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호소인

by 박홍시

2023년도 4월 11일. 835일 전.


내가 처음으로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업로드 한 날짜다. 얼마 전 일 같은데 돌이켜보니 오랜 시간이 지났다. 브런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교 친구의 추천이었다. 당시 나는 철학과 2학년이자 글쓰기 동아리에 들고 있었다. 글쓰기에 관심 있었던 것은 아니고,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는 주변 친구의 칭찬과 좋아하는 아이 때문에 들어갔던 것 같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잘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 좋아하던 아이가 있었던 것 같다. 하여간 엉겁결에 들어간 동아리와 얼떨결에 붙어버린 대학교에 생각지도 못하게 글을 써야만 하는 삶이 되었다.


원래 미대 준비생이었던 나는 과가 없어짐으로써 순식간에 꿈이 청산당하고 2 지망이었던 철학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삭막한 내신점수, 공부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태도로 대학에 붙을 거라는 상상조차 못 했다. 물론 자랑할만한 엄청난 대학교에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전문대도 어렵다고 생각했던 내가 지방 4년제를 붙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놀라웠다기보다는 걱정 됐다. '나를 받아주다니. 정상적인 학교가 맞나?', '붙었다고 한들 내가 공부를 할까?'와 같은 걱정들이 골통을 가득 채웠다(정작 걱정하며 입학한 학교는 1학년때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는 바람에 1년 반 동안 구경도 못했다).


학교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고 교수님들의 음질이나 화질 정도만 알며 지내던 기간이 끝나고 학교에 직접가게 되자 글쓰기 동아리에도 들고, 활동도 많아지며 글 쓸 일이 카드빚처럼 불어났다. 과제와 레포트는 물론이요, 매주 써야 하는 동아리 글이 늘 나를 재촉했다. 내 예상과 조금 달랐던 점은 내가 글 쓰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었다. 원래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인식을 못했던 건지, 글을 쓰다 보니 좋아진 건지 전후사정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재미가 있었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진로를 이리저리 많이 전전했다. 초중고를 다니면서는 음악인을 꿈꿨고, 그와 동시에 멋진 도예가가 되고 싶었다. 음악은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도예는 현실적인 문제가 부딪쳐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둘 다 사춘기의 허영심에 좋아 척은 아닌 것 같다. 아직도 음악과 도예에 대한 욕심이 마음 한켠에 있으니 말이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내가 가수가 되어 무대에 오르는 상상을 하고, 식당이나 마트에서 도자기를 보면 괜히 눈이 간다.


결국 흘러 흘러 들어간 철학과에서 글쓰기의 재미를 깨우쳤다. 장비병이 도져 좋은 키보드부터 샀었던 철없는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맛있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도중, 동기가 브런치스토리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다른 글쓰기 플랫폼(이를테면 블로그, SNS 등)들이 가진 친목이 마음에 안 들었다. 글 자체보다 서로 팔로우하고 좋아요 누르고 사회생활을 하는 비중이 더 커 보였다. 그러던 와중에 알게 된 브런치는 매력적이었고 바로 글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웬걸, 브런치는 아무 글이나 올려주는 곳이 아니었다! 무려 내 글을 심사하고 작가 승인이 떨어져야 글을 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 글쓰기에 첫발을 땐 나에겐 꽤나 부담이었다. 글을 쓰기보다는 싸는 것에 가까운 내가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닝-크루거 효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있어 보이는 이름의 효과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고, 반대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인지 편향을 말한다. 나는 이때 더닝-크루거 효과에 절여진 피클 같은 상태였다. '나 사실 글쓰기 재능이 개쩔어서 대충 써도 받아주는 거 아니야? ㅋㅋ'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그때 내가 선택한 것은 평론이었다. 음악을 워낙 좋아했고, 음악 이야기라면 하루종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번째 글로 필자가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Flume에 대해 썼다. Flume은 호주 출신의 전자음악 아티스트로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운드 디자인으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첫 평론으로 무엇을 쓸지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신이 난 나는 글이 물 흐르듯이 써졌고, 순식간에 브런치에 제출해 버렸다. 제대로 된 검수는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 기억났는데 맞춤법 검사도 안 했던 것 같다(ㅋㅋㅋㅋ).


결과는 다들 알 것이다.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예상치 못했던 방귀처럼 불쑥 나온 글을 정리하지도 않고 보냈는데 덜컥 합격해 버렸다. 그때 너무 들뜬 나머지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자랑을 했었다. 내가 쓴 글이 어딘가 올라온 것도 신기해서 모든 이에게 공유하기 버튼을 남발했다. 이러다가 정말 거물작가가 되어서 양쪽 어깨에 유명세와 돈다발을 얹고 살게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착각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슬슬 무서웠다. 글에 대한 지식도 전무하고, 식견도 짧으며, 기초적인 문법과 맞춤법도 힘겨워하는데 다음 평론부터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전혀 감이 안 잡혔다. 얄팍한 자신감으로 억지평론을 계속 써 내려갔다. 점점 후회가 밀려왔다. 생각보다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은 힘들었고, 다른 작가님의 글과 비교하면 내 글은 너무 남루해서 부끄러웠다. 글이든 음악이든 전문적으로 아는 게 없는데 무슨 평론을 쓴다고 설쳤는지 내가 미웠다. 그럼에도 악기바리로 계속 글을 올렸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이게 아니라고 외쳤다. 이미 굴러가버린 작가라는 바퀴와 부족한 밑천은 키보드 앞에 앉기를 꺼려하게 만들었고, 평생 즐기던 음악을 회피하는 지경까지 갔다. 처음의 응원과는 다르게 주변 사람들은 사실 내 글에 관심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조회수나 라이킷은 거의 없었다.


인생이라는 게 참 웃기다. 그때 타이밍 좋게 난청이 왔다. 귀가 아프고 소리가 잘 안 들렸다. 지금도 청력이 짝짝이다. 약을 먹는 동안 글을 쉬었는데, 마음이 너무 편했다. 그렇게 800일이 지났다.


그리고 현재, 대학교 4학년 막학기를 남긴 나는 다시 한번 글이 쓰고 싶어졌다. 머리와 마음을 차갑게 식히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더군다나 나이도 20대 후반에 접어들어 글을 쓸 소재도 조금 쌓여있었다. 다행히 브런치스토리는 내 계정에 어떤 제제나 휴면 처리를 하지 않았고 나는 다시 한번 장비병이 도져 좋은 키보드 꺼내 들었다. 그렇게 시범 삼아 며칠 에세이를 써 내려갔다. 800일 전의 나와는 달랐다. 나이가 먹으며 차오른 불안감과 우울함은 글을 쓸수록 빠져나갔다. 마음의 독기를 빼기에 에세이가 이렇게 좋은 줄 미리 알았다면 하고 아쉬울 정도로 마음이 후련했다.


앞으로는 글을 꾸준히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많이 읽으려고 한다. 글쓰기는 생각이 정리되고, 성취감과 자신감도 북돋아준다. 정서적 안정도 가져다준다. 다만 스스로를 '박홍시 작가'라고 부르기는 너무 민망하다. 아직도 맞춤법과 문법은 중구난방이고, 식견은 여전히 없으며, 글에 대한 지식도 없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작가 호소인이라고 자칭하고 싶다. 지망생이라고 할까 생각도 했으나, 이미 나는 브런치스토리의 승인을 받은 사람이지 않은가. 꼴에 작가다. 브런치에서 홍보메일을 보낼 때도 작가님이라고 호칭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잘 알고, 아직 갈길이 멀다는 것을 알기에 작가호소인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지지부진하고 잡설 가득한 이 프롤로그는 결국 아래 문장 두 줄을 위해 존재하기에 이만 줄이도록 하겠다.




앞으로 소소한 에세이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호소인 박홍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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