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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2/2)

연작소설

by 희원이

[목차]

◑ 구약의 말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 프롤로그

♬ 기이한 죽음

♬ 다시 돌아온 죽음

♬ 안팎의 고립

♬ 저주파의 교란

♬ 사교의 주술

♬ 탈출

♬ 격리

♬ 붕괴

♬ 피란

♬ 에필로그


* <탈출> 줄거리

대재앙이 닥친 도시에서,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가운데 시간이 멈춘 듯한 어둠이 깔려 있다. 혼란이 극에 달한 순간, 거대한 말 형상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며 도시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발걸음마다 빌딩이 부서지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지만, 죽은 말들이 주술이 풀리며 되살아나 인간들을 추격한다.

수행3팀장 주요섭은 혼란 속에서 수행원들을 이끌고 사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도시를 뒤덮은 거대한 말의 등장에,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이사장 유다인이 이 재앙의 원흉임을 깨닫는다. 유다인은 자신이 불러들인 괴물의 존재를 보며 절망에 빠지고, 메시아라고 믿었던 존재가 자신을 심판하려는 괴수임을 자각하게 된다.

주요섭은 수행원들과 함께 사원의 비밀 통로로 진입해 탈출하려 하지만, 도시는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으며 통로 역시 붕괴의 위험에 처해 있다. 그들은 죽은 말들의 저주파 공격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통로 안에서 긴장 속에 이동한다.

이 와중에, 수행원들은 배가 급격히 불러오른 의문의 여자를 데리고 있으며, 그녀와 유다인 사이의 불가사의한 관계에 대해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주요섭은 그녀를 주시하며 마음속 갈등을 느끼지만, 우선 살아남기 위해 통로 깊숙이 진입을 서두른다.





#4

“살아있습니까? 물리지 않았습니까?”

수행원 중 한 명이 권총을 겨눈 채 지나가던 여자를 향해 물었다. 그의 손끝은 총의 방아쇠에 살짝 걸려 있었고, 긴장감이 감도는 눈빛이 여자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물린 사람이 스스로 물렸다고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는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여자는 멀쩡해 보였고,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였으나, 이곳에선 언제나 조심해야 했다.

주요섭도 그녀를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아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분명 성 바깥에서 처음 데리고 온 그 여자였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그녀는 날씬한 몸매를 하고 있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의 배는 일주일 만에 급격하게 불러오고 있었다. 이미 산달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하기야 당시에는 이보다 더한 것을 믿어도 뭐라 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무엇 하나 이상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처음에 말이 하늘에서 떨어질 때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말이 갑자기 사람처럼 일어서서 걷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했을 때에는 세상이 정말 종말이 오는 것 같은 두려움과 함께, 이사장을 보필한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기쁨마저 생겼다. 구원을 받을 선택이었다고 믿었다. 그때가 순식간에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여자의 불러오는 배를 보니, 처음이라 충격적이었던 말의 모습이 겹쳐서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환시처럼, 어둠 속에서 죽은 말이 실려 있는 수레가 덜컹거리며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작은 움직임이었다. 말의 다리가 살짝 떨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수행원들은 여전히 멀찍이서 수레를 지켜보며 상황을 주시했다. 그들 중 일부는 말이 죽었다는 사실에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았고, 또 다른 일부는 그냥 빨리 처리하고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말의 움직임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뭐야… 저게 왜 저렇죠?"

이제는 죽은 막내 수행원이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말의 다리가 부르르 떨리더니, 그 움직임은 곧 말의 온몸으로 퍼졌다.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어느 순간 강하게 떨면서 반쯤 닫혀 있던 눈이 툭 열렸다.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그 눈동자 속엔 맑은 생명이 아닌, 차갑고 어두운 무언가가 깃들어 있었다. 말 그대로 죽음에서 다시 일어난 듯한 기묘한 빛이 그 눈 안에서 깜박였다. 그 불길한 빛이 어둠 속에서 스산하게 번뜩였다.

수레가 덜컹거리며 더 크게 흔들렸고, 말의 몸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 말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려는 듯 보였다. 수레 위에서 굳어버린 앞다리가 경련을 일으키며 떨리기 시작했고, 낡은 나무 수레의 바퀴는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말의 무거운 몸이 그 위에서 기괴하게 흔들릴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가 어둠 속을 가득 채웠다. 수행원들은 그 광경을 멀리서 넋을 잃고 지켜보고 있었다.

말의 목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고 무거운 목이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는 듯, 천천히 들리더니 좌우로 비틀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뒤로 꺾이며 기괴한 소리를 냈다. 말의 몸은 부자연스럽게 비틀렸고, 말의 다리는 더 강하게 떨리며 마치 몸의 균형을 잡으려는 듯 바닥을 향해 천천히, 거칠게 내려오기 시작했다. 굳어버린 관절이 삐걱거리며 부서질 듯한 소리가 밤바람을 타고 흉측하게 울려 퍼졌다.

수행원 중 일부는 그 기괴한 광경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작게 속삭였다.

"저게… 대체 뭐야…?"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뭔지 모르니 대답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두려움에 휩싸인 채, 멀리 떨어진 곳의 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못 본 것 아닌가 싶어 눈을 비비는 수행원도 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말이 마침내 완전히 일어섰다. 다리 근육은 기괴하게 비틀려 있었고, 그 모습은 불균형한 괴물 같았다. 눈은 초점 없이 허공을 향해 번쩍였고, 입가에서는 마른 침과 피가 섞여 흘러나오고 있었다. 말의 턱이 삐걱대며 부자연스럽게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고, 기괴한 소리와 함께 말의 몸이 다시 한 번 크게 떨며 비틀거렸다.

곧 사내들은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말은 그들 쪽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그저 무심하게 자신의 무게에 발을 맞추려는 듯한 모습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그 걸음걸이는 서툴렀다. 마치 생명이 없는 존재가 어둠 속에서 새롭게 생명을 부여받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수행원들이 말이 그들 쪽으로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며, 그저 그 자리에 숨어 있었다. 말은 자기가 감각하는 방향으로 뒤뚱거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어떤 목적도, 의도도 없이 그저 걸음을 내디딘 것처럼 보였다. 말은 점점 멀어져갔고, 그래도 이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주요섭은 자신과 몇몇만이 말을 멀리서 좇았다. 나머지는 현장을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렇게 해서 남은 수행원들은 급히 수레를 멀리 치웠다. 임무대로 수레를 치워야 했고, 그것이 말의 움직임과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아무도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는 원래 할 일이 있었다.

그러고는 예상치 못했던 일도 수행해야 했다. 여자를 데리고 일단 비밀 사원으로 들어가야 했다. 사내 여럿을 데려가기보다는 여자 하나를 택했던 것이다. 가까이서 그 상황을 지켜본 목격자로서.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주요섭의 눈은 그녀의 배로 향했다. 성 바깥에서 데려왔을 때만 해도 배가 멀쩡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불러오다니. 수행원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저 여자가 무슨 나쁜 짓을 한 걸까? 유다인 이사장과 관계가 있는 거 아니야?”

이런 이야기들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들의 의심은 점점 더 음모론에 가까워졌다. 그녀가 유다인 이사장의 집무실에 자주 출입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누구의 아이인지에 대한 수군거림은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다들 단순한 업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유다인 이사장의 첫 목격담을 전하는 중요한 인물로 여겨졌다. 성 바깥에서 처음으로 살아 돌아온 사람, 그리고 괴물들에 대한 정보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집무실을 드나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빈도가 잦아지고, 그곳에서 오래 머물기 시작하면서부터 의심의 눈초리가 그녀를 향하기 시작했다. 그저 목격담을 듣는다는 핑계로 그렇게 자주, 그리고 오래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전, 그녀의 배가 불룩해지자 소문은 폭발적으로 퍼져 나갔다. 단순한 임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일주일 만에 배가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은 생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은 그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일부는 그녀가 유다인 이사장과 관계를 가졌을 거라 생각했고,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일이었다.

유다인 이사장은 영생을 추구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의 영향력과 신비로움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경외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그런 그가, 그토록 고결하게 보였던 그가 한 여자를 임신시켰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행원들 사이에서는 더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저 여자가 유다인 이사장의 아이를 임신했다면, 그 아이도 영생을 누리게 되는 걸까?”

이런 소문들이 돌면서 점점 이야기는 더욱 왜곡되었다.

주요섭은 그 모든 소문을 들으면서도 마음속 깊이 갈등을 느꼈다. 그 역시 소문에 휘말릴 뻔했지만, 본능적으로 의심을 품고 있었다. 사실 그가 더 궁금해 했던 것은 다른 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일주일 만에 여자의 배가 이렇게 불러올 수 있었을까?’

그것이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불가능한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주변의 수군거림에도 불구하고 주요섭은 계속해서 여자를 주시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이 읽히지 않았다. 마치 이미 자신이 감당해야 할 운명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수행원이 총을 겨눈 상태에서도 그녀는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고 침착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죽은 사람과도 같았다. 오래 전부터 소문이 안 좋은 행실로도 알려졌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도 개의치 않았다. 언제든 삶을 놓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무엇이 어찌 되든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아이는 누구의 아이죠?”

주요섭은 차마 그 질문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이미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사장과의 관계를 추측하는 소문들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그 존재가 앞으로 어떤 일들을 일으킬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모든 이들이 그녀를 의심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녀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만의 비밀을 품고 있는 듯, 누구도 믿지 못할 일들을 숨기고 있었다. 신도들은 점점 그녀의 불룩한 배가 거슬렸다.

주요섭은 수행원을 따라오던 산 사람들의 무리 속에 그녀를 끼워주었다. 신도들은 웅성거렸다. 그녀를 데려가야 한다는 것은 그녀의 운명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가 께름칙한 만큼 자신들의 미래도 불안해 보였다. 사실 그건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어차피 그녀가 없어도 불안한 미래였음에도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싶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런 시선을 받을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5

사원의 지하 깊숙한 곳, 먼지가 쌓인 비밀스러운 돌문이 주요섭과 수행원들 앞에 나타났다. 주요섭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문은 무겁게 열리며 거대한 돌덩이의 마찰음과 함께 천천히 그 틈을 드러냈다. 그 너머로는 좁고 어두운 통로가 이어져 있었고, 그곳은 그들에게 있어 마지막 탈출구였다.

“진입.”

수행3팀장 주요섭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주저함이 없었다. 설명도 필요 없었다. 더 늦기 전에 탈출해야 했다. 그들은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비록 그 너머에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지만, 여기서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었다. 이 통로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수행원들이 주변을 경계하며 신도들이 통로로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맨 앞에는 베테랑 수행원이 길을 안내했다. 주요섭은 신도들이 거의 다 들어갔을 무렵, 그 순간, 뒤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사원의 벽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천장이 갈라지고 돌 조각들이 쏟아져 내리며 죽은 말들의 시체가 그 틈을 따라 아래로 쏟아졌다. 수행원들은 경악하며 급히 통로로 뛰어들었다. 주요섭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지막으로 사원의 붕괴를 뒤로하고 몸을 던지듯 통로로 뛰어들었다.

굉음과 함께 통로는 어둠에 갇힌 듯했다. 다행스럽게도 메인 통로로 나아가는 출입문을 열어둔 상태였다. 그러지 않았으면 봉쇄된 채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메인 통로 안은 어두웠다.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 찼고, 그곳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에 대비한 듯 수행원들은 손전등을 켰다. 되도록 신도 개인들에게 지급했던 손전등이 모두 켜졌다. 모두들 되도록 침묵했다. 그들의 거친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만이 길게 울렸다. 그들은 살기 위해 더 깊은 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비밀 통로는 수행원들이 작전을 수행하거나 바깥으로 드나들 때 필수적인 길이었다. 도시 곳곳으로 이어지는 이 통로는 수년간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게 설계되어 있었고, 암호화된 출입 시스템 덕분에 철옹성 같은 보안 체계를 자랑했다. 수행원들은 최소한 7개의 복잡한 암호를 통과해야만 통로의 가장 깊숙한 핵심부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 통로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하수구나 상하수도 시설로 위장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성경 조직의 핵심 인사들을 보호하고 피신시키기 위한 탈출로였다. 무려 10여 년의 세월 동안 성경의 블랙해커이자 스마트해커로서 이중첩보원처럼 활동하면서 수많은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주면서 위급 시 그들의 피신을 돕는 반쿠데타 용으로 설계해놓았던 것이다. 북한의 땅굴과는 달리 상하수구로 위장한 채로 평소에는 이중으로 은폐되어 있어 통로를 발견하고도 상하수도 시설로 오판하게 되며, 성경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면도 있었다.

무엇보다 말들의 저주파 교란을 대비해서 이를 방어하는 설비도 갖추어 두었다. 그들이 이곳에서는 쉽사리 인간의 마음을 파고들 수 없을 뿐 아니라, 바깥에서 이곳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통로 안에 들어가면 말들이 내뿜는 저주파는 거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만일 통로로 그들이 쏟아져 들어와도 작은 소리마저 사방으로 울리면서 저주파도 억제되기에, 사냥감을 찾지 못하고 계속 자기 근처에서 맴돌 가능성이 높았다. 운이 좋아 자기가 들어왔던 통로로 다시 빠져나갈 수 있다면 그들로서는 다시금 배회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통로에는 애초에 진입하기도 어려웠다. 출구의 암호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행원들도 몰랐던 것은, 그 어둠 속에서조차 죽은 말들이 종종 통로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 마치 모든 곳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바퀴벌레처럼 그들은 어디서든 불쑥불쑥 존재했다. 더구나 통로가 빌딩 붕괴로 압박을 받으면서 사원 쪽의 통로가 파손 일보 직전이었다.

"설마…"

주요섭은 급히 손전등을 꺼내 앞쪽을 비췄다. 그 빛 속에 무언가 거대한 실루엣이 보였다. 저 멀리, 말처럼 보이는 형체가 어둠 속을 느릿느릿 배회하고 있었다. 아마도 광장 쪽에서 이어지는 지류 통로일 것이다. 그쪽의 출입문은 이미 부서져 있었다. 강한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보였다. 하기야 지상에선 거대한 괴수가 엄청난 힘으로 빌딩을 부수고 있었다. 그것의 쿵쿵거림이 통로에도 울렸고, 돌가루가 천장에서 떨어졌다. 이쯤의 강도라면 지하철 역사는 붕괴된 잔해로 가득할 것으로 보였다.

통로는 바깥세상과는 다르게 저주파가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말들이 이따금 무감각하게 통로 근처를 지나가곤 했다. 미처 부서진 출입문을 통하여 지하로 미끄러져 들어올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들은 종종 통로 입구 근처에서 움직이다가 저주파에 반응하는 것이 없다고 여겼는지 다른 곳으로 가버리곤 했다.

주요섭은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우린 계속 가야 해."

그들은 다시 한 번 발걸음을 재촉하며 깊은 어둠 속으로 더 들어갔다. 바깥으로 드나드는 수행원들은 이미 그들과의 교전을 피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말들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는 큰 움직임을 삼갔다. 욕설을 삼가고 내부의 분란이 생기지 않도록 단속했다. 저마다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아주 천천히 걸었다. 앞뒤로 손을 잡고 몇몇만이 손전등을 켜서 방향을 잡았다. 죽은 말이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발견하며 더 속도를 늦추며 걸었다. 누구도 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저주파가 통하지 않는 통로에서도 말들을 자극한다면, 그들이 몰려와 난리치는 일은 쉽게 벌어질 수 있었다. 수행원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긴장 속에 움직였다.

광장이던가, 아니면 성문 근처던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란이 지속되었고, 비명도 들렸다. 먹구름이 걷혔는지 빛도 통로로 한 줄기 새어 들어오고 있었는데, 부서진 출입문으로 말들이 쏟아 들어오지 않는 건 다행이었다. 오히려 안에서 배회하던 녀석들이 바깥의 소리에 반응해서는 부서진 출입문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가곤 했다.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감히 이쪽으로 진입할 생각조차 못했다. 사다리를 들고는 성문을 오르려다가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는 누군가의 속삭임을 듣기는 하였다.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성문 근처라는 것에 다들 조금 더 희망이 생겼다.

한참을 걸어 통로의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을 때, 수행원 중 한 명이 멈춰 섰다.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요섭은 발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이내 멀리서 작게 들려오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왔다. 성문을 타고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다급한 외침과는 결이 달랐다. 바깥의 소리였다. 혹시나 성벽을 타고 떨어질 성 안 존재들을 대비하여 그들도 긴급하게 상황을 주시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듯했다. 이쪽으로 수레와 트럭 등 장비를 옮기는 소리 같았다.

마지막까지 발각되지 않고 탈출하기 위해 모두가 정신을 다잡았다. 성문에서 다급해하는 사람들까지 챙길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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