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츠네 Sep 27. 2022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

무기력한 일상을 반짝이게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를 좋아한다.

하루키는 소설 작가로 유명하지만 나는 그의 취향을 담은 에세이에 더 빠져 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하루키의 글에는 기본적으로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재즈, 위스키, 야구, 달리기는 빠지지 않는 그의 단골 소재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그만의 고유한 하루가 선명하게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개인의 취향이 하루 속에 고스란히 묻어 나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게는 흐릿한 시간을 보내기 일쑤라 뭘 하며 일주일을 보냈는지 기억을 떠올리기 어려울 때도 있다. 하루키의 글들은 너는 무얼하고 있냐는 듯 나의 일상을 푹푹 찔렀다.(그리고 아프게 푹푹 찔렸다.)


직장인이 되면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의 공간이 쉽사리 압축된다. 평일은 해가 지고 나서 달 아래서야 나로서 온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주말 이틀은 이 초만에 지나가버린다. 얕은 그 시간들도 회사에서 기력을 쏟고 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곤 한다. 바다를 앞에 두고 수영은 고사하고 물에 발조차 담그기가 귀찮아진다랄까. 그래서 유튜브 시청은 직장인들의 노곤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가장 편리한 인스턴트 취미로 자리 잡았다. 당장에야 편하지만 시간이 누적될수록 공허함은 커져갔다. 의미 없이 반복되는 심심한 일상. 쳇바퀴 속의 햄스터가 나라면 난 뭘 위해 바퀴를 매일매일 지겹도록 굴리고 있는 걸까. 이 바퀴가 남은 내 인생마저 지배해버리는 걸까. 이대로 괜찮은 걸까?


품은 좀 더 들지라도 인스턴트적인 일회용 일상과 작별하고 싶었다. 나는 무얼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정말 좋아했다. 볼을 치고 달릴 때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수비수를 제칠 때는 희열을 느꼈다. 아, 나는 동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하지만 축구는 혼자서 할 수도 없고 장소도 제한되어 있다. 어느새 멈춰만 있는 두 다리가 내 삶을 무색무취로 좀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쁜 호흡을 느끼며 땀 흘리기를 갈망하고 있었구나. 그런 때에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게 됐다. 그는 서른 세살에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내 나이와 러너로서 출발점에 선 그의 나이가 비슷했기에 달리기는 내게 운명처럼 느껴졌다.


달리기는 공과 친구가 없어도 두 다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달릴 수 있다. 길가의 도로변에서도, 작은 공원에서도, 대학교 캠퍼스에서도 달릴 수 있다. 낮에는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캡을 눌러쓴 채 나서고, 밤에는 혹시 모를 쌀쌀함에 대비해 얇은 아노락 재킷을 걸치고 나선다. 가쁜 호흡과 이마에 맺히는 구슬땀이 이토록 반가울 수가! 3km, 4km, 5km 그렇게 차츰차츰 달리기가 내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달리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이다.


달리기에는 많은 준비물이 요구된다. 이를테면 그날의 코스라던가 그날의 음악 플레이리스트에 따라 달리기의 맛이 달라진다. 나는 보통 집 근처 대학교 캠퍼스 안 운동장 주위를 달리지만, 광안리 해수욕장을 달리는 사람도 있고, 해운대 동백섬 인근을 달리는 사람도 있고, 서면 시민공원을 달리는 사람도 있다. 나만의 코스들을 점점 넓혀가고 싶은 욕심이 커져가고 있다. 노래는 그날 기분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진다. 자주 듣게 되는 노래는 힙합 장르다. 재지팩트부터 시작된 빈지노의 전곡을 들을 때가 많고 간혹 운동만을 위해 남이 추려놓은 플레이리스트를 듣기도 한다. 하루키는 달릴 때 레드 핫 칠리 페퍼스나 고릴라즈의 록을 듣는다고 하던데 역시 템포가 빠른 음악이어야 두 다리가 빨리 저어지는 것 같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목표가 생겼다. 숙달된 러너가 된다면 하루키처럼 일년에 한차례씩 마라톤에 도전해보고 싶다. 마라톤의 거리는 42.195km다. 이 장대한 거리를 달리는 기원은 아테네와 페르시아의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르시아 군을 격파하고 이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필립피데스는 마라톤 벌판에서 아테네까지 약 40km 되는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 “우리가 승리했다. 아테네 시민들이여, 기뻐하라.”라고 외치고선 죽고 말았다고 한다. 뜻깊은 기원을 이어받아 마라톤은 지구촌 축제인 올림픽의 꽃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이 장대한 거리를 달리는 행위에 왜 매료되는 것일까. 하루키는 끝까지 달리고 나서 모든 걸 다 털어낸 듯한 상쾌함과 레이스를 완주한 후에 먹으러 가는 스테이크 하우스를 상상한다고 한다. 나도 상상해본다.  4월 벚꽃 경주의 거리를, 화려한 도심 속 도쿄의 거리를, 청량한 아테네의 거리를 달려보는 상상을 한다. 완주를 하고선 에일 생맥주 한 잔을 꿀꺽한다면 얼마나 시원하고 맛있을까.


오늘도 달린다. 가로수 위에선 매미들이 합창을 한다. 얕은 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모든 감각이 깨어나고 하루가 선명해진다. 봄에는 벚꽃의 화사함을, 여름에는 상록의 푸름을, 가을엔 단풍의 붉음을, 겨울에는 입김의 작은 안개를 생각하며 사계절을 느껴본다. 하루, 한달, 일 년이 알록달록 풍성해지는 기분이다. 마라톤에서 주자를 이끌어 주는 페이스 메이커가 있듯이, 인생에서 달리기가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 나를 앞으로 이끌어 준다. 아아, 달리기는 참 좋은 친구구나.




이전 10화 혼술남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