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츠네 Oct 07. 2021

지금 여기서 시작해요, 제로부터

텅 비어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그런 날이 있다.

내가 못나보이고 잘못 꿰진 단추를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해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노인이 된 느낌이랄까. 앞길을 비춰주는 달빛 하나 없이 어둠 속을 헤집는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가면 더 나은 어른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서투르고 오히려 짜증만 늘어나는 깜깜한 어른이 된 것만 같다. 속이 꽉 찬 대게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안에 채워진 것들이 많아서 쉽게 흔들리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양식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 현실은 텅 빈 속이라 쉽게 흔들리고 내 것이 조금이라도 뺏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람.  살을 쏙 빨아들여도 나올 것 없는 빈 속. 희망과는 반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운 모습들이 선명해지고 있다. 사람은 급하고 초조해질수록 본성이 드러나는 법. 왜, 상대의 본성을 확인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지 않던가. 운전할 때라던가 배낭여행을 함께 갔을 때 등등. 마찬가지로 업무적으로 극한에 치닫게 되면 숨기고픈 본성이 금방 표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일단 냉기 서린 차크라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온다. 후배들에겐 티가 팍팍 나는 모양이다. 그리고 작은 눈이 더 가늘어지고 미간에는 내천자(川)가 이마에는 석삼자(三)자가 생긴다. 이 정도면 못 알아차리는 게 이상한 거겠지.


고슴도치 한 마리에 사자 다섯 마리가 옴짝달싹 못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위협을 받는 고슴도치는 가시를 바짝 세우게 되는데 사자의 심장까지 찔러버릴 정도로 날카로워진다. 나 역시 스스로를 다그치다 보니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고슴도치가 되어 있었다. 나를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나를 외롭게 만드는 것도 가시 아닐까.


최근에는 일이 더 많아졌다. 민원대 업무를 보는 우리 팀 막내가 재난지원금 관련으로 주민센터에 파견근무를 나가게 되면서부터다. 민원대 업무를 고스란히 맡으면서 본래의 업무도 쳐내야 하는데 하필 제일 바쁜 시기와 겹치게 되었다. 민원대는 내 일에 고스란히 집중할 수가 없다. 민원인을 수시로 상대해야 하고 전화도 자주 걸려오기 때문이다. 처음 며칠은 괜찮았지만 3주 가까이 되어갈 때쯤 내 일에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도 하게 되면서 스스로에게 화가 났고 마음속이 거친 파도로 한없이 일렁였다. 본능적으로 가시가 바짝 섰다.

'왜 나는 침착하지 못한 걸까'

'왜 연차가 쌓이고도 제자리걸음만 하는 중일까'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책망은 가시를 더욱 뾰족하게 벼리고 있었다.


고슴도치로 변해있던 나날 속에서 누군가 가시에 찔리기도 했다. 내가 담당하는 기간제 근로자 직원이 아픈 날이었다. 그때 나는 본연의 업무 중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된 터라 무척 날이 서 있는 상태였다. 안색이 안 좋은 그 직원에게 "괜찮으시냐, 상태가 안 좋으면 조퇴를 하셔도 된다"라고 따스한 말 한마디 못 건네고 "약을 드셔 보고 지켜볼까요"라고 말한 채 냉기를 뿜으며 내 실수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아무 말도 걸지 말고 건드리지도 말라는 무언의 신호를 잔뜩 보낸 채 말이다. 엎지른 일을 조금이나마 담고 난 후에야 조퇴를 권했고, 그날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물 먹은 장화처럼 무거웠다.


세월이라는 경험치를 먹고 누구든 껍데기는 꽤 그럴싸하게 어른처럼 변해간다. 셔츠를 자주 입게 되고 말투도 여유 있어진다. 운전도 할 줄 알고 적금도 쌓여가니 꽤 어른이 된 것 같은 티가 팍팍 난다. 하지만 속은 텅 비어버린 허울뿐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는가. 영화 '인턴'의 로버트 드니로 같은 여유 있는 어른이 되고 싶은데, 이제 와서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던 찰나에 한 만화를 봤다.

'Re: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에서 주인공 스바루는 히키코모리인 채로 지내던 어느 날 죽어도 다시 죽기 전으로 돌아가는 이상한 이세계로 이동하게 된다. 되풀이되는 죽음 속에서 좌절을 거듭하고 이내 힘든 상황을 도피하려고 할 때, 그를 좋아하는 렘이라는 소녀가 말한다.

"스바루는 도중에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스바루는 쏟아내듯 답한다.

"넌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텅 비었어. 내 속은 구멍 투성이야. 분명 그럴 거야."

"나는 이세계에 오기 전에 아무것도 안 했어. 무엇 하나 안 했어."

"내 무력함도 무능함도 전부 다 내 썩어 빠진 근성 때문이야."

스바루의 격한 울분을 잠자코 듣고 있던 렘이 말한다.

"텅 비고, 아무것도 없고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면 지금 여기서 시작해요."

"여기서 시작해요. 하나부터, 아니 제로부터."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봤자 금세 빠져버리기 십상이다. 계속 붓는 물은 결국 고갈될 터고 텅 빈 독만 남게 될 것이다. 그래도 비어있으면 불안해서 조금이라도 채워져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계속해서 물을 붓는 게 사람 심리인 것 같다.

'조금 비워져 있어도 괜찮을까?'

'시간이 걸려도 제로부터 차근차근 땜질을 하면서 구멍을 메워나가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똑같은 환경 속에서 마음만 바뀌려고 하면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렘의 말처럼 제로부터 차근차근 바꿔 나가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일 때문에 여유가 없는 건지 아니면 나의 생활 패턴 자체가 여유가 없는 건지 고민했다.


늦게 일어나서 부랴부랴 준비하는 출근부터 문제였다. 하루의 출발부터 바꿔 나가기로 했다. 1시간 더 일찍 일어나서 상쾌한 공기를 쐬며 조깅을 시작했다. 새벽 6시 특유의 상쾌한 공기, 아직은 한산한 도로, 조깅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식어버리는 땀에 기분이 산뜻해졌다. 전기포트에 끓인 물로 차 한잔을 마시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길에 나선다.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했을 뿐인데 고슴도치의 가시가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 살짝 든다. 항상 문제가 닥치면 문제의 발생지점에서 스스로를 자책하고 당장에 해결을 하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댈지 깜깜한 적이 많았다. 그런 순간에 때로는 제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속도보다는 방향이 옳아야 도착지점에 도착할 수 있듯이 제로부터 차근차근 나아가 보면 어떨까. 잠깐 비워져 있어도 괜찮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란 말도 있지 않던가. 제로부터 차근차근히 다시 시작하다 보면 나비효과처럼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직은 나도 현재 진행형이긴 하다만!

자신이 마음에 안들 때 지금 여기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제로부터.
이전 20화 우당탕탕 첫 전세 보금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