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게 될 거야.

by 박홍시

다들 아버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 같은 경우는 50%의 미움, 40%의 답답함, 9%의 걱정, 1%의 연민이 있다. 한마디로 싫어한다.


흔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으레 그렇듯(특히 경상도 아버지) 썩 좋지 못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감정을 숨기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감정을 쉽게 드러내고, 요란하게 드러낸다. 아버지는 나에게 계속 애정 표현을 하는데 내가 일방적으로 싫어하는 관계다. 여기까지만 알고 있는 주변인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생각할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과 친근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데 별로 상성이 좋지 못하다고. 마치 MBTI에 극 E와 극 I의 차이 정도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그렇듯 파고들어 핵심에 접근하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첫 번째 문제는 말이 너무 많다. '사람이 말이 많을 수도 있지,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일부 있다. 물론 그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정도가 심하다. 한시도 입을 쉬지 않는다. 정말 한시도 말이다. 심지어 잘 때도 떠든다(잠꼬대와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며 가끔은 욕지거리를 하며 소리도 지른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우렁찬지, 귀가 아플 정도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말이 단순히 많은 게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말의 99%가 힐난과 부정이다. 무엇이든 문제 삼아 나와 어머니를 공격한다. 별 이상한 것을 트집 잡아 따지고 들고, 그것이 일리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언어폭력에 가깝다. 얼마 전에도 있었던 일이 하나 기억난다. 어머니가 아버지 차로 골프를 치러 갔다가, 차가 고장이 나서 문이 안 잠기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사고가 전개되는지 모르겠으나, 어머니 탓이라고 한다.


1. 내가 탈 땐 멀쩡했다

2. 너만 타면 고장 난다(?)

3. 이번에도 니 탓이다(???)


늘 이런 식이다. 살다 보면 어떤 문제나 의견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그 모든 것이 나 혹은 어머니의 탓이 된다. 기억나는 일화를 따지고 들면 끝이 없을 것이다. 기억나는 일화가 한 가지 더 있다. 아버지가 출장 갈 일이 생겨서 비행기를 예매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23~24시가 넘어가는 헷갈리기 십상인 시간대의 비행기를 예매해야 했다. 그래서 오후 12시와 오전 12시를 헷갈려 비행기 시간이 이상하게 꼬였다. 티켓을 구매할 때 나, 아버지, 어머니 셋다 확인을 하고 꼼꼼히 읽었는데도 발생한 사고였다.


그런데 그게 우리 탓이다. 본인이 읽었음에도 제대로 읽지 않은 우리 탓이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일단 나 혹은 어머니 아니면 둘 다의 탓이 된다. 본인은 늘 문제가 없고 피해자라는 태도이다. 덧붙여 나중에 비행기 값이 결제되어 월말에 카드값이 높게 찍히게 되었는데 그것도 일단 나와 어머니를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우리가 어딘가에 탕진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다. 결국 카드 결제 내역을 모두 헤집어 트립닷컴을 찾아내고서야 우리를 향한 의심과 비난의 눈초리는 거둬졌다. 하지만 이 문단의 요점이 무엇인가. 말이 많다는 뜻이다. 한번 의심이 시작되면 끊임없이 우릴 쫓아다닌다. 어딘가 잔소리할만한 소재가 없나 찾아다니는 사람처럼 우리를 검사한다. '내 검사한디!'가 말버릇이다.


부정은 또 어떤가. 무조건 아니라고 한다. 정말 숨 쉬듯이 아니라고 한다. 정말 옳고 그름의 문제를 부정한다면 내가 이걸로 답답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통 대화의 흐름은 이렇다.


"아빠 배고픈데 밥 먹을래?"

"아니! 밥 먹자."

"그러니까 밥 먹자고..."

"아니!"


이러고 결국 나랑 밥을 드신다. 요 몇 해 동안은 더욱 함축되었다.


"아빠 혹시..."

"아니!"

"아직 말도 안 했는데?"

"아니! 뭔데?"


이런 식이다. 정말 부정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아니?!"라는 입버릇을 가진 사람이다. 그냥 모든 말의 대답을 아니라고 부정하며 시작한다. 맞고 틀리고 가 아닌 전혀 상관없는 대화도 일단 아니라고 부정하니, 그냥 말을 꺼내기가 싫어진다. 얼마 전에는 내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대뜸 "아니?!"라고 하길래 정말 갈 때까지 갔나 싶었다.


두 번째 문제는 내로남불이다. 모든 사람이 내로남불 성향을 가지고 있다. 본인의 문제를 인정하고, 공명정대하게 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첫 번째 문제에서 말했던 야박한 기준이 본인 스스로에게도 적용된다면 별 불만이 없을 것이다. '아, 그냥 기준치가 엄청 높은 사람이구나.'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 본인에게 너무나도 관대해지는 것이 문제다. 어느 날은 골프를 주제로 싸움이 났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늘 듣고 있는 나는 불쾌하다. 얘기의 요지는 아버지(골프를 굉장히 잘 치신다. 아마추어인데 싱글을 밥 먹듯이 치시는 정도다)는 어머니가 골프를 잘 치려고 이것저것 알려주려는데 어머니가 안 듣는다는 흐름이다. 어머니는 몇 년 전 교통사고가 나셨다. 팔에 철심을 박을 정도로 큰 사고였고, 아직도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못하신다. 더군다나 선천적으로 운동 신경도 부족한 분이시다. 그래서 말 많고 이해하기도 힘든 아버지의 막무가내 골프레슨을 따라갈 현실적 조건이 안되신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가르치는데 딱히 재능이 있는 분도 아니셨고, 늘 언성은 높아져만 갔다.


아버지의 주장은 일관된다. 내가 잘 가르쳐 주는데 니가 내 말을 안 듣는 게 문제라는 거다. 교통사고를 겪은 운동 신경 낮은 사람이라는 말은 죽어도 아버지의 뇌에 입력이 안된다. 그저 어머니가 아버지 말을 듣기 싫어해서 이렇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너무 답답해서 아버지께 되물었다. 어머니(참고로 박사 학위가 있으시다)가 굉장히 어려운 책을 주며 아버지를 공부를 시켰는데, 그걸 이해 못 한다고 나무라면 되겠냐고 물었다. 그건 안된단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자기가 공부를 못하는 건 어쩔 수 없고, 팔이 불편한 어머니가 골프를 못 치는 건 말을 안 들어서다.


늘 이런 식이고 내게도 이런 잣대는 어김없이 드리워진다. 내가 이상한 소리로 너희를 상처 주는 것은 어쩔 수 없고, 너네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걸로 늘 다툰다. 오늘도 아버지께 운전 연수를 받게 되었다. 운전 연수란 무엇인가.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 초보자에게 알려주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아버지는 터무니없는 명령을 마구마구 쏟아내신다. 밟으라고 했다가 서라고 했다가, 차선을 바꾸랬다가 말랬다가, 정말 듣다 보면 뭐 어쩌라는 거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정도로 오락가락하신다. 그래서 내가 참다 참다 짜증을 조금 냈다. 물론 짜증을 낸 내 잘못이지만, 브레이크를 밟으래서 밟았는데 왜 도로 한복판에서 멈추냐고 뭐라 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실로 놀라웠다. "내 말을 왜 곧이곧대로 듣냐. 니가 알아서 해야지." 아직도 그때의 충격에서 헤매고 있다. 대체 이 사람은 내 옆에 왜 타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나한테 반문했다. "그럼 내가 박으라면 박을 거냐?" 거기서 할 말을 잃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세 번째 문제는, 이런 말하기 정말 미안하지만 순수한 지능 부족이다. 첫 번째, 두 번째와 연결되어 환장의 콜라보를 이룬다. 보통 사람은 전혀 하지 않을 일들을 걱정하고 의심한다. 남들은 이 얘기를 하면 웃고 넘어가라고 하는데 대부분 나한테 하는 잔소리의 수준이 너무 낮다. '에이 그래도 아버지께 그렇게 말하면 쓰나!'라고 할 수 있지만 당사자가 되면 다를 것이다. 그 낮은 수준의 잔소리라 함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더우면 선풍기를 켜라!", "샤워기를 오른쪽으로 틀면 뜨거운 물이니까 조심해라!", "배고프면 밥을 먹어라!". 진짜 나를 바보로 아는 건가 싶은 잔소리를 한다. 이것도 글로 옮긴다고 간결해진 거지 보통은 이렇지 않다. 말씀이 많으시기 때문에 내가 혹시나 더운데 선풍기를 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까 봐 30분~1시간 동안 쫓아다니면서 혹시나 더우면 선풍기를 켜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다가 또 다른 잔소리할 거리를 찾으셔서 주제를 바꾼다.


어릴 땐 생각했다. 아빠가 나를 아직도 애라고 생각하나? 내가 바보인 줄 아는 건가? 근데 이젠 안다. 아버지가 많이 부족하셔서 터무니없는 실수들을 하시니 나를 생각해서 말씀해 주시는 거였다.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머리가 좋지 못하시다. 정말 저런 부류의 보통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초적인 부분에서 실수를 마구 저지르며 살아오셨기에 저런 말씀을 계속 되풀이하시는 거였다. 나를 향한 사랑이었는데 그게 너무 귀찮고 지치는 형태로 발현되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무역 관련 회사를 20년 넘게 운영 중이시다. 그럼에도 오직 물건을 사 와서, 창고에 놔뒀다가, 갖다 파는 일 이외에 것은 전혀 모르신다. 수출 관련 회사인데 아직 서류에 대해서는 나보다 모르신다. 어머니가 그냥 꾹 참고 30년이 다되어 가는 세월 동안 뒤치다꺼리를 한 것이었다. 수출, 수입 관련은 물론이요 세무나 은행 업무 같은 중요한 것도 일절 못하신다. 아무리 해도 안된단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다. 수출을 하는데 필요한 서류가 있고, 그 서류가 준비되고 승인을 받아야만 물건을 보낼 수 있다는 간단한 메커니즘을 몇 해 전에 겨우 이해하셨다. 물론 아직도 일의 프로세스는 모르시고, 나와 어머니가 뭔가 종이로 뚝딱뚝딱하는데 저게 끝나야 수출을 하고 나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캐치하신 정도다.




나는 포기했다. 아버지는 고칠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이며, 그냥 나와 어머니가 계속 참고 사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내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벽을 세우고 저 사람은 안된다는 말을 되뇌며 포기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었다. 억울함이 마음속을 가득 채웠고,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터져버린 물꼬는 분노와 짜증의 형태로 내 입에서 질질 흘렀다. 나도 모르는 새에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아니?!"를 연발하며 터무니없는 잔소리 혹은 밑도 끝도 없는 의심과 힐난을 끊임없이 쏟아내셨다. 그렇게 내 마음의 벽은 날이 갈수록 두꺼워졌다. 나는 그렇게 포기를 배웠다. 세상엔 할 수 없는 일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에 매달려봤자 나만 괴롭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든 집이 각각의 문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화목하기만 한 집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아버지의 유별남은 나에게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는 '네가 마음만 고쳐먹으면 낫는 병 아냐?'라는 말로 씻을 수 없는 상처도 주셨다. 원망할 건 하늘 밖에 없었다. 지금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길 선택한 적이 없었기에 너무 억울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이 너무 싫었다. 그 가혹한 운명은 '그럼에도 부모님을 사랑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완전히 마음을 접고 무뚝뚝하게 살다 보니 나도 사회에 진출을 하고 나름 책임져야 할 것들이 생기고 일이라고 부를만한 일과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깨달았다.


아버지는 가엾고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우리에 대한 사랑은 넘치시는 선한 분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너무나도 뒤떨어지는 역량을 타고나셨다. 그렇기에 선한 마음은 냉혹한 세상에 긁히고 깎여 이상한 똥고집과 언어폭력이 정착했다. 그의 기준으로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도 많고,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야 하며, 매일 같이 사고를 치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곳이었다. 50년 넘는 세월을 가혹한 세상에 부딪치며 이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한마디로 세상의 피해자였다. 피해자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태도였다.




그렇기에 최근에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버지를 가엾게 여기고 사랑해야겠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여전히 요란하게 나쁜 말을 쏟아내는 아버지를 보면 성질이 확 나고 얼굴에 열이 오른다. 하지만 더 이상 억울함과 분노가 오래가지 않는다. 잠깐의 시간과 짧은 한숨으로 토해낼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물론 우울장애와 불안장애가 심해지는 시간이 되면 아버지가 모든 문제의 원흉인 것 같고, 저 사람만 고쳐지면 내 인생이 완전해질 것 같다는 망상에 사로잡히곤 한다. 일부 사실이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은 아무 의미도 없는 미움만 낳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머릿속에 작은 생각이 피어올랐다. "결국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게 될 거야." 나이가 들고 사회와 가까워질수록 아버지가 이해되기 시작했고, 나 또한 아버지를 굉장히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미움의 원천은 아버지의 삐딱한 태도도 있겠지만, 그 모습에서 나의 나쁜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이 자기혐오를 인지하고, 아버지의 힘겹고 고단한 삶을 근처에서 바라보자 마음의 벽이 많이 물렁해졌다.


부족한 역량으로 부단히도 열심히 살아오신 아버지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가엾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열 뻗치게 하는 행동거지는 애증이 되었다. 포기함으로써 내려놓은 마음과, 아버지의 진실로 얻게 된 가엾게 여김과 존경은 증오를 점점 녹여갔다. 이젠 애증이 아니라 애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증오는 묽어졌다.




아직도 아버지는 요란한 소리로 나를 괴롭힌다.

여전히 말은 많고, 부정부터 던진다.

그럴 때면 열이 확 오르고, 한숨부터 나온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이 오래가지 않는다.

잠깐이면 된다.

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고, 나도 결국—사랑하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미움의 언저리에서 포기를 배웠고, 포기 너머에서 사랑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요란하게 말 많은 그 사람을... 조용히 사랑하고 있다.

사랑하게 될거야..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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