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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츠네 Sep 11. 2021

청춘에도 유통기한이 있나요?

내 청춘의 유통기한은 만 년

청춘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처럼, 푸른 현재와 밝은 미래가 영원할 것만 같아서 언제나 청춘이고 싶었다. 청춘이 엊그제 같은데 노화가 되어가는 과정을 느끼는 요즘이다. 허리도 아프고 눈도 시리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하는 첫 번째 일은 침대에 쓰러지는 것이다. 중력을 힘껏 받으며 폭신폭신한 침대보에 파묻힌다. 샤프란 향기가 옅게 남아 있다. 일단 침대에 쓰러져야 안도감이 밀려온다. 샤워를 하기 위해 보일러를 틀어놓고 따뜻한 물을 기다리는 10분이 가장 힐링이 되는 시간이다. 씻지도 못하고 그대로 곯아떨어진 적도 많다. 너무 쉽게 지치고 너무 쉽게 잠이 드는 것을 보니 청춘의 종말이면서 노화의 서막이 시작된 것만 같다. 푸르게 돋아나던 나는 어느새 빠르게 시들어 가고 있었다.


영화 '중경삼림'에서 금성무는 유통기한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어리도, 미트소스도, 랩조차도 기한이 있는데 유통기한이 없는 건 정말로 없는 걸까라고.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자기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청춘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걸까. 육체적으로 노화가 시작되면 청춘이 끝나는 것일까. 네이버 사전은 답한다. 청춘은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를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라고. 젠장 사전적 의미로는 내 청춘은 이미 만료가 된 셈이다. 백세 시대가 된 만큼 청춘의 기한도 좀 더 늘려야 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청춘은 꿈을 쟁취하는 시간인 것 같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교라는 꿈이, 대학생 때는 연애라는 꿈이, 취준생 때는 취업이라는 꿈이 있다. 그 꿈을 이정표 삼아 노를 젓고 때론 직접 헤엄도 치며 나아갔다. 수영에서 400m라는 거리 표시를 보고 전력으로 헤엄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정표가 없는, 거리 표시가 사라진 수영은 무척 힘들다. 취업이 되는 순간 더 이상 좇을 이정표가 사라져 제자리에 표류하게 된다. 취업을 하고 서른 즈음을 넘으면 열에 아홉은 꿈이 사라지고 똑같은 하루를 버텨내기 바쁘다. 다수가 유튜브, 웹툰의 편리한 도파민에 중독되어 그렇게 시간을 버텨내는 것 같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인형처럼 살아간다. 회사에서나 모임에서나 "주말에 뭐 했어요?"라는 질문은 "식사하셨어요?"처럼 식상한 겉치레식 안부인사처럼 느껴진다. 돌아오는 대답이 다 똑같아서.


입사 후 쳇바퀴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입사하자마자 사수가 한 말이 있다. 육 개월 정도 지나면 현타가 한 번 올 거라고.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공무원은 철밥통에 월급도 꼬박꼬박 들어오고, 물론 많은 돈은 아니지만, 여가시간이 보장된 욜로 하기 딱 좋은 직업 아닌가. 나는 취미생활도 다양하니 재밌게 잘 살 것만 같았다. 이게 웬걸, 육 개월이 지나 시보기간이 끝나고 정식 임용이 되자마자 예고된 현타가 들이닥쳤다. 씻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 보고 때로는 그러다 스르 자고 또 출근을 하는 쳇바퀴. 쳇바퀴처럼 살아가는 내 모습이 따분했다. 이거 하려고 그토록 공부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공시생이 되며 덩달아 장거리 연애가 되어버려 헤어짐을 당해야 했던 전 여자친구의 얼굴도 떠올랐다. 잃은 게 너무 커 등가교환이 되지 않는 거래라고 생각했다. 공무원만 합격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쳇바퀴는 목적 없이 공회전하고 있었다. 나는 꿈 없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청춘의 종착역에 다다른 걸까. 아아, 푸르던 청춘의 유통기한이 끝나버린 걸까..


사람은 맹독 수프를 먹고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잊힐 때 죽는 것이라던 만화 '원피스'의 닥터 히루루쿠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시간은 늘 새롭게 태어나는데 의미를 갖지 못한 채 무명인 채로 죽어가고 있었다. 악성 민원이 있었다는 핑계로, 결재가 튕겼다는 핑계로, 그냥 피곤하다는 핑계로, 새로운 이정표를 찾지 못하고 내 헤엄은 멈춰버렸다. 동태 눈깔을 가진 사람이 내 모습과 같을까. 기운을 내 바쁘게 살아보려 했다. 다양한 사람도 만나보려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들은 그저 공회전하는 느낌이었다. 끝나버린 유통기한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걸까.


살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도 있다. 다행히 삶의 이정표를 다시 찾게 되었다. 책을 읽어왔던 것이 응축되어 있다가 글쓰기로 표출이 되었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겠단 이정표가 세워졌다. 글 한편은 내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고유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다녀와야 할 때도 있다. 나의 모든 것을 쥐어짜 써 내려가는 것이다. 결국 글은 곧 나의 모든 것이다. 나라는 존재로 누군가에게 위로와 행복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값진 일인가. 아직은 책을 출간하지 못한 작가 지망생에 불과하지만 벌써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와 세바시 강연에 나서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브런치 작가 되는 것이 첫 단추였는데 꽤 오래 걸렸다. 작년부터 시작한 도전이 올해 결실을 맺었다. 1km의 거리 중에 100m는 지난 것 같다. 브런치 합격 알림이 핸드폰을 도배하고선 야릇한 전율이 돋았다. 정말 간절히 바랐던 것이었구나. 작가라는 꿈, 누군가에게 위로와 행복을 건넬 수 있는 작가라는 꿈. 헤엄쳐 나갈 레인이 주어진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몸은 노화되지만 마음은 꿈으로 격렬히 꿈틀 댄다. 아직 청춘이 끝나지 않았다고 외치는 듯하다.

청춘의 유통기한이 있다면 내 청춘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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