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 육아의 장난감

2025.8.13

by 슈앙

임신했을 때, 인상 깊게 본 책이 ‘칼 비테의 자녀교육법’이다. 미숙아로 태어났지만, 아버지 칼 비테의 아이에 대한 사랑과 노력으로 세기의 천재 칼 비테를 교육시킨 과정이 담겨 있다. 신생아 시기부터 다양한 자극에 끊임없이 노출시키라는 것이 주된 내용 중 하나다. 물론 아이의 사회성, 놀이의 중요성 등 다른 내용도 있지만, 꽤 많은 부분에서 아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다양한 자극에 노출하라는 것이 주된 골자 중 하나로 이해했다. 아버지 칼 비테처럼 아이를 키워야 천재를 만들 수 있다면, 솔직히 자신 없다. 하지만 책에서 본 대로 다양한 시도는 하고 싶다.


아이를 키우는 집은 대체로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장난감으로 가득 차있다. 소위 국민템으로 불리는 타이니모빌에서부터 꼬꼬맘, 아기체육관은 없는 집이 없다. 알록달록한 색상과 여러 가지 노랫소리로 이뤄졌으니, 칼 비테가 강조하는 다양한 자극제임은 확실하다. 놀이 장난감을 만든 사람들은 ‘칼 비테의 자녀교육법’을 읽은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아이가 혼자서도 재밌게 가지고 노는 걸 보면 안 사주기 어렵다.


나는 수많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다. 아이 입에 플라스틱 덩어리를 쪽쪽 빠는 게 싫은 게 첫 번째다. 아무리 인체 무해하다고 해도 플라스틱은 플라스틱이다는 생각이 강하다. 시끄럽고 탁한 소리의 요란한 자극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우드 앤 화이트로 꾸민 우리 집 인테리어를 헤치기 싫은 마음도 컸다.


직접 만들어볼까라는 생각도 했다. 폭싹 속았수다에 나온 전복껍데기와 종이학으로 만든 모빌이 딱 내 스타일이다. 출산하고 보니 아이 키우면서 장난감을 만들어 쓴다는 것은 안 될 말이다. 관절이란 관절은 모두 욱신거리고 아기 먹이고 재우는 것만으로도 하루 진이 다 빠지는데 무슨 장난감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출산 전 철없던 생각이었을 뿐이다.


칼 비테뿐 아니라 여러 책에서 가장 좋은 장난감은 엄마의 표정과 노랫소리라 한다. 학술적 근거를 가지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겠거니 싶다. 말이야 쉽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나의 표정, 대화, 노래로 장난감을 완전 대체할 순 없었다. 엄마가 지친다.


플라스틱을 최소화하면서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엄마도 즐겁게 같이 놀아줄 수 있고

아이도 재밌어라 하는 장난감을 찾고자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다.

생각보다 다양한 방법이 있다.


햇살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12월 겨울에 태어난 양갱이는 100일쯤 지나 날이 풀리자마자 유모차에 태워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거의 매일같이 돌았다. 햇볕에 반짝이는 나뭇잎에 까르르 웃는 모습이 너무 이뻤다. 자연만큼 좋은 자극이 또 어딨을까.


지나가는 사람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은 동네라 정자에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 해도 지나가는 분들이 다가와 말 걸어주신다. 이쁘다고 덕담도 하거나 한참 얘기를 나누고 가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말소리를 듣는다. 6개월 전후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뇌발달에 좋다고 한다. 다가오지 않고 그냥 지나가더라도 ‘저기 빨간 모자 쓴 할아버지가 걸어가시네~’ 라며 말해준다. 천재의 첫 번째 능력이 관찰력이라던데.


나무 장난감


요즘 나무 장난감이 다양하고 많다. 나무와 나무가 부딪혀 나오는 소리가 참 맑다. 비싸서 문제라곤 하지만, 당근마켓에 아주 저렴하게 많이 나와 있다. 나무 장난감은 물고 빨고 해도 구연산 물로 닦으면서 쓰면 되니 관리가 어렵지 않다. 내 경우엔, 주변에서 나의 극성스런 자연주의 생활을 아는 지인들이 많이들 나무 장난감 선물을 해주고 있다.


냄비와 나무주걱


땅땅땅 소리가 좀 시끄럽긴 하지만, 양갱이가 재밌어라 한다. 스테인리스 냄비에 비친 자기 모습을 뚫어져라 보기도 한다. 집에 있는 큼지막한 식기류는 대체로 물고 빨고 해도 안전하고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고 있으니, 주방 수납장을 뒤져 아무거나 던져주면 되니 편하다.


푸욱 익힌 표고버섯이나 고깃덩어리


자기주도식의 의도라기 보단 촉감놀이 차원에서 다양한 식재료를 푸욱 익혀 쥐여주곤 한다. 미끌거리는 표고버섯, 육즙의 감동이 있는 고깃덩어리 등 하나씩 익혀 쥐여 줘보고 있다. 식재료 중에는 주의가 필요한 것이 있다. 쥐면 뭉개져서 안전하다고 생각한 바나나 먹다 우웨에엑 토했다. 이가 없어 못 자를 거라 생각한 오이를 침으로 녹여 잘라내 뺏기도 했다.


장난감 도서관


월령에 맞는 장난감을 매번 구입하는 것은 정말 번거로운 일이다.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다른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싶은데 가지고 있던 장난감을 처분하는 것도 귀찮고 얼마 못 썼기에 아깝다. 이럴 때, 좋은 것은 장난감 도서관이다!! 내 스타일의 원목 장난감부터 미끄럼틀이나 킥보드 같은 대형 장난감도 있다. 1년 회비가 만원이고 한 번에 2개씩 빌릴 수 있다. 최대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으니, 지겨워질 만하면 다른 장난감을 대여하면 된다. 집에 장난감이 쌓여 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비닐봉다리


모빌에 걸어놓은 비닐봉다리를 양갱이는 참 좋아했다. 두부 사면서 얻어온 비닐이었다. 비닐이라 아쉽긴 했지만,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려고 손발을 파닥파닥거리니 운동이 된다. 서울대 출신의 연구진들이 만들어 비싸게 파는 원목 모빌보다 훨씬 더 열정적으로 파닥거렸다.


종이테이프


바닥이나 벽에 종이테이프를 붙여 놓는다. 하나씩 떼어내는 놀이로 소근육 발달하는데 좋다고 한다. 하지만 쓰레기가 나오니 제로웨이스트 관점에서 맞지 않다.


바닥에 뿌린 물


실수로 정자에 양갱이가 물을 쏟았다. 그런데 손바닥으로 탁탁 치면서 손에 묻은 물의 감촉을 느끼며 재밌어라 한다. 비록 5분이 채 가지 않지만, 거즈로 쓰윽 닦으면 되니 짧게라도 재밌게 놀기에 가성비가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갱이의 최애 장난감은 플라스틱


매일같이 엄마의 웃는 얼굴과 노랫소리를 들려줘도 양갱이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것은 역시나 요란한 플라스틱 딸랑이었다. 특히 사진 찍을 때 요긴하게 썼다.

얼마 전 콩떡이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얻은 플라스틱 링. 양갱이가 너무 신나게 쥐고 흔들어서 콩떡이 엄마가 가져가라는 말에 냉큼 챙겨버렸다. 아이 웃는 얼굴에 한없이 나약한 엄마의 마음이여.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어렵게 어렵게 인테리어를 고수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장난감은 아직 우리 집을 점령하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물러설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오전 산책을 즐기는 분들과 얘기 나누려고 정자에 나갔는데 얼마 전에 모기떼에 8방 물리고 퇴진했다. 이번엔 모기떼지만, 양갱이의 반짝이는 눈빛과 파닥거리는 팔다리가 가장 큰 장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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