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회고와 삶에 대한 고백,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뜬금없이 밝혀봅니다. 저는 중증 성인 ADHD를 앓고 있고, 그것과 족쇄 같은 과거가 만들어낸 우울장애에 살고 있습니다. 사은품으로 불안장애도 받았고요. 그래서 인생이 굉장히 슬펐던 것 같아요. 늘 우울하고 불안에 떨었는데 또 그걸 티 내기 싫은 맘에 억지로 밝은 척을 했습니다. 그 나이 때 으레 있는 특별함에 대한 갈망과 막연한 허영심도 컸습니다. 자존감이 차 있어야 할 그릇이 텅 비어있으니 허영심으로라도 그걸 채우고 싶었던 거지요.
돈이 생길 때마다 어딘가에 탕진해 버리고, 그것을 누가 알아봐 주고 감탄해 주길 바랐습니다. 타인에게 인정을 요구하고, 그것을 받지 못함의 연속으로 자존감은 더욱더 말라가 바닥을 드러냈죠. ADHD 특유의 자잘한 잔실수도 끊임없이 자존감에 스크레치를 새겨 넣었습니다. 물건을 잃어버리고, 떨어뜨리고, 부수고, 어딘가에 부딪치고, 실수하고, 잊어먹고. 저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저를 못살게 구는 것 같았더랬죠. 그렇기에 더욱더 보이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것을 좋아하는 척하고, 있어 보이는 척하기 위해 돈을 탕진하고, 그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를 먹을 걸로 푸는 바람에 정신이 아니라 몸까지 아프기 시작했죠.
하지만 내 몸은 내 마음도 몰라주고 대인기피증, 공황장애와 같은 증상이 연달아 타석에 올라왔고 장외홈런을 연타석으로 날려버렸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결혼도 생각하던 여자친구랑 헤어지기도 했고요. 정말 흔히 말하는 나락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자살 생각을 매순간순간 했었고, 세상이 흑백이었습니다. 무엇하나 재밌는 것 없고, 아무것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입에 처넣어서 살은 더욱 뒤룩뒤룩 올라왔죠. 아마 화기엄금으로 살아야 할 겁니다. 지방이 너무 많아서 불 근처로 가면 불이 붙어버릴 것 같아요.
그렇기에 더욱 마음을 강하게 먹었습니다. 절대 들키기 싫었습니다. 내면이 이렇게 곪아터지고 고름이 가득 찬 거대한 종기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절대로 들키기 싫었습니다. 더욱 재밌는 사람인 연기를 했고, 더 돈을 탕진했으며, 쿨 해 보이려 내면의 외침들을 깡그리 무시했습니다. 그렇게 위태위태한 마음을 강하게 부여잡고 살다 보니 어느샌가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부러져 버렸습니다.
세상에 모든 조언이 쓸모없었습니다. 조언들은 가식 같았고, 제가 즐겼던 것들은 과거의 멍청함으로 기억됐습니다. 작은 방 안에 누워 그보다 더 작은 마음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오직 죽지 않는 것만을 목표로 근근이 연명했습니다. 그마저도 거창한 이유 따윈 없고 그냥 죽지 않기로 어머니와 약속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울증 약도 듣질 않고, 불안장애 약을 보면 손이 떨렸습니다.
이런 저도 요즘은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인생이란 각자의 이야기는 모두 죽음이라는 같은 결말로 귀결되는데, 인생이란 책을 무슨 재미로 읽어야 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든 장르가 그랬습니다. 추리물, 스릴러물은 결국에 범인이 잡히고, 히어로물은 결국엔 영웅이 승리하죠. 판타지는 어떤가요? 결국엔 악당이 쓰러지고야 맙니다. 로맨스물도 결국엔 커플이 되고야 말죠. 우리 인생도 그랬습니다. 결국 다 죽어요. 그런데 어째서 재밌는 책, 재밌는 영화, 재밌는 게임이 있는 걸까요? 저는 그 답을 과정에서 찾았습니다. 결국 범인이 잡혀야만 끝이 나는 스릴러의 승부처는 얼마나 범인이 준비한 트릭이 참신한지, 추리하는 주인공의 추리 과정 그리고 그것을 작가가 어떤 연출로 전달하는지가 쟁점입니다. 결국 결말은 뻔해요.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명작과 평작과 망작은 갈라지는 거였습니다.
갑자기 뜨끔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어차피 죽는데 재밌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왜 이렇게 침울한 심해에 가라앉아있지? 불과 몇 주 전에 든 생각은 갑자기 제 머리가 맑아지게 했습니다. 이제라도 솔직하게 나라는 사람을 마주하고, 그 녀석이 좋아하는 것들을 경험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어요. "나도 재밌게 살고 싶다, 나도 우울하게 생을 마감하기 싫다, 남들처럼 재미를 느끼고 싶다."와 같은 생각들이 거품처럼 부글거렸습니다. 박홍시라는 이야기는 결국에 죽음으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렇기에 제 자신을 갉아먹고, 자존감에 금을 새겨 넣던 과거는 잊고 나아가려고 합니다. 더 이상은 슬프게 연명하고 싶지 않아 졌습니다. ADHD를 비롯한 각종 지병들(정신적인 것만 언급했는데, 물리적으로도 지병이 좀 있어요...ㅎㅎ)을 가진 채로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질식사할게 아니라, 그런 페널티를 가졌음에도 누구보다 재밌게 산다면 그거야 말로 멋진 인간찬가 아니겠습니까.
모든 주인공은 단점과 시련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겨내기에 더 매력적이고 멋진 거죠. 저는 어떻게 보면 축복받았습니다. 태생적으로 부여받은 병들을 가지고 있으니, 남들처럼만 살아도 '와... 너는 아픈데도 정말 대단하다...'라는 고평가를 받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출발점에 서있어요. 물론 더 이상은 남들의 칭찬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지만, 남 칭찬이 기분 나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ㅎㅎ.
그렇기에 앞으로는 재밌게 삶을 긍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습기 가득한 침울함 들은 제 등 뒤에서 절 지켜보고 있겠죠. 그들에게 다시 따라 잡히지 않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할 일을 완수하고, 재미를 쫓고, 무거운 엉덩이를 들썩일 거예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인생이 나아질 거란 강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더불어 저는 어릴 때 '어른들이 매일 제자리 걸음하는 삶을 사는 게 힘들지 않을까' 늘 생각했습니다. 마치 누군가 강제로 러닝머신에 묶어놓은 사람들이 어른이라는 존재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모든 어른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힘찬 발걸음을 떼고 있다는 것을요.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재밌는 것을 즐기는 등의 인생을 영위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다만 인생이라는 무서운 녀석이 가만히 있으면 우리를 끊임없이 뒤로 잡아당기기 때문에 제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다만 모두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모두 속력과 방향은 다르지만 분명히 앞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도 이제는 회피를 그만두고 기꺼이 삶의 챗바퀴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모두 응원하고, 모두 응원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수명에 맞는 러닝머신을 타느라 수고하고 계시는 멋진 어른입니다.
긴 세월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던가요. 가소롭지만 저도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일까요. 특별함에 목매던 삶을 잊고 이제는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속 편한 모순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삶 속에 숨겨진 반짝이는 보석들을 찾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늘도 집에서 눕기만 하던 생활을 청산했습니다. 씻고, 출근하고, 글을 쓰고, 노래를 즐기고, 취미를 즐겼습니다. 오늘은 왠지 기분이 더 좋아요. 점점 삶의 축이 맞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기에 더 어른들에게 이게 맞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뭐 어때요, 제 삶이고 제 이야기인데요. 아직까지 죽음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왕 정해진 김에 거기까지 가는 길을 기꺼이 긍정하고 즐기려고 합니다.
우린 처음부터 어쩔 수 없는 거였어요. 인생을 긍정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고, 재미를 추구하는 수밖에요. 다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내일도 수고하십시오. 재밌게 삽시다. 그리고 다들 재밌게 살아서 자기 자신이 충만한 삶을 살고, 그런 사람들이 사회를 채워나가면 비로소 이 세상도 아름다워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