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앙 Sep 13. 2020

부엌에서 플라스틱을 없애라

미니멀리스트의 부엌

1년 동안 집착하듯이 비워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훅훅 비워지지 않는다. 한계에 다다랐다. 버릴 게 없어진 것일까. 아니지.. 버릴 게 없다는 것은 미니멀리스트의 기본자세에 위배된다. 생각해보라. 몽고인들은 8 식구가 5평 남짓한 게르에서 살고 있다. 몽고인 한 가정이 가지고 있는 물건은 1000여 개 남짓이다. 그 말 즉슨 내가 아직 비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뜻.

 나의 부엌은 겉보기에 분히 니멀리스트 부엌이 되었지만 나는 더 비워내고 싶었다.


그래서 새로운 과제를 나에게 부여했다.


나의 부엌에서 플라스틱을 없애라


어떻게 하면 더 비울 수 있을까에 고민하던 차에 찾은 참신한 접근법. 여태 이 물건이 필요한지.. 이 물건은 나에게 어떤 효용가치가 있는지를 따지면서 비웠다. 복잡하다. 단순하게 플라스틱인지 아닌지를 보기로 했다. 플라스틱 비율이 높을수록 이건 최근 몇십 년 안에 만들어졌을 것이고 편리함을 위한 것이니 없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나의 과제 선정에 대한 근거다.

신난다.

후보진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다. 아직도 도전 중일 정도이니 말이다.


락앤락 비우기

 뚜껑만 실리콘이나 플라스틱으로 된 락앤락까지도 모조리 아웃. 그럼 꽉 닫아야 하는 음식은? 뚜껑과 용기가 스탠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기도 하거니와 꽉 닫아서 음식을 오래 보관하지 않는 것이 미니멀리스트의 냉장고이다.


비닐봉지나 비닐랩 안 쓰기

비닐랩은 정말 요긴하다. 지만 생각해보면 비닐봉지와 비닐랩을 휴지 뽑듯이 톡톡 뽑아 쓰는 습관이 우리 엄마 세대부터였던 거 같다. 이전엔 그냥 그릇에 보관하고 빨리 먹어 없앴다. 냉장고가 지금처럼 엄청나게 클 필요가 없었던 때 말이다. 혹은 마트에서 장을 보면 나오는 포장비닐이나 랩을 재활용해서 사용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더라.


텀블러 비우기

알고 보면 올 스탠인 척하는 텀블러도 뚜껑은 대부분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에 뜨거운 게 닿으면 환경 호르몬이 나온다며 요즘은 뜨거운 음식이 플라스틱 그릇에 나오는 걸 꺼려한다. 그러면서도 스벅에서 예쁜 텀블러 나오면 갖고 싶다. 이런 이중적인 마음은 플라스틱을 없애자는 단순한 과제 아래 깔끔히 정리된다. 모든 텀블러는 싸악 없애고 뚜껑까지 스탠으로 장착된 텀블러 하나만 유지하고 있다.


전기밥솥 비우기

전기밥솥이야말로 뜨거운 음식을 넣는 플라스틱 덩어리! 물론 안에 든 밥솥은 스탠이랑 천연 돌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곤 하지만 쨌든 전기밥솥도 내 과제 안에 넣어서 비워 버렸다. 대신 냄비나 압력밥솥으로 대체하고 있다. 안타까운 건 압력밥솥 꽁다리랑 손잡이가 플라스틱이라는 점. 떼어내고 싶다. 


전자레인지 비우기

얘도 마찬가지로 곳곳에 플라스틱으로 덮여 있다. 그래서 과감히 비웠다. 대신 햇반이 각종 3분 요리는 냄비에 물 끓여서 데운다. 냉장고 있던 치킨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서 약한 불로 사사삭 돌려가며 데운다. 냉동실에 있던 얼린 떡은 찜기를 이용한다. 맞다. 나는 참 힘들게 산다. 하지만 큰 플라스틱 덩어리는 하나 없앴다. 홀가분하다.


톱니 과도 안 쓰기

손잡이가 플라스틱인 빵칼. 부엌칼로 대체 가능다. 집집마다 한 두 개는 있는 과도여서 버릴 생각을 못 했다. 손잡이가 플라스틱이다보니 비움의 대상이 되었다. 실은 이것도 우리 따로 장만하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긴하지만 요긴할 뿐 필수템은 아니었다.



신기했다. 새로운 관점에서 보니 부엌뿐만이 아니라 화장실, 거실 곳곳에 비워낼 거 투성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되려 플라스틱 아닌 물건이 더 적다. 플라스틱이 내 생활 속에 깊게 파고들어 벗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에 좀 무서워진다. 계속 도전했다. 우리 집에서 플라스틱을 없애 버리겠어!라는 생각으로 유튜브 찾아보고 구글링 하면서 대체품을 찾아 다녔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별난 사람이 되어 갔다. 냉장고는 대체할 게 있는지.. 플라스틱 통에 파는 각종 조미료를 다 만들어 볼까...

결론은 실패! 플라스틱의 승리다. 이때부터 환경에 관심 가지기 시작했고 모든 플라스틱으로 된 물건들은 바꾸거나 사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돈이 들기 시작했다. 친환경에 예쁜 것들은 너무 비싸다.


작가의 이전글 미니멀리스트와 고양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