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츠네 Apr 06. 2023

나의 페이스 메이커

인생에서 앞으로 나를 끌어주는 것

올해는 벚꽃이 예년보다 이르게 피었다.

3월 말, 한껏 개화한 핑크빛 가로수 길을 거닐면 기분이 좋다가도 지구 온난화 생각이 나서인지 씁쓸함도 느껴진다. 그래도 봄은 봄이구나, 봄의 완연함을 느끼고선 대학생 새내기가 된 것처럼 여전히 설렌다. 길을 걷다 사뿐히 떨어지는 분홍 꽃잎이 머리 위에 내려앉기도 하고 손에 잡히기도 한다. 손에 잡히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데, 여러모로 낭만적인 계절이다.


이번 봄에는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생애 첫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것 그리고 10KM 코스를 한 번도 쉬지 않고 1시간 안으로 들어오는 것. 작년부터 꾸준함이라 내세울 수 있는 운동 중에 하나가 달리기였다. 돈 하나 안 들이고 몸뚱아리와 신발 그리고 의지만(제일 중요하다)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뛸 수 있다. 그렇게 3,4,5KM를 뛰면서 인스타 스토리에 그 기록들을 차곡차곡 모아갔다. 자취방 근처인 부경대 운동장만 뛰고 또 뛰었다. 대운동장을 전면개방하지 않은 탓에 펜스로 둘러진 그 주변을 돌았다. 한 바퀴당 730M를 5번, 6번, 7번 돌았다. 11학번인 내가 23년도에 아직 모교에서 뛰고 있다니, 지금의 새내기들에겐 먼 날 아무개 화석 선배임을 티내지 않고 달렸다.


달리기를 취미로 삼아가던 찰나에 독서모임에서 만난 분들과 함께 4월 1일 경주에서 열리는 벚꽃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대회 한 달 전부터 나이키 러닝 앱으로 30KM 챌린지를 함께 했다. 서로 으쌰으쌰 힘도 되어주고 마라톤 후에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을 건지도 공유하면서 그렇게 4월 1일 당일이 됐다. 12명이나 참여하는 우리라서 3개의 차로 3팀으로 나눠서 부산에서 경주로 출발했다. 작년에 차를 산 나는 2년 차 운전자 부심으로 2명을 태우고 경주로 향했다. 날씨는 분명 맑음으로 되어 있었는데 경주에 가까워질수록 안개가 자욱해서 비상깜빡이를 켜고 주행해야 했다. 마치 나루토에 자부자가 나올 것만 같은 풍경. 안개를 뚫고 도착한 보문단지 주변은 벌써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거 작은 대회가 아니구나?'

우사인 볼트 같은 외국인도 보였고, 깃발과 플래카드를 들고 온 마라톤 동호회도 보였고, 가족단위의 참여자들도 보였다. 자욱한 안개가 아직 다 걷히지 않았지만 경주 보문 단지의 레이스 위에 섰고 그렇게 내 첫 마라톤은 시작됐다.


처음에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끌려가는 것처럼 조직적인 속도에 맞춰 뛸 수밖에 없었다. 2KM를 지나서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내 페이스에 맞춰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다리를 빨리 휘젓다 보니 선두에서 출발했던 독서모임 멤버 S가 보였다. 혼자서 뛰기는 심심해서 S의 바로 뒤에 붙어서 달렸다. S는 나를 보고 반갑게 고갯짓을 하고선 자신의 두 다리에만 집중했다. 그런 S의 모습이 든든해 보였고, 속도도 비슷하고 해서 나의 페이스 메이커로 삼기로 했다.


보문단지 아스팔트 위에서 벚꽃길이라는 설렘만을 느끼며 달린 지 5KM 정도가 되니, 걷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달리기를 포기하고 풍경을 사진에 담아내기로 결심한 사람들도 늘어났다. 평소 평지만 달렸던 나라서 이번 코스에서 맞이하게 된 4,5차례의 오르막길에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오르막길은 꽤 힘들었다. 그래도 달렸다. 내 앞에 당신이 쓰러지지 않는다면 나 또한 쓰러지지 않으리.


누군가 내 앞에서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힘이다. 결국 10KM를 1시간 안에 들어오자는 당초 목표보다 더 일찍 57분 대에 결승선에 들어올 수 있었다. 아주 빠른 기록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도 까지 걷지 않았다. 오르막길에서 때때로 힘을 풀고 싶을 때 눈앞의 페이스 메이커가 있었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 동반자이며 경쟁자고 선구자이기도 한 누군가 내 앞에서 같이 달려주는 것만큼 든든한 아군이 없다. 부스에서 받은 구릿빛깔의 메달은 나의 페이스 메이커를 평생동안 상기시켜 줄 것이다.


경주에서 한껏 달리는 동안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 30년이 넘는 세월 나의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 정작 본인은 페이스 메이커 없이 달려온 엄마. 누군가 내게 롤모델을 묻는다면 그 석 글자는 역사 속의 위인도 아니고 현재 속의 유명인도 아니고 우리 엄마 이름 석자를 답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엄마의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드려야겠다고 다짐한다. 페이스 메이커란 달리기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도 필요조건임을 어느 4월 벚꽃길 위에서 힘껏 달리며, 그렇게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전 17화 드라이브 마이 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