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말잇기
♬ 눈사람을 만들던 날
눈- 사람을
이- 틀 동안 만들었다. 만든 뒤 부수고 다시 만든 뒤 부수었다. 그러고는 하나를 그냥 놓아두었다.
가- 장자리에 자리 잡은 눈사람은 마당과 집 모두를 차지한 채로 여유롭게 마당 가장자리에 서서 자기의 전 재산을 구경하는, 이를테면 창조주를 관망하는 진짜 주인 같았다.
장- 독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오랜 관록마저 묻어난다. 겨우 세 시간밖에 안된 녀석의 눈빛 치고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침착했다.
먼- 지를 책장에서 닦아내며, 검어진 물티슈를 보다가, 밖의 눈사람을 보았다.
저- 눈사람, 언젠가 본 적이 있었을까? 문득 우리는 이미 만난 사이였고, 그걸 모른 채로, 아직 만나지도 못한 우리를 만난 사이로 만들기 위하여, 내가 그를 쌓아올렸을 때, 비로소 우리의 운명을 완성하게 될 것이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붓- 다는 기억에서조차 아련할 만큼 먼 곳으로 밀려나 있고,
는- 개가 어울리는 계절도 아니다.
다- 미는 거실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졸린 표정으로 하품하며, 발바닥을 핥으며.
√ 눈을 계속 굴리면
눈사람- 을 만들려고 이러저리 눈덩이를 굴리다 보면, 지나가는 형들이 지나가다 말고, 아무 이유 없이 발차기로 눈사람을 부수기도 했다. 자기들이
람보- 래나 뭐래나. 두두두두, 기관단총을 쏘는 시늉을 하면서 키득거리는데, 솔직히 아무 말 못 했다.
보드람- 치킨 아저씨가 쓰레기 버리러 나왔다가는 그 형들에게 한 소리를 한다. “왜 쓸데없이 눈사람을 부수냐”라면서 “한심한 것들”이라고 혀를 쯧쯧 찬다. 손톱에 검은 매니큐어를 칠하고
람슈타인- 을 즐겨듣는다는 이상한 아저씨, 기괴한 소음처럼 들리는 음악을 손님이 없는 때면 치킨집에서 작게 틀어놓고, 가끔은 동네 아이들에게 치킨을 주기도 하였다.
인당수- 에 몸을 던진 심청이가 연꽃이었나,
수련꽃- 이었나, 그런 곳에서 다시 태어나는 듯한 장면을 그린 그림이 실내에 있는데, 모든 게 어울리지 않았다.
꽂눈- 이 겨울을 견디어 봄과 여름에 피어날 준비를 한다고 말해주던 아저씨는 어느 날
눈사람- 처럼 부서지더니, 어디론가 떠나고 말았다. 우리에게 인사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