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가.
다들 재미있는 것이 있으신가요? 저는 없습니다. 그래서 찾아 해 매고 있습니다.
그럼 삶이 재미없어서 어떻게 사냐고요?
억지로 매일매일 버티는 거죠 뭐.
재미있는 것이 분명히 있는 사람이 너무 부럽습니다. 삶에 낙이 있는 사람이 너무 부러워요. 오랜 기간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앓은 저로써는 재미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병을 갖고, 재미를 잃었죠.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취미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멍 때리는 게 다였습니다. 무언가 하긴 했었는데 그게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나고 관심도 없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는 게임을 했었습니다. 취미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첫 번째 행위였습니다. 정말 많이 했었어요. 하루에 다섯 시간은 기본이고 대부분의 날을 8시간 정도는 한 것 같습니다. 다행히 집이 유복했던지라 게임기도 많았고, 컴퓨터 사양도 좋아서 할 수 없는 게임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재미가 없었어요. 그저 시간 때우기에 불과했습니다. 게임이라는 걸 하고는 있지만 즐긴다고는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의 연속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재미를 느꼈습니다. 별건 아니고, 어쩌다가 애니를 보게 되었는데 중간부터 내용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개연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어요. 그래서 보다가 중간에 끄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중간에 하차할 수는 없었어요. OTT에 갇다 받친 돈은 한 달 동안 저를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장장 12화의 여정을 끝을 마쳤지요.
말도 안 되는 전개와 기행의 연속인 주인공, 이해할 수 없는 조연들의 이야기가 끝나자 저는 화가 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심장이 두근거리더라고요. 처음엔 어디가 아픈 줄 알았습니다. 뭔가 몸이 붕 뜨는 것 같고, 이 애니에 대해 떠벌리고 싶고, 생각과 행동이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내가 놓친 점은 없는지, 후일담은 없는지 너무 궁금해졌어요. 오프닝과 엔딩을 찾아 듣고, 초등학생 같은 실력으로 그림도 따라 그려보고, 한번 더 볼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재미더라고요. 살면서 처음 느낀 건지, 너무 오랜만에 느껴서 가물가물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이게 재미였어요. 즐거움과 흥미를 불러오는 것 말입니다. (결국 프라모델까지 해외 직구했어요!) 잠깐이나마 삶에 활기가 돌았습니다.
재미가 주는 약빨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친구에게 이 애니가 얼마나 개연성이 이상한지, 주인공의 기행이 얼마나 심각한지 등 떠들고 싶어 졌습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친구와 연락도 했고, 재미있게 이야기도 했습니다. 애니 오프닝을 듣고 기분이 들뜨자 노래를 듣고 춤까지 춰버렸습니다. 그렇게 막 움직이고 다녔더니 배가 고파져서 오래간만에 맛있는 메뉴까지 찾아먹었습니다.
재미의 힘은 실로 무섭더라고요. 단박에 인생을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어주다니. 재미의 소중함을 너무나도 깨닫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이때까지 이 맛을 모르고 산 세월이 너무나도 아까워졌어요. 그렇게 그 애니에 관해 탐구하느라 2주를 재밌게 보냈습니다. 물론 지금은 좀 식었습니다. 어떻게 똑같은 게 매일 재미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재미의 약빨은 떨어지지 않았어요. 다시 한번 약빨을 보고 싶어서 콘텐츠 괴물이 됐습니다. OTT나 유튜브 프리미엄을 결제하고 전반부 10% 정도만 조금 보고 끄던 삶은 끝났어요. 혹시나 이야기가 진행되면 재밌을까 봐 무엇이든지 끝까지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사놓고 장식용으로 쓰던 책들을 펼쳐보기 시작했습니다. 귀찮아서 사놓고 처박아둔 게임도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저는 재미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로 태어나 인생에서 가장 활동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무기력하고 방 안에서 천장만 보던 제가 활동적으로 인생에 덤벼들고 있습니다. 이 또한 재미의 약빨이에요. 우울과 불안에 짓눌려 눈물 쩐내 나는 이불을 덮고 뒹굴거리던 인생은 끝이 났습니다. 지금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프라모델도 만들고, 애니도 보고, 친구랑 연락도 하는 소위 '갓생'을 살게 됐습니다.
여러분들도 재밌는 것을 찾으세요. 그리고 재밌는 것을 하세요. 꼭 건설적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재미를 쫓으면 알아서 건설적으로 인간은 변합니다. 끊임없이 재미를 찾아 떠돌아다니세요. 무엇이든 하고 보세요. 혹시 그게 재미있을지는 해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다들 재미있는 것이 있으신가요? 저는 찾고 있습니다, 찾아 해 매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사냐고요?
재밌는 걸 찾을 때까지 움직이는 거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