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의사 잘 만나야 한다

2025.7.27 (7m 5d)

by 슈앙

하루 8번 정도 설사한 지 벌써 일주일 넘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지사제를 먹인 지는 5일째. 똥기저귀 치우자마자 뿌지직 대던 설사가 이제 한 끼당 두 번 정도로 줄었다. 줄긴 줄었다고 해야 할까. 양갱이가 열도 없고 활달하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병원 처방을 따르면 될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한다.


설사 이틀째 되던 날 병원에 갔었다. 의사는 양갱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듣더니 장염이라 확신했다. 7개월 정도 아기의 장염은 보통 손으로 인한 감염이니 일주일 정도면 나을 것이라 했다. 지사제(하이드라섹산)와 유산균(람노스)을 처방해 줬다. 하지만 약을 다 먹고 나서도 여전히 설사가 잦아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이번엔 세균성 감염일 수 있다며 항생제(지스로맥스)를 처방했다. 없던 잠투정이 심하다고 하니 진경제(후로스판액)도 처방했다. 사흘동안 항생제를 먹고도 설사가 계속되면 유당불내증을 의심해봐야 한단다.


뭐지? 무슨 진단을 이 약 저 약 써가면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지? 이렇게 어린 아기에게 약을 있는 대로 처방해도 되는 건가. 안 그래도 양갱이는 요로감염으로 매일 항생제(셉트린정)를 먹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항생제(지스로맥스)를 먹인다는 게 영 찝찝했다.


어제 8개월 아기 청룡이네가 집에 놀러 왔는데, 청룡이 아빠가 약사라 물어봤다. 그의 의견은 장염이나 유당불내증보단 오랫동안 요로감염으로 먹인 항생제로 균형이 깨져 설사가 나타나는 것 같다고 했다. 본인이라면 유산균을 좀 세게 먹여 볼 것이라며 비오플을 추천한단다. 그 소아과의사보다 훨씬 말이 되는 합리적인 진단이다


또 다른 지인인 소아과 전문의 MIN에게도 연락해서 물어봤다.


첫 번째로 의심할 것은 요로감염으로 장기간 복용한 항생제로 인해 장내 세균층 균형이 깨져 나타난 현상일 수 있단다. 본인이라면, 항생제보다는 유산균을 좀 더 강하게 처방했을 것이란다. 청룡이 아빠와 같은 의견이다.


정작 양갱이 배를 청진기로 들었던 소아과 의사는 요로감염 항생제와 양갱이의 설사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했다.


이번에 처방한 항생제(지스로맥스)는 항생제에 강한 균에 통하는 항생제라고 한다. 하지만 그 세균을 정말 죽인다는 보장도 없고 괜히 설사만 더 심해질 수 있으니 본인이라면 처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기 2시간 전에 이미 항생제를 먹여 버렸다. MIN은 이왕 먹이기 시작했으면 3일 먹여보란다. 지수로맥스는 3일 복용해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MIN 역시 유당불내증에 대해선 소극적인 의견이었다.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면서도 상세히 설명하길, 장염이 오래되면 장점막 끝에 유당을 소화시키는 효소가 일시적으로 손상되어 유당불내증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그때 설사분유를 먹이긴 한단다. 이 둘의 말이 훨씬 설득력 있다.


내가 소아과 전문의의 진단을 믿지 못하고 여기저기 물어보고 확인하는 데는 실은 이유가 있다. 양갱이 태어나고 처음 선택한 소아과에서 양갱이의 고열을 단순 열감기로 판단했었고 5일 지켜보라고 했다. 그때가 양갱이 80일 갓 지났을 때였다. 인터넷 떠도는 말에 휘둘리지 않고 양갱이를 직접 보고 진단한 전문의의 말을 믿었다. 열이 내리지 않는다고 함부로 병원 옮기지 말라는 책도 믿었다. 그렇게 미련하게 4일까지 기다리다 열은 40도까지 올랐다. 결국 요로감염으로 진단받아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대부분 3일 안에 퇴원하는데, 양갱이는 5일이나 입원했다. 늦게 치료하는 바람에 염증수치가 16으로 너무 높게 나와 치료 우선순위를 높여줄 정도였다. 만나는 의사마다 하나같이 의아해했다. 100일도 안된 아기의 고열을 어떻게 지켜보라고 할 수 있냐며, 입원치료 대상이라며.


이때 깨달았다. 소아과 의사를 잘 만나야 한다!


요로감염을 놓친 의사와 장염을 진단한 의사는 공통점이 있다. 병을 확률로만 진단한다는 것이다. 고열의 원인은 대부분 열감기이니 열감기로 우선 진단 내려 기다려보자고 했고, 설사의 원인은 높은 확률로 장염이고 장염의 원인 대부분은 손으로 인한 감염이니 그렇게 진단 내리는 것이다. 80일 된 아기였다는 점과 요로감염으로 항생제를 장기간 복용하고 있다는 양갱이만의 특징과 상황은 무시한 채, 일반적으로 높은 가능성이 있는 병으로 진단하고 처방하는 방식으로 보인다. 첫 번째 처방으로 낫지 않으면 그다음으로 높은 확률의 병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환자의 특징과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확률적 진단이기만 하다.


진료를 마치고 나가기 전에 의사에게 물었었다.

"만일 제가 병원 오지 않고 설사를 좀 더 지켜봤으면 이 장염은 어떻게 됐을까요?"


의사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의사는 병을 낫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의사는 병을 낫도록 도와줄 뿐이죠. 철학적이긴 한데..”


내 질문의 의도는 장염은 병원 오지 않아도 알아서 낫는 병일까요?라고 묻는 건데 뭔 뜬금없는 소린가 싶었다. 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대뜸 그런 말을 소신인 것처럼 말하는 이 의사는 책임 회피 성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의 병을 낫게 함에 있어서 한 발 물러선 느낌이다. 병이 낫지 않는 건 환자의 탓이지 의사 책임은 아니라는 뜻으로 여겨진다.


학원 선생님이 학생에게 성적 올리는 건 네가 공부하기에 달렸다고만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함께 나아가보자가 아니라 한 발 물러선 제3자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 같다. 성적이 안 오르면 그건 학생이 공부를 안 한 거지 선생이 잘못 가르친 건 아니다는 책임 회피. 아이의 상황과 성향은 무시하고 내가 가르칠 내용만 가르치겠다는 태도.


그런 학원에 누가 가고 싶겠는가.

그런 병원에 누가 가고 싶겠는가.

그런 생각이 일종의 철학적 접근이라고 생각하는 의사가 어찌 환자를 면밀히 보겠는가. 그러니 단순하게 확률로’만‘ 병을 진단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또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 고민이다. 언제쯤 좋은 소아과 의사를 만나 정착할 수 있을까. 요즘 소아과 전문의가 귀하다 귀하다 하는데.. 좋은 소아과 의사가 정말 귀하다.


7개월 기념 촬영
7개월 기념 촬영 메이킹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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