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츠네 Aug 23. 2021

나 혼자 산다

홀로 피어 있는 꽃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자취를 시작하며 예능 '나 혼자 산다'를 재밌게 본 게 어느덧 4년째, 여전히 나 혼자 살고 있다. 서른을 넘으니 직장을 찾으러 친구들은 흩어졌고 나 또한 포항에 가족을 두고 부산에 터를 잡았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라 아마 평생을 부산의 바다내음과 갈매기 소리를 곁에 두며 보낼 듯하다. 부산 갈매기 노래를 잘 모르는데 이제는 외워야 하나 싶다. 연애 공백이 길어지고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솔로 지옥에 갇혀 버렸다.


'혼자'라는 키워드가 곳곳에서 떠오르고 있다. '나 혼자 산다'라는 예능 프로그램도 있고 '혼밥'이라는 문화도 있고 '혼자가 혼자에게'라는 책도 있다. 나만 덩그러니 혼자는 아닌가 보다(다행이다). 처음에는 주위의 적막이 쓸쓸해지는 순간이 많았다. 아침상을 차리려 분주하던 어머니의 발걸음도, 쓸 데 없는 것에 키득대던 친구들의 웃음소리도, 둘만의 사랑을 속삭이던 그녀의 속삼임도 조용해진 세상이라서 그 적막은 쓸쓸함으로 메워졌다. 적막이 너무 길어지는데 혹시 '콰이어트 플레이스' 영화 촬영 중인 건가, '트루먼쇼'의 짐캐리처럼 나만 모르게 촬영되는 건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사람의 관계는 영원히 바라보고 달리는 평행선이 아닌 대각선이잖아.'

'결국 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운명인 거지.'

사실 알고 있었다. 모든 사이는 언젠가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김영하 작가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젊을 적 친구들과 노닥거리던 그 시간이 아깝다고. 어차피 안 보게 될 인연들인데 그 시간에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어느 정도 공감이 가면서도 지나간 인연들과 노닥거렸던 그 시절에 불만은 없다. 룸메이트 없는 친구의 기숙사 방에 옹기종기 모여 치킨을 시켜 먹었고, 축구를 하고 싶을 때엔 단체 채팅방에 운을 띄우면 1시간 만에 다들 모여 공을 찼고, 흘린 땀이 마르기도 전에 국밥집에 들러 돼지국밥이나 섞어국밥을 뚝딱 먹고서야 해산했던 그 시절. 일심동체처럼 언제든 볼 수 있었고 행복을 곱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약속을 잡으려면 일주일 전 아니 한달 전에는 잡아야 볼까 말까다. 서로의 스케줄을 조율하지만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회사일이 생기기 마련이라 못 볼 때도 있다. 그렇게 약속이 파투나고 혼자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게 된다. 예전에는 커피도 혼자 마시지 않았고 밥도 혼자 먹지 않았다. 노래방에 갈 때면 너무 많은 이의 신청곡 때문에 내 차례가 오기까지 족히 30분은 기다린 적도 있었다(2절까지 다 부르는 친구는 좀 싫었다). 과거는 늘 함께여서 혼자이지 않아서 잘 몰랐다. 혼자가 이렇게 적막하면서 쓸쓸할 줄은. 그래도 그 추억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나라는 존재를 지금에서도 총총히 빛내주고 있으니까. 가끔은 그 추억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질 때가 있으니까. 그 시절들에 후회라곤 찾을 수 없다. 눈곱만큼도.


나는 이제 혼자 보내는 시간에 익숙해지고 있다. 환경에 따라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혼자라는 색에 적응하고 있다. 그래서 내 베스트 프렌드는 '혼자'씨다.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술을 마신다. 혼자서 영화를 보고 때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하루의 여백을 채워가고 있다. 방구석을 벗어나 밖에 나갈 때도 홀로 나서는 순간이 많다. 혼코노라고 들어봤는가. 혼자 코인 노래방의 줄임말인데 혼코노 문화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아서 눈치 보지 않고 들러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눈치보지 않고 18번 곡을 연속해서 부를 수 있다).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혼자서라도 기꺼이 간다. 최근에는 히사이시 조의 영화음악 콘서트가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다녀왔다. 부산문화회관에 도착하니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아무래도 커플 단위의 관객들이 많았지만 혼자라는 기동성의 장점을 십분발휘해 그들을 슉슉 지나쳤다. 공연이 시작되고 익숙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마녀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내가 좋아하는 지브리 작품의 ost다.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지브리 감성에 젖는다(난 F니까). 필름 카메라를 꺼내 셔터 한 번으로 추억을 기록으로 남겼다.


여전히 친구는 많다. 혼자이면서도 혼자만으로는 살아갈 순 없다. 그래서 틈틈이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추억을 공유하면서 혼자서 메울 수 없는 구멍을 메워가고 있다. '혼자'씨에게 미안해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혼밥도, 혼술도, 혼영도 대충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나를 대접하며 살아야지. '혼자'씨와 나의 동거는 의도치 않게 꽤 지속될 듯하다. 애인이 생긴다면 '혼자'씨에겐 양해를 구해야겠다. 아마 이해해주겠지. 그때까지는 혼자서 이것저것 하면서 잘 지내보자. 나태주 시인이 '혼자서'라는 시에서 "혼자서 피어있는 꽃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울 때가 있다" 했듯이, 더 당당하고 아름답게 지내야지.

이전 08화 새벽의 저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