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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츠네 Sep 29. 2023

드라이브 마이 카

장롱면허와 솔로 탈출 그리고 그 후

자동차를 사기로 결심했다.

장롱면허와 솔로생활과의 작별을 위해 이번에는 미루지 않고 차를 사야다. 직영으로 운영되는 케이카에 접속해 매물을 살펴보고 또 살펴봤다. 처음엔 무난하게 중고 아반떼로 살 생각이었는데, 케이카 홈페이지에서 마우스를 끄적이던 내 모습을 본 직장 후배가 이왕 살 거면 suv가 어떠냐며 요새는 소형 suv도 괜찮다고 날 유혹했다. 그 말을 들으니, 팔랑귀가 되어 흔한 아반떼보다는 소형 suv가 낫겠단 생각이 들어 결국 진한 쥐색의 '코나'라는 국산 모델로 내 생에 첫 차를 장만하게 됐다.


삼일이 채 안 걸려 인천에서 부산까지 탁송으로 차가 도착했다.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에서 탁송 기사님과 만나 계약서를 작성하고 열쇠를 건네받며  '이제 내 차가 생겼구나 그리고 첫 재산이구나'라는 성취감 느다. 팔이 안으로 많이 굽은 탓인지 중고차가 아니라 새 차 같아 보였다. 겉에는 광택으로 번쩍였고 안에는 백미러에 대롱대롱 매달린 방향제에서 은은한 향이 퍼지는 것이 이만하면 새 차다라고 재빨리 단정 지어버렸다. 일주일 이내로 환불을 선할 수 있기에 기능만 문제없으면 최종관문 통과다. 자동차 호적에 내 이름 석자가 올라가는 것이다. 전 잘하는 친구를 불러 우리 동네 주변을 10분간 돌아보게 했는데, 친구는 자기 차보다 좋다며 연신 칭찬을 해주었(내가 원했던 대답이다). 그 말을 들으니 얼른 직접 운전대를 잡아보고 싶어졌다.


운전은 비용을 지불하고 전문적으로 배우는 게 낫다. 친구와 연인 그리고 가족에게 배웠다가 관계에 금이 갈 수도 있다. 이전에 지인에게 운전을 잠깐 배웠을 때 양발을 가지런히 페달에 놓은 나를 보고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던 지인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안면 없는 제삼자에게 떳떳하게 돈을 내고 전문적으로 배우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그게 평소 지론이었던 터라, 인터넷에서 알아본 운전학원에 전화해 4회 총 10시간 도로주행 연수를 신청했다. 권역별로 배정된 강사님이 우리 집 쪽으로 직접 와주셨다. 강사님은 백발에 머리를 묶어 '나훈아' 선생님을 연상케 하는 아우라를 지니고 계셨다. 운전 베테랑의 느낌이 물씬 났다.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을 켜려고 하는데 전혀 긴장할 것 없고 자기만 믿으면 된다는 강사님의 말씀이 얼마나 천군만마 같던지. 조수석에 앉은 강사님이 제어봉을 내 브레이크 페달 위에 설치하고 출발을 알리셨다.


확실히 프로는 달랐다. 연수받는 동안 강사님의 얼굴이 붉어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네~ 좋습니다. 아~~주(길게) 잘하고 있어요."

"괜찮습니다~ 옆에 사이드 미러 잘 봐주시구요~"

내가 생각해도 답답했던 몇 차례의 순간이 있었음에도 잘하고 있다고 결표 느낌으로 격려해 주시고, 위험한 순간에는 제어봉으로 조정해 주시면서 방금 상황의 문제점을 짚어주셨다. 기계적인 반응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감정적인 반응보다야 훨씬 낫다. 누군가에게 운전을 가르쳐 줄 때 나는 저렇게 차분할 수 있을까. 강사님이 옆에 타고 계신다는 사실 만으로도 부적을 붙여 놓은 것처럼 안심이 됐다. 마지막 수업 때 후진부터 전진 주차 연습까지 하고 나서 총 10시간의 연수가 끝났다. 강사님은 수강생 중 10프로 안에 든다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를 추켜세워주셨다(아마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그때의 연수 덕인지 아직까지 무사고로 드라이브 생활을 보내고 있다. 높은 티맵 점수 덕에 보험 갱신 때도 할인을 받았다. 차에 이름도 붙여줬다. 영특하길 바라는 마음에 코난으로 이름 지었는데, 부모의 마음이 간접적으로나마 이런 것일까? 작은 흠집 하나에도 발을 동동 구르며 호호 입김을 불고서 팔이 아플 정도로 닦게 되니 차가 아주 상전이 돼버렸다. 생애 첫차여서 더 애지중지하며 그렇게 드라이브 마이카를 하고 있다.


역시나 운전은 할수록 는다.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 지 6개월이 지나 스티커를 떼버렸다. 강사님이 알려준 공식을 참고해 주차까지 매끄럽게 할 수 있게 되니 초보운전 졸업장을 스스로에게 줘버렸다. 연애실력도 느는 것일까. 이전부터 차가 있어야 연애를 한다고 설파하셨던 팀장님의 지론들어맞았다. 차가 생기고 벌써 두 번의 연애를 했다. 운 좋게 들어맞은 건가 정말 과학인 건가. 근데 차 없이 근 5년 동안 솔로였는데 최근에 두 번이나 연애를 하게 됐으니 그러면 진짜 과학이 아닐까.


1년 사이 많은 것들이 변했다. 늘 조수석 내지 뒷자리에 앉던 내가 운전석에 앉아 누군가를 태우고 이곳저곳을 다니게 됐다. 친구들끼리 여행을 갈 때도,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도, 가족끼리 외식을 갈 때도 그들을 태운다. 차 안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그들을 볼 때, 창 밖의 풍경에 시선이 뺏겨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그들을 볼 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두서없이 왕창 꺼내놓는 그들을 볼 때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무엇에 안도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기분이 든다. 그래서 운전이 즐겁다. 나를 위해서보다 남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때 행복감을 느끼나 보다.


운전이라는 장벽이 빠르게 깨지고 있다. 거의 허물어졌다. 왜 이렇게 두려워하기만 했을까란 생각도 하지만 이제 와서 아무렴 괜찮다. 장벽이 허물어지고 나니 보이지 않았던 차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된다. 차라는 공간은 마법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슬픔도 즐거움도 스스럼없이 꺼내놓게 되는 공간.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연극제에 초청받은 후쿠와 그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가 차 안에서 서로의 내면을 공유하게 되는 대목이 점차 공감이 된다. 나 역시 앞으로도 내 사람들을 태우며 그들의 감정을 가까이서 보게 될 테다. 어쩌면 드라이브는 사람의 마음을 운전하는 시간일지도. 더욱 능숙한 운전기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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