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의 주술 (3/3)

연작소설

by 희원이

[목차]

◑ 구약의 말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 프롤로그

♬ 기이한 죽음

♬ 다시 돌아온 죽음

♬ 안팎의 고립

♬ 저주파의 교란

♬ 사교의 주술

♬ 탈출

♬ 격리

♬ 붕괴

♬ 피란

♬ 에필로그


* <사교의 주술> 줄거리

이 이야기는 초현실적 주술 의식과 종교적 신념이 불러온 비극을 다룬다. #1장에서 주술사는 성경의 문장들을 현실과 초현실 사이에서 힘을 발휘하는 존재로 바꾸고, 이를 목격한 최목사는 의문과 불안을 느낀다. #2장에서 성경 도시에서 죽은 말들이 되살아나 사람들을 공격하고, 유다인 이사장은 이를 신의 계획이라고 주장하지만, 최목사는 그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다. #3장에서 최목사의 부인은 아들 재선이 괴물들에게 끌려갔다는 소식에 절망하고 유다인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최목사 역시 유다인을 믿지 못해 갈등을 겪는다.

#4장에서 최목사는 유다인과 대화를 나누며, 그가 신앙과 주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유다인은 구원보다는 종말을 준비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5장에서는 유다인의 과거가 드러난다. 그는 텔레그램과 다크웹을 통해 불법적인 활동으로 권력을 얻었고, 메시아라는 존재의 유혹을 받아 더 큰 힘을 얻으려 한다. #6장에서 유다인의 배려로 매일 한 시간 동안 주술 의식이 진행되며, 그 시간 동안 최목사는 아들 재선을 찾기 위해 수색을 계속하지만 실패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회의에 빠진다. #7장에서 최목사는 결국 재선을 찾지만, 재선은 기능이 정지되지 않으려는 비참한 괴물 상태에서 어머니를 공격한다. 그때 도시에 거대한 말이 나타나고, 괴물들과의 혼란 속에서 최목사는 자신이 저지른 죄와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깨닫게 된다.





#5

유다인의 닉네임은 요한이었다.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다. 그는 텔레그램의 비밀스러운 방에서 불법적인 놀이를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한 쾌락의 추구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힘을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데 깊이 빠져들었다. 20대 초반이던 시절부터 이 어두운 길은 그를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 파놓은 깊은 지하 통로로 이끌었다. 내면의 욕망으로 이르는 아주 깊고도 음습한 길을 발견한 것이다.


첫 번째 계기가 된 사건은 교회 누나의 죽음이었다. 사실 그녀는 요한에게 그다지 희생자 같지 않았다. 자신에게 그만큼 위력적인 힘이 있다고도 생각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처음에 그저 인터넷에서 악플을 다는 평범한 익명 사용자에 불과했다. 대학교 동급생이나 교회 누나, 때로는 연예인들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며 장난을 쳤다. 인터넷이라는 익명성의 장막 속에서 그는 자유로웠다. 타인의 흉을 보고, 남을 깎아내리며 은밀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것은 그에게 하나의 일상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누군가의 소문을 소비하는 것에 만족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댓글을 달며 누군가를 평가하고, 비판하는 게 재미있었다. 마치 작은 권력이라도 가진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소문을 퍼뜨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직접 소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더 자극적이고, 더 날카로운 소문을.

요한의 타깃은 교회 누나였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이 완벽하고 깔끔한 이미지로 보이길 원했고, 주위 사람들도 그녀를 그렇게 대했다. 그런데 요한의 눈에는 그 모습이 거슬렸다. 그녀가 인스타그램에서 요한의 댓글을 차단한 날, 그 불쾌한 기억이 요한의 마음에 남아 있었다. '왜 내가 너보다 못하다는 거지?' 그의 마음속에 작은 분노가 싹텄고, 그 분노는 아주 자연스럽게 소문으로 이어졌다.

요한과 그와 비슷한 무리들은 교회 누나에 대해 소문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레즈비언이라 집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 동거 중이라는 이야기, 그리고 더 끔찍한 이야기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그저 웃고 넘겼다. 그들에게는 그저 '놀이'였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그저 재미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가상의 게임처럼 소문을 던졌다.

그러나 소문은 곧 그들만의 장난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로 파고들었다. 교회의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기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엔 의아해하며 소문을 부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아무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누나는 서서히 교회에서 소외되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우면 사람들이 수군거렸고, 그녀가 교회에 있을 때는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요한은 자신이 만들어낸 소문이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저 인터넷에서 던진 장난 같은 말이 실제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을 보면서, 그는 자신이 커다란 힘을 쥐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소문은 더 거칠어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믿게 되었다.

교회 누나는 결국 교회를 떠났고, 그 소문은 점차 잊혀졌다. 요한의 인생에서 그저 하나의 장난처럼, 그 사건이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는 그때 자신이 잘못했다는 후회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의 댓글을 차단했던 그녀가 결국 이겼다는 생각에 우쭐했다.

'봐라, 내가 이겼어. 결국 넌 나를 막을 수 없었지.'


그러다 일 년쯤 지나서야 요한은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전해진 소식은 아니었고, 역시 인터넷의 한 구석에서 발견된 짧은 기사였다. 그녀는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순간 요한은 잠시 멍해졌다. 이 소문이 그녀의 죽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만들어낸 소문이 결국 그녀를 파멸로 이끌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렇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후회보다 다른 감정이 더 강하게 자리 잡았다.

‘그녀가 결국 나를 이기지 못했군.’

인스타그램에서 차단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요한은 오히려 묘한 승리감을 느꼈다. 그녀의 죽음조차 그에게는 자신이 이긴 증거로 보였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정당화했다. 후회할 틈도 없이, 그는 다시 온라인에 접속해 다른 희생자를 찾기 시작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상대를 망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생겼다. 사람들의 비밀을 폭로하고, 딥페이크로 사람들을 능욕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마치 신처럼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요한’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자신을 세례자 요한처럼 겸허하게 표현했지만, 실상은 그와 정반대였다. 그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이용하여 많은 범죄를 일으켰다.

요한은 첫 경험으로 소중했던 날로 그날을 기억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듯 태연하게 살아갔다.

“누가 죽으라고 칼 들고 협박했나?”

그의 세상은 여전히 인터넷 속에 있었고, 그 안에서 그는 자신이 신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때부터 그는 확신범처럼 자신감이 붙었다. 자신의 추종 세력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생겼고, 직업의식이랄까, 프로 의식이랄까, 그러한 철두철미한 근성도 생겼다. 돈도 제법 벌었던 것이다.

“아마추어들은 그냥 재미로만 하지. 난 돈을 벌려고 하는 거니, 사이코패스는 아니야. 먹고 살기 힘들다.”

그러면서 그는 웃곤 하였다. 추종자들은 이것을 ‘생계형 개그’라고 불렀다.

요한이 두 번째로 특별한 계기를 맞이한 사건은 이제껏 경험한 어떤 일과도 달랐다. 첫 번째 사건이 단순한 장난처럼 시작되었지만, 그 여파로 인해 사람 하나가 죽었다는 사실이 그에게 미묘한 충격을 주었다면, 두 번째 사건은 그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이끌어갔다. 요한은 이 사건을 처음에는 농담처럼 ‘메시아와의 조우’라고 불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농담은 서서히 진지한 믿음으로 변해갔다. 자신이 모실 위대한 존재가 드디어 자신을 알아봐준 것이며, 그 존재가 자신을 선택한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날, 요한은 평소처럼 텔레그램 방에서 활동 중이었다. 텔레그램 방은 그의 은밀한 왕국이었고, 그곳에서 그는 익명성의 보호막 뒤에 숨어 신처럼 군림했다. 그 방에서는 온갖 악랄한 대화와 계획이 오갔고, 그 속에서 요한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는 종종 자신을 ‘요한’이라 부르며, 세례자 요한처럼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는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사실 그는 스스로도 자신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겸허함을 가장한 위선이었고, 그는 언제나 이중적인 모습을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텔레그램에 ‘메시아’라는 아이디의 누군가가 그에게 접근해 왔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허세 가득한 이들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다른 이들과 달랐다. 그저 농담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요한이 은밀하게 품고 있던 욕망과 두려움을 꿰뚫어보는 듯한 대화를 이어갔다. 메시아는 그에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제시했고, 요한은 점점 그 인물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메시아는 요한에게 말했다.

"세상을 움직일 힘을 너에게 주겠다. 나를 따르면 너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요한은 처음엔 불신했다. 이것이 단순한 인터넷상에서의 허세 가득한 장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메시아는 단순한 말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구약의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리듯 뉴스에는 예언된 각종 사건 사고가 잇달았다. 그가 메시아와 대화할 때마다 텔레그램 방의 사람들은 더 쉽게 그의 말을 따랐고, 그가 인터넷에 퍼뜨린 소문들은 점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마치 세상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온 착각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메시아는 단순한 악플 이상의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요한에게 점점 더 어둡고 위험한 계획을 제시했다. 요한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 계획에 끌렸다. 메시아는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를 시험하던 것처럼 그를 유혹했다. “세상의 모든 권력을 너에게 주겠다”는 말은 요한의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다. 어쩐지 요한 자신이 메시아의 말에 따라 성경에 갇힌 말들을 탈출시켜야 하는 모세의 역할을 맡은 것 같았다.

요한은 그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는 메시아의 길을 닦아주는 2인자가 될 것이라 다짐했다. 처음에는 메시아가 실제로 나타나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메시아가 그를 인도하며 더 큰 힘을 주겠다고 약속하자, 요한은 그 약속을 믿었다. 그는 메시아가 세상을 정복할 때 자신은 그 밑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아남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요한의 마음속엔 또 다른 감정이 자라났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메시아가 자신에게 힘을 준 만큼, 그가 나타날 때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그가 이토록 오랫동안 쌓아온 권력과 영향력은 메시아가 나타나는 순간, 단숨에 사라질 위험이 있었다. 요한은 메시아를 경배하면서도, 동시에 그를 두려워했다.

그는 더 이상 자신만의 텔레그램 방에서 숨어 지내지 않았다. 그는 다크웹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였고, 큰돈을 벌었다. 그 돈의 일부로 최목사와 그의 교회를 후원했다. 그는 최목사를 전면에 내세우며, 교회와 신도들 사이에서 메시아처럼 군림했다. 그에게 힘을 준 메시아의 존재를 감추고, 자신이 그들의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맡은 것처럼 행동했다. 최목사는 그저 자신의 말을 따르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지만, 그는 신도들 앞에서 최목사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요한은 스스로를 신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을 조종하고,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 뒤에는 메시아의 존재가 늘 그를 옥죄고 있었다. 메시아가 진짜로 나타나는 순간, 자신은 더 이상 2인자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 그 두려움은 요한의 밤을 지배했다.

메시아가 실재하는지, 그가 언젠가 나타날지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요한은 더 많은 사람을 통제하고자 했다. 그는 최목사를 통해 성도들을 지배하고, 그들 위에 군림했다. 하지만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언제나 메시아가 나타나면 자신이 무너질 것이라는 공포가 있었다.

악마를 대적해서 이길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사실 악마와 싸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챔피언이 도전자의 도전을 언제나 받아주는 것이 아니듯, 체급이 맞아야 하고, 싸울 만해야 대결을 받아준다. 그 전까지 악마는 우리를 공격하지 않고 우리가 공격하기 쉽고 업신여길 대상을 밀어 넣어 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처단할 힘을 준다.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결정할 권한을 얻는다. 우리는 그 유혹을 이기기 어렵다. 우리는 우리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깨닫고 감탄하게 된다. 모두가 우리를 경외하기 때문에 우쭐하지 않기란 매우 어렵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늪으로 빠져든다.

요한은 메시아가 오기 전, 자신이 더 많은 힘을 얻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할 수 있을 때만이 메시아가 와도 그에게 대항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는 최목사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을 지배하려 했고, 더 많은 주술적 의식과 저주를 사용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메시아의 도래를 두려워하면서도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그가 온다면, 요한은 영생을 누리며 그의 오른팔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메시아는 그를 무너뜨리고, 그가 쌓아온 모든 것을 빼앗아갈 것인가? 이 물음은 요한을 끝없이 괴롭혔고, 그 두려움 속에서 그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요한에게 주어진 모든 영광의 빛이 한순간에 열광 뒤 빚으로 바뀌었다. 회복할 시간조차 없을 때에 눈앞에서 문이 닫히고 있었다. 캄캄한 어둠만이 남을 것이었다.


최목사는 그러한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그저 교회와 신앙에 헌신하는 청년으로 보았다. 그가 자신을 "주님의 도구"라고 말할 때마다, 최목사는 의심 없이 그 말을 믿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사장은 자신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의 올바른 부흥을 위한 희생적 준비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가 보기에 유다인 이사장은 점점 더 위험한 주술과 종교적 의식에 빠져들었고, 이를 통해 세상을 통제하려는 것 같았다.





#6

매일 한 시간쯤의 주술 의식이 진행되었다. 최목사는 수행원들과 함께 차를 몰고 나갔고, 그 시간 동안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식량과 무기가 될 만한 물품들을 수집했다. 의식이 진행될 때마다 확성기를 통해 퍼지는 주술은 마치 저주파처럼 바깥으로 뻗어나갔다. 그 주술의 영향으로 말들과 죽은 사람들은 길거리에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들의 몸은 무거워졌고, 설령 잠에 들지 않더라도 몸이 무겁고 느려져서는 방향을 잃고 헤매었다. 살아남은 이들이 그들과 맞닥뜨리더라도, 눈을 피하거나 재빨리 피해 다닐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웠던 것은, 주술의 힘을 빌려 말들과 죽은 자들의 이름을 외치는 것이었다.

"너의 이름은 출애굽기 O장 O절이다."

최목사나 수행원이 이런 식으로 성경 구절을 선언하면, 그들은 마치 악령이 구마될 때처럼 바닥에 엎드려 조용히 잠들었다. 성경 구절은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그들이 누구든, 얼마나 강력한 존재로 변했든지 간에 성경의 힘은 여전히 유효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때로는 성경 구절조차 잘 듣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수행원이 최목사를 대신해서 또 다른 이름을 외쳤다.

"텔레그램!"

아니면 다른 인터넷 사이트 이름을 외쳐보기도 했다. 그렇게 이름을 외치면 대개는 멈춰 섰다. 그곳에서 유래된 저주와 악의 기운들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령 그러한 출처를 몰라도 근처에 가서 무방비 상태로 있지만 않는다면, 위험에 노출될 일은 없었다. 그들 역시 반수면 상태였기 때문이다.


정작 이 수색 작전에서 최목사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토록 많은 주술을 쓰고, 수많은 존재들을 잠재우며 길거리를 떠돌았지만, 아들 재선은 여전히 찾을 수 없었다. 재선이는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흰 운동화를 신은 평범한 청년이었다. 180센티미터쯤 되는 키도, 그리 특이한 차림새도 아니었다. 길거리에 누워 있거나 어딘가에 기대어 잠들어버린 다른 사람들과 구별할 수 없었다. 그의 아들을 찾기 위해 최목사 부부는 매일 수행원들과 함께 나가 수색을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하루는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들 사이를 헤매다가 끔찍하게 죽어 있는 사람들을 보고 최목사와 그의 부인은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루고자 했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묵인해 왔는지 깨닫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무지와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자책감이 그들을 짓눌렀다. 분명 신비로운 체험으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끝내 “설마...” 하면서 다시 그런 일이, 심지어 이토록 대규모로 현실에서 일어날지는 몰랐다. 그것들이 성경에서 추출되어 나오는 순간, 성경에서 그것을 몰아낼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어떻게든 성경에 가두어 두고 영원히 격리시켜 봉인했어야 할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를 위해 매일 기도를 했던 것이라는 생각, 우리도 모르는 채 성경에 담긴 채 성경을 무겁게 했던 그 모순에 찬 잔혹한 말들은 결국 성경에 얽매여 있었던 것이라는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왔다. 결코 그것들은 풀려나서는 안 되었다. 구약의 말들은 현실로 풀려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깨닫고 있었다. 그 말들은 세상으로 풀려나지 말았어야 할 악몽을 드러내고 있었다.


"재선이가 나 대신 벌을 받는 걸까?"

최목사는 눈물을 닦으며 생각했다. 그의 아들이 이 모든 것을 대신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도 어김없이 수행원들과 함께 거리를 헤맸다. 아들이 근처에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는 재선을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답답해졌다.

어느 날엔가는 길에 숨어 있던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최목사는 그들을 데려가자고 했다. 수행원들은 그들의 감염 여부를 알 수 없다고 경고했지만, 최목사는 그들도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을 감금한 채 감염 여부를 추이로 확인한 후 격리 해제를 제안했다. 수행원들은 난감해했지만, 수색 후 보고를 듣던 유다인은 그 제안을 사후에 수락했다. 다루기 힘든 말의 숫자를 통제하고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이 많아야 어쨌든 자신의 권력이 유의미해진다고 생각했다. 성도들은 그렇게, 유다인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죽은 말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히 유다인의 명령을 따랐다. 유다인은 적절하게 성도의 수를 유지하기 위해 죽은 말들을 강하게 통제하였다. 죽은 말들의 독재자가 된다고 해서 아무런 좋을 것이 없었다. 결국 마지막 남은 사냥감은 자기 자신이 된 채 그들의 황제이자 먹잇감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최목사는 매일 수색을 나갔고, 그때마다 망원렌즈를 사용해 그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종종 사람들이 움직이는 곳에서 죽은 말들의 반응이 뚜렷했다. 그러면 수색 작전 때 그쪽 지역을 중심으로 수색을 펼쳤다. 3주쯤 흐르자 길거리에는 산 사람이 눈에 띄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또한, 아직 최목사에게 발견되지 못한 채 길거리에 있더라도, 나름대로 주변에서 숨는 것에 성공한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숨는 법을 아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능숙하게 자신을 숨겼고, 그들은 더 이상 저주파에 걸려들지 않았다. 심리적으로도 강해진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저주파의 영향을 받지 않거나, 아예 그들의 존재를 재빨리 눈치 채고 일찌감치 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죽은 말들과 물려 죽은 자들은 여전히 같은 곳을 배회했다. 그들은 지능이 없었다. 성 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보이는 사람만을 찾아내려고 하니, 결국 먹잇감이 없는 공간에서 저희들끼리 맴돌았다. 그렇게 길을 잃은 채로 같은 장소를 계속 맴돌다가 결국 자기들끼리 충돌하고 싸웠다. 그러다 기어이 서로를 물어뜯으며 자기들끼리 공멸하는 싸움을 벌였다.

처음에 그들은 신선한 피와 살을 찾으려는 공격적 야수의 본능을 드러냈었다. 그러다 그것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서서히 같은 처지의 말들과 죽은 사람의 썩은 살과 굳은 피라도 취하려 한다. 그렇게 아수라장이 된다. 이때부터 말들은 죽은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더 약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물어뜯긴 사람들 중 그나마 신체 능력이 보존된 정도라면 모를까, 하반신이 날아가 버린 이들은 기어서 도망쳐야 했다. 상대와 대적할 수도 없는 채로, 그렇게 남아서는 계속 헛돌다가 끝내는 자기 살점을 뜯어먹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팔을 뜯어먹고 배를 찢어서 살점과 장기를 파먹고는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말들끼리도 이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므로, 도시 곳곳에서 자기끼리 싸우고 최종 승자가 된 말조차 끝내는 자기 살점을 파먹고 죽을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는 살점을 찾지 못한다고 썩은 살점을 먹고 토하면서 끝내 먹는다는 행위를 포기하지 못하고 죽기 전까지 반사적으로 움직일 것이었다. 어쩌면 이들은 신선한 피와 살을 좇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공격적인 말과 조롱이 담겨진 육신을 찾는 듯했다. 거기에는 각종 더러운 말이 스며 있어 간이 잘 배어 있다는 기억만이 본능처럼 남아서 도무지 먹지 못할 상황에서도 철저히 파멸적으로 먹어댔다.

최목사는 그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기도했다. 이 모든 것이 끝나기를, 그리고 재선을 찾을 수 있기를.




#7

재선이를 찾은 것이 최요섭 목사 부부에게 과연 좋은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상상 이상의 것을 보게 될 상황이라면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재선이의 상황도 그랬다.

당시 말들은 잠들어 있으면서도 평소 같지 않게 역병을 앓듯이 먹던 것을 토해내는 반사 작용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썩은 살점을 먹고 토하면서 반수면 상태로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들은 모두 그렇게 곧 정말로 다시 한번 영영 죽을 것처럼 보였다. 무리 중에 가장 약해 보이는 말이 여럿에서 물어뜯긴 채 죽은 사람의 신세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그 중에 일부가 상반신이라도 남은 채 간신히 살아서 버둥거렸다. 불편했기 때문인지 말들이 그날따라 불안정하게 반수면 상태에 있는 숫자가 많았다. 고통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오래 전 살아있을 때의 고통을 기억이라도 하는 것인지 살고자 하는지, 있는 힘껏 버둥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반수면 상태로 경기를 일으키듯 버둥거렸다. 그렇게 낙오한 괴생명체 중 자기에게 살점이라도 남은 녀석들이 바닥으로 기어가면서 어디론가 몸을 숨기고 경계하더니 자기 앞발을 물어뜯어 먹고는 비명을 참으며 살점을 토해내고 다시 그 행위를 반복했던 것이다. 아무 대상도 덫에 걸리지 않을 미약한 저주파를 쏠 뿐이었다. 그마저도 하반신을 잃은 녀석들을 대상이 바로 앞에 있어도 어쩌지 못한 채 으르렁댈 뿐이었다. 힘없이.

재선 역시 그런 상태였다. 최목사 부부는 그를 발견한 순간, 말문이 막혔다. 눈앞의 재선은 더 이상 그들이 알던 아들이 아니었다. 그의 몸은 상반신만 남아 있었고, 괴생명체처럼 바닥을 기어다니며 자신의 앞발을 물어뜯고 있었다. 재선의 흰 운동화는 피와 진흙으로 얼룩져 있었고, 그의 얼굴은 비틀린 채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우리를 구원해줄 자는 없는가!”

최목사는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랐다. 어서 빨리 욥처럼 이 시련이 다 지나가기만을 바라였다. 최목사의 부인은 믿기지 않는 상황에 아들을 만지며 끌어안고 울었다.

"재선아, 우리 아들… 제발… 눈을 떠봐."

그러나 재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본능에 따라 어머니의 목을 물어뜯었고, 최목사 부인은 절규하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아들 재선은 동물적인 본능으로 허기를 달래기 위해 어머니의 목을 물어뜯었을 뿐이다.

그때였다. 유다인이 있는 본거지에서 거대한 말이 보였다. 초고층빌딩을 부수면서 걸어가는 그 말은 말 그대로 거대한 괴수였다. 빌딩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사람들이 건물의 잔해를 피하며 바깥으로 뛰쳐나왔을 때 그 비명에 잠을 깨버린 죽은 말들이 모처럼 신선한 살점의 냄새를 맡았다. 주술사들의 주문도 멈춘 상태였다. 괴생명체들이 최면에서 풀려난 것이다.

이틀 전 최목사도 최면에서 깨어났었다. 이미 깨닫고는 있었으나, 유다인에게서 직접 듣고 싶었다. 아들의 구원 가능성을.

“구원이냐니? 문자 그대로 성경에 나온 그 의미라면, 글쎄, 그들은 스스로의 상태를 모르는 편이 구원일 수도 있지. 어떻게 제 정신으로 자신의 꼴을 보며 살아갈 수 있겠느냐 말이지. 그걸 모르게 해준 게 현실적인 구원 아닐까? 그리고 그건 내게도 달콤한 선물과도 같지.”

애초에 그를 믿은 게 어리석었다. 그의 신묘한 사술을 하나님의 표적처럼 여기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정말 믿었고, 곧 이상함을 느꼈고, 그걸 인정하기 싫어 애써 외면했다. 그리고 연루된 치부를 숨기려고 한동안 노력했다. 그러나 이미 저지른 죄악을 씻지 않고는 구원의 가능성이 아예 닫힐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답답해졌다. 더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사방에서 괴생명체가, 죽은 말이, 죽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모처럼 생기 있는 사람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수행원들은 이쪽으로 다가오지도 못하고 당황한 채로 차안에 갇혀서는 망설이다가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러나 정면 돌진하는 말들에게 부딪혀 차의 보닛은 반쯤 구부러졌다. 이제 그들의 운명도 결정될 것이었다. 최목사 부부도 동일했다.

최목사는 부인에게 다가서지도 못하고 부인은 아들 주변으로 몰려드는 괴생명체들에게 온 몸이 뜯겨져 나가고 있었다. 최목사 역시 사방에서 몰려드는 괴생명체들을 어쩌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알았던 여러 사이트의 이름을 불러댔지만, 너무도 많은 출처들을 일일이 알기란 어려웠다. 최목사는 점점 의식이 혼미해졌다. 괴생명체들은 저마다 최목사가 스치듯 연모하였던 신자와 연예인의 얼굴로 다가와서는 그를 물어뜯었다. 그녀들에 관한 시시콜콜한 헛소문을 속닥거리며, 미성년자 노예 놀이에서 사냥감을 궁지로 몰듯이 열렬하게 밀어붙이자 최목사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괴생명체는 그녀들의 얼굴이 가장 추한 모습으로 일그러지도록 하면서 최목사의 살점을 추접스럽게 뜯어댔다.

마지막 순간, 최목사는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악이 되돌아와 그를 삼키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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