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험한 적을 죽이는 법

공허함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실전 팁

by 박홍시

한동안 입에 달고 산 말이 있습니다.

아, 너무너무 심심하다.

처음엔 그저 심심함이었습니다.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심심한 상태가 그저 그대로 있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우울해졌습니다.


지속된 심심함은 우울함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심심한 상태가 계속되면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와 같은 회의에 빠지게 되고 삶의 동력을 잃게 됩니다. 요즘 세상은 또 어떤가요? 스스로 몰아붙이는 것도 힘든 세상인데 SNS나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비교하기가 너무나도 쉬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비교는 모든 불행의 원천이라고 하던가요. 나는 이렇게 심심하게 시간이나 때우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열심히 살고, 잘 살고, 재미있게 사는 것 같습니다. 자존감 저하와 우울감이 찾아오기 너무 쉽습니다.


안 그래도 저는 우울감을 잘 조절하지 못합니다. 심심함, 즉 무료함은 인생에서 가장 거대한 짐처럼 느껴졌습니다. 심심함 속에서 피어난 우울감은 저의 방을 축축하고 어둡게 만들어 더욱 자학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무언가 하긴 하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고 고통 속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 자체가 너무 길어지기도 했어요. 물리학은 이렇게 말합니다. 중력이 강한 곳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다분히 이과적인 시선이죠. 중력보단 무료함이 시간을 느리게 만듭니다. 무료함은 시간마저 쥐락펴락 하는 무서운 녀석입니다.


인간은 이 무료함이라는 적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격당합니다. 무료함은 마음 어딘가에 늘 매복해 있다가, 우리의 빈틈을 노리고 옆구리를 찌릅니다. 녀석은 우리를 공허하게 만들고 실의에 빠지게 만듭니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해요.

태어나길 소망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타의로 세상에 끌려왔어요. 그렇기 때문에 무료함에 빠지기 쉽습니다. 삶의 목적이나 의미는 없기 때문이죠. 차오르는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는 무료함을 통해 흘러들어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료함을 경계해야 해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료함이라는 못난 남편에게 크산티페처럼 뜨거운 물을 붓고 욕지거리를 하며 쫓아낼 방법은 없을까요?


저는 그 방법이 재미라고 생각해요. 재미라는 무기는 무료함에게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예요. 허무주의와 염세주의에 맞설 수 있는 가장 투명하고 날카로운 칼이에요. 저는 머리가 복잡해질 때면 플레이스테이션을 켜고 그란투리스모 7을 실행합니다. 유명한 레이싱 게임 시리즈이고, 현실을 잘 구현한 시뮬레이터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부릉부릉 몰아도 되는 종류의 게임이 아닙니다. 운전이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몰랐어요. 정확한 타이밍에 브레이크를 밟고, 코너를 공략한 뒤 빠르게 빠져나오는 걸 반복하다 보면 트랙 수십 바퀴를 금세 돌아버립니다. 손은 땀범벅이 되어있고, 눈 깜빡이는 것조차 잊고 몰입했기에 눈도 따갑습니다. 재미는 시간을 가속시키고 저는 무료함으로부터 잠깐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무료함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이렇게 단순합니다. 하지만 무료함의 가장 무서운 점은, 계속해서 부활한다는 점입니다. 죽지도 않고 또 돌아왔네라는 말이 참 잘 어울려요. 끊임없이 부활해서 우리 마음의 빈틈을 노리고 들어가 맹독을 주사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OTT와 유튜브를 전전하고, 음악을 듣고, 쇼핑을 하고, 게임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습니다. 정신과 몸에 쉴틈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꼭 일이 아니어도 됩니다. 미친 듯이 무언가 하세요. 절대로 무료함에게 약점을 보이지 마세요.


하지만 저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무료함에게 치명상을 입고 실의에 빠지면 세상만사 모든 게 귀찮습니다. 재미있던 것도 재미가 없어지고 손에 잡히질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움직여야 합니다. 무료함에게 공격을 허락했더라도, 바로 재미라는 칼을 찾아서 맞서야 합니다. 정말 몸이 천근만근이고,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수록 벌떡 일어나서 샤워라도 해야 합니다. 이를 악물고 씻은 뒤 책상 앞에 앉아 유튜브라도 보세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정신의 흥미를 돋우고 무료함에게 옆구리를 허락하지 마세요.


그것만이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세계에 정답을 구하지 마세요. 그냥 재미있게 즐기세요. 취미를 즐기세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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