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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츠네 Oct 21. 2021

직장인의 슬기로운 독서생활

책을 만나고 사람을 읽는다

관심있는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한 요즘이다.

혼자 살고 있어서인지 고요와 사색을 동반하는 독서는 나와 찰떡인 취미 중 하나다. 공무원 수험생 시절, 지겹도록 보고 있는 수험서에 환멸이 난 적이 있다. 시험을 위해 비문학과 문학 지문을 읽고 문제를 풀고 채점을 하는 챗바퀴의 연속을 보냈다. 백석의 '여승'이라는 좋아하는 시를 출제자의 의도에 맞춰 읽어야만 하다니. '여승' 속 파리한 여인의 모습에 펜을 쥐고 말라가는 내 모습이 투영됐다. 연필을 내려놓고 타이머 없이 원하는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합격만 하자는 마음으로 수험생활을 보냈고 합격이라는 성취를 이뤄내자마자 곧장 서점으로 다다다 달려가 책을 골랐다. 공감을 전달하는 에세이와 여러 장르의 소설 그리고 인문학 저서들 중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눈에 띄었다. 수험생활이 끝났는데 하필 코스모스라니. 행정학을 전공하여 지구과학은 1도 모르는 녀석이 왜 코스모스를 집었을까. 어렵다는 책도 압박감을 벗어나 차분히 읽으면 재밌을 거 같아서 그냥 두꺼운 코스모스에 손이 갔다. 물론 그 뒤로 라면 받침대를 전전하며 책 고유의 역할을 완수하기까지 한참이 걸렸지만..


취미가 무어냐는 질문에 "취미는 독서예요"라고 말하기가 쉽진 않다. 하루 종일 책을 끼고 살진 않고 드문드문 읽는 편인데, 취미라고 하기엔 괜히 고상한 척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애독가들 앞에서 부끄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책 읽는 행위가 좋고 서점에 발 들이는 시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수줍게 독서가 취미라고 밝히곤 한다. 예전에는 서울대 권장 도서, 이를테면 '데미안' 같은 필독서 위주로 읽었다면 지금은 내 취향에 맞는 작가와 책들을 탐구하고 있다. 서점에서 여러 책을 뒤적이다가 한 권의 책을 가판대 앞에서 한참이나 몰입하며 본 적이 있는데, 이슬아 작가의 수필집 '일간 이슬아'였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일상 사이에서 그녀의 솔직함과 담백함이 매력적이었다. 작가의 인스타까지 팔로우하며 나만의 책 취향을 발견하고 넓혀가는 재미가 쏠쏠한 요즘이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한 달에 한 번씩 독서모임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재밌게 읽은 책이 '나'의 테두리 안에서 마침표 찍히는 게 아쉬웠다. 똑같은 이야기도 읽고 보는 사람에 따라 무수한 해석이 나오는 법. 영화 '인셉션'에서 팽이가 기울듯 말듯하며 끝나는 엔딩씬을 두고 '현실이다'라는 사람과 '꿈이다'라는 사람으로 나뉘지 않던가. 그렇게 슬기로운 독서생활이 시작됐다. 부산 가야동에 위치한 작은 카페에서 진행하는 독서클럽이 있는데, 독서클럽 내에 요일별 또는 장르별로 여러 모임이 존재한다. 나는 장르불문 금요일 책으로 불타오르자는 모토의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독서모임을 시작한 지 햇수로만 3년이 넘어가는 중데 이제는 굴러 박혀 뺄 수 없는 소중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책을 만나고 사람을 읽고 있다.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책 이야기도 좋지만 책을 통한 사람과의 만남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각지로 떠난 친구들의 공백을 책이 주선자가 되어 새사람으로 채워준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힌다는 하림의 노래처럼 책으로 만난 사람들 덕에 쓸쓸한 공백 없이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책이 이어준 소중한 사람들은 책이라는 공통분모 덕분인지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 중 내 또래의 자칭 문학왕자인 남성과 친해지게 되었다. 친구끼리 문학기행을 다녀오기란 쉽지 않은데 이 사내라면 선뜻 문학기행을 함께 가줄 것 같았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읽고 소설 속 배경인 보성 벌교로 떠나는 1박 2일 문학기행은 얼마나 근사한가. 우리 둘은 서로가 원했다는 듯 일사천리로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에 올랐다. 부산역에서 열차에 몸을 싣고 3시간가량 풍경을 지나쳐오니 어느덧 벌교역이었다. 조정래 작가님의 문학관을 들르고 해질녘 벌교의 금색 갈대밭을 거닐었다. 꼬막정식을 먹고 밤에는 보성여관에 묵으며 태백산맥 막걸리를 기울였고 책 이야기를 내도록 꽃 피운 하루. 책이 이어준 소중한 인연 덕에 취향을 우낼 수 있는 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독서모임은 각자 다른 분야에서 최선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행정학을 전공하여 공무원이 되어서인지 내 주변은 공무원 천국인 반면에, 독서모임은 정말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직업에서 파생되는 고정관념이라던가 편협된 가치관이 생기기 마련인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굳어진 생각을 깨트릴 수 있다. 그중에 마음 맞는 사람 네 명이서 각자 다른 꿈을 응원해주는 '도레미파'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마케터, 영상 제작자, N잡러 그리고 공무원인 나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까지도 서로의 소식을 전하며 앞길을 응원해주고 있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지식의 양식이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약손이고, 교감의 수단이다. 나에게 책은 혼자서 지내는 시간을 풍족하게 채워주고, 결이 맞는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쓸쓸해지는 어른이 되어가며 책이라는 친구와 가까워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내 취향에 맞는 작가와 책들을 찾아 나설 생각에 설렌다. 서점의 가판대 앞에서 한 권의 책을 집어 들고 작가의 세계관에 빠져드는 재미. 그 세계관을 공유하며 만나는 사람들. 지금은 어설프고 때때로 외로운 어른이지만 책과 함께라면 멋진 어른 세계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책 한 권을 읽으며 독서모임 날짜만을 기다린다. 당신이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가, 어떤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가.

책 한 권이 당신의 물음표를 해결해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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