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7.29 (7m 7d)

by 슈앙

자타공인 미니멀리스트인 나는 책을 많이 보관하지 않는다. 책이 많으면 책 먼지만 쌓이고 책장만 쓸데없이 자리를 차지한다. 자주 보는 요리책 몇 권, 소장가치 있는 책 두어 권, 추억이 서린 책 두어 권이 다다. 남편 책도 결혼 후 꾸준히 설득해서 몇 권 남지 않았다. 장은 당연히 없고 수납장 위 한 켠에 모아두었다.


아이가 있는 집 대부분 거실 한 벽면을 아동 전집으로 가득 채운 집이 많다. 저 많은 책을 다 읽나 싶기도 하고 한 번 읽은 책을 애들이 여러 번 읽는지도 궁금하다. 무엇보다 인테리어가 너무 답답하다. 현관문 열자마자 보이는 벽면이 빽빽한 전집으로 가득 차면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가도 말겠다.


이 또한, 부모들이 괜히 그러겠는가! 양갱이를 키우면서 그 답답한 인테리어를 선택한 부모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내 아이가 언제든지 책을 쏙 꺼내서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부모 마음. 나도 요즘 슬슬 올라온다.


하지만, 아직은 답답함와 책먼지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덕분에 양갱이는 다른 아기들에 비해 초점책도 늦게 시작했다. 세상만물이 초점 대상인데 초점책이 필요하겠나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흔한 병풍 책이나 헝겊책도 없다. 병풍 책은 태어나자마자 공부라는 굴레에 가두는 듯했고 헝겊책은 아무리 천이라 해도 플라스틱 소재가 조금이라도 포함되기 때문에 입으로 들어가는 게 싫었다. (참 별나다) 지인이나 양갱이 고모들이 준 책 몇 권만 있을 뿐이다. 5권도 안 되는 책을 돌아가며 반복하다 보니 양갱이가 아니라 읽어주는 내가 지겨워졌다.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내가 재미없다. 그나마 양갱이는 번 처음 본 것처럼 반응하니 다행이다.


나도 재밌게 얘기해 주고 색감도 있는 책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요리책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187가지 레시피가 있는 요리책인데, 10년 전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때 산 책이다. 그 책으로 한 달에 서너 번 사람들을 초대해서 하나씩 하나씩 187개 모든 요리를 했었다. 책은 너덜너덜해졌고 유튜브에 훨씬 좋은 레시피가 많지만 버릴 수 없다. 요리 하나하나에 나의 추억과 이야기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해 줄 이야기도 많고 색감도 다양하니 딱이다!


여우가 사과나무에게 사과를 얻어내는 이야기 대신 생애 첫 요리로 주먹밥 만드는 데 6만 원이나 쓴 이야기를 들려줬다. 곰 세 마리가 달이랑 노는 이야기 대신 전복삼계탕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얘기해 주었다. 양갱이에게 이야기해 주다 추억에 젖어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내가 더 신나서 딴짓하는 양갱이를 끌어다 앉혀서 더 얘기해 준다. 동화책보다 사용하는 어휘도 수준 높고 훨씬 다양하다.



앞으로 요리책으로 시간 보내면 되겠다! 했는데.. 양갱이가 내 소중한 요리책을 침으로 푹 적신 뒤 구기고 찢고 난리다. 게다가 10년 넘게 간직하는 동안 음식물 튀고 손때 묻고 해서 많이 더럽다. 그러고 보니.. 이것 때문에 양갱이가 설사 하나 싶다.




여전히 책 늘릴 마음은 없이 다시 대안을 찾아야 했다. 동네 문고에 갔다. 날이 더워지면서 정자 대신 동네 문고에서 시간을 보내려 했지만 분위기가 아닌 거 같아 포기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영유아용 도서가 꽤 많은 곳이었다. 오늘 5권 빌렸다. 5권 중 아이가 똥통에 빠져버려 변소 귀신에게 똥떡을 바치는 내용의 동화를 들려줬다. 나도 재밌다. '똥'이라는 소리가 재밌는지 양갱이도 까르르 웃는다.



거닷!! 앞으로 동네 문고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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