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의식

2025.8.15 (7m 24d), 불 끄기

by 슈앙

수면의식의 목적은 이제 자야 할 시간임을 알리고 아기에게 제발 얼릉 자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책이나 블로그에서 추천하는 수면의식은 목욕 - 수유 - 마사지 - 책 읽어주기 - 굿 나잇 인사 - 소등 이 가장 대표적인 거 같다.


남편 없이 수면의식을 치러야 하는 내게 다소 부담스러운 루틴이었다. 매일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루틴이어야 했다. 특히 목욕은 강도 높은 노동이었기에 매일 나 혼자 하는 것은 무리였다. 책 읽기의 경우, 양갱이는 책을 장난감으로 인지한다. 물고 두드리고 꺄르르 웃는다. 앞에서 애써 했던 수면 의식으로 겨우 잠자리로 다 이끌어 놓고선 마지막에 장난감 쥐어 주며 재각성시키는 꼴이다.


그래서 나의 수면의식 루틴은..

수유 - 세수 - 기저귀갈기 - 마사지 - 소등


목욕 대신 간단한 세수로 대체했고 책 읽기는 과감히 제외했다. 부담스러운 루틴을 더 간단히 하려면 마사지도 빼야 하지만, 나와 남편이 키가 작은 편이라 매일 꾸준히 다리 마사지를 해주고자 이건 넣었다.


마지막 소등은 양갱이를 안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불을 끄는 방식으로 했다. 직접 불을 꺼보라며 스위치에 양갱이 손을 갖다 대 보기도 했다. 물론 불을 끄는 대신 스위치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예전에 엄마가 나와 동생 키울 적에 제발 불이라도 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단다. 까치발로도 손이 닿지 않아 이 간단한 심부름조차 시킬 수 없어서 답답하셨다고 한다. 이 말씀이 생각나 양갱이에게 불 끄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아직 손가락 끝에만 힘을 주는 법을 모르는 양갱이는 스위치만 만지작거리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저께 처음으로 양갱이가 불을 껐다.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센 힘이 필요하기에 우연으로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정확하게 톡 튀어나온 부분에 엄지를 갖다 대고 손가락 끝에 힘을 주고 밀어내는 명확한 불 끄기 동작이었다. 개월 반복하고 난 뒤의 성취라 어찌나 대견하고 기특한지 차분해야 하는 수면의식은 온데간데 없이 양갱이 안고 팔짝팔짝 뛰며 연신 잘했다며 꽈악 안았다.


그다음 날은 못 했지만 오늘 또 두 번째로 직접 불을 껐다. 생후 8개월이 불이 끄다니 우리 양갱이가 너무 기특하다. 남편과 여기저기 얘기해도 반응이 미지근하지만 수개월동안 나와 양갱이가 함께 치른 수면 의식 속의 성취이기에 스스로 충분히 뿌듯했다.


이제 이 연약하고 강한 존재와 많은 것을 함께 배워 나간다는 생각에 앞으로의 삶이 기대된다.

영상으로 남겨보려 했지만 실패!
불끄기처럼 곧 소파 밑 빠져나오는 법도 깨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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