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츠네 Oct 24. 2021

어쩌다 어른

혼자서 알을 깨는 건 언제나 어렵지만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 中-

'어쩌다 어른'

정말 어쩌다 보니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었다. 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n년차 주무관으로 경제적 자립을 하면서 생활을 스스로 책임지있으니 어른이라 불리만도 하다. 더불어, 편의점에서 맥주 네 캔을 사도 민증 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어쨌든 남들은 어른이라고 하는데 나는 어른인지 잘 모르겠다. 어릴 적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은 짱구 아빠처럼 구두 뒷굽이 늘 닳아 있고, 책임감 있고, 헌신하는 듬직한 모습이었다. 지금의 나는.. 글쎄, 아침에 5분 더 자겠다고 허둥지둥 출근길에 나서고, 때로는 어리광 부리고, 내일로 미루기 좋아하는 사춘기 학생 같은데 말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친구들을 봐도 내 눈에는 어릴 적 철부지 그 모습 그대로다. 카톡 대화만 봐도 그렇다.

ㅇㅇ(응응)
ㄱㄱ(고고)
ㄷㅊ(닥쳐)
ㄱㅇㄷ(개이득)

나도 우리도 고등학생과 대학생 그때 그대로 멈춰있는 것만 같은데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많은 것들이 우리 삶 속에서 변해간다. 등굣길은 출근길이 되고, 기숙사는 오피스텔이 되고, 친구들은 유부남이 되고, 혼자인 순간이 많아지게 된다. 봄이 오면 벚꽃이 피고 벚꽃과 헤어지면 상록의 여름이 오는 것처럼,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새로운 만남이라는 섭리는 자연처럼 매년 다가온다. 그대로인 것 같지만 사실은 많은 것들이 변해버린 삶 속에서 나만 모자라고 뒤쳐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저축한 돈은 얼마 없고 운전은 장롱면허에다가 연애는 더욱 어려워지는데 큰 일이다(결혼해 듀오를 알아봐야 하나..). 남들은 토끼처럼 앞서 가는데 나만 아장아장 기어가는 거북이가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혼자가 점점 익숙해지고 앞으로 혼자여도 괜찮지 않을까 위로한다. 불안하고 외롭고 때론 괜찮다는 복잡한 감정을 품은 채 어른이라는 성장통을 겪고 있나 보다.


어른이라는 주제의 소셜 살롱을 기획한 적이 있다. 어른이 되면서 겪는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즌 모임인데,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까란 걱정을 했다. 이게 웬걸 정원을 꽉 채워 10명 정도 되는 인원이 신청해주신 게 아닌가. 물론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진행이 잦아지면서 참여율이 저조해지긴 했지만,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은 채 살아가있는 동지가 꽤 있음을 알게 됐다. 회사원, 선생님, (젊은)교수님 등 내가 그들을 바라봤을 때는 어엿한 어른의 모습인데, 그들 스스로는 불안감을 느끼면서 애써 괜찮은 척 살아가고 있었구나. 마지막 모임 이후 뒤풀이를 하면서 이구동성으로 그랬다.

"알고 보니 우리 모두 불완전한 채로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네요. "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수 가지의 능숙한 페르소나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병아리와 계란 프라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면 튼튼한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깨 주면 달걀 프라이가 된다는 뜻이다. 알을 깬다는 행위는 소설 '데미안'에서 뜻하는 바처럼 자신을 둘러싼 하나의 세계를 깨는 것. 남들이 그저 일러주는 대로 이끌어 주는 대로가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며 부딪히는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는 어른이 된다. 불완전한 어른이 나만은 아니기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알은 저마다 다르기에, 깨뜨릴 알이 있다는 희망을 갖고 오늘도 열심히 부리를 쪼으며 살아간다. 하나의 알을 깨면 새로운 알이 덮쳐 올 수도 있겠지. 그래도 괜찮다. 부리가 강해지면 알도 더 쉽게 깨질 테니까. 어쩌면 단단한 부리를 가질 수 있도록 알이라는 시련이 주어지는 게 아닐까. 불완전한 우리에게 전하고 싶다. 불완전한 게 당신만은 아니에요, 나도 그래요.

우리 모두 각자의 알을 깨려는, 아직은 작은 새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