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
♬ 밤톨은 밤톨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묵묵히
밤- 톨이란 단어는 어쩐지 귀엽다.
하- 찮은 듯하면서도 나름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밤톨이
늘- 툴툴거리지만, 그럴수록 어쩔 수 없이 예쁘다.
눈- 이 부으면 눈탱이 밤탱이가 된다는 표현도 귀엽게 웃기고
이- 세상 시간의 절반을 차지하는 밤과 발음이 같아서도 좋다.
내- 성적인 칠흑의 밤처럼, 밤톨도 단단한 껍데기 안에 자신을 숨기고 있다. 어쩌면 밤톨 껍데기 그 자체가 자신일 수도 있을
려- 운을 남기고는
들- 짐승의 식량이 되곤 한다.
판- 판한 마당에 껍데기를 까 밤 부스러기로 뿌려두면 새들이 와서 먹는다.
이- 로운 존재들이 있다.
하- 찮아보여도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작은 존재들은
얗- (얕)보여 무시당하기 일쑤지만,
게- 의치 않고 자기가 따르던 순리대로 산다.
따- 갑고
뜻- 뜨미지근한 시선을 견디며
하- 찮지 않다는 걸 아무도 말해주지 않음에도
다- 들 묵묵히 산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며.
√ 할머니의 낡은 단추
할머니의 낡은 재봉틀 옆, 작은 나무 상자 속에는
크고 작은 단추들이 잔뜩 담겨 있었다. 대부분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낡은 단추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녹이 슬고 약간 휘어진 금속 단추 하나였다.
할머니의 오래된 코트에서 떨어진 단추였다.
“넌 참 오래 버텼구나.”
할머니는 그 단추를 손에 올려놓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제 코트는 언제 버렸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그 단추를 보면 그 코트에 달렸던 것이라고 기억했다.
자신이 처음 그 코트에 달았던 날도.
코트는 새하얀 털이 덧대어진 겨울옷이었다.
할머니는 그 코트를 입고 수없이 많은 겨울을 보냈다.
첫눈이 내리던 날의 설레던 때에도,
얼어붙은 바람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았던 순간에도,
그 코트에는 그 단추가 달려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코트는 없어졌고,
그나마 하나 남은 단추도 그 빛을 잃었다. 어째서 이 코트를 처분했는지, 또 언제 단추가 떨어졌는지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단추를 달았던 때와 코트에 얽힌 추억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뭐예요?"
어느 날엔가 대학교에 막 입학한 손녀가 할머니의 상자 속에서 단추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할머니는 단추를 오랜 만에 만지작거리며,
“그래, 이게 여기에 있었네.”
오래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이 어떻게 먹고 살아왔는지. 어떻게 손녀의 아빠를 키워왔는지.
손녀는 그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고, 아빠에게도 있었을 어린 시절을 새삼 신기해했다. 누구에게나 있는 어린 시절이지만, 평소에는 별 생각 없이 지내다가 낯선 순간을 발견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었다.
손녀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이 단추, 저한테 주세요. 제가 새로 쓰고 싶어요."
며칠 뒤, 손녀는 단추의 녹슨 부분은 닦아내고, 오래된 금속의 독특한 무늬를 살려 새 생명을 불어넣더니, 그것을 자신의 책가방 안쪽에 꿰매어서는 고정시켜놓았다.
“이제 이 단추는 나와 함께할 거예요. 단추를 보면서 할머니 생각 많이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