 발로 툭툭 찼다.


"야~너 왜 안 나와!?"


나는 무서워서 대답은 하지 않고 그냥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아놔~ 너 아까 나 째려봤지! 왜 째려봤어!?"


그 순간 나는 무슨 자신감인지 이런 황당무계한 말을 내뱉었다.


"째려본 게 아니라 내 눈이 원래 찢어졌거든!?"


그 말을 들은 그녀는 너무 황당했던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서 나를 쳐다봤다. 다행히 내 짝꿍이었던 남학생이 그녀한테 저리 비키라고 하는 바람에 그 공포의 시간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그 후 15년이 흘러 나는 동네에 있는 한 자원봉사센터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를 무섭게 했던 그 날라리 여학생을 만났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모르는 척하고 봉사활동 관련하여 문의를 했다. 화장실로 따라오라던 그녀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상상하지도 못했던 자원봉사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센터를 나오며 피식하고 혼자 웃었다. 그 당시 소심했던 내가 다시금 생각나서 웃었고 사노라면 날라리가 자원봉사를 하는 날도 다 오는구나 하고 멋쩍어 웃었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중 2 때의 나처럼 소심하지 않다. 대장간의 칼이 두드릴수록 더욱더 단단해지듯이 나는 세월의 모진 풍파를 겪어내며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    




사노라면 지금 이렇게 두껍게 올라온 살 쯤이야 언제든 덜어낼 수 있으리라...


그러니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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