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보면 옛 애인을 만난 것도 같고,

에세이

by 희원이

영어로 된 텍스트를 마주할 때면 지금도 주춤거린다.

원문을 보면 마치 이질적인 무언가를 접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글자는 분명히 읽히는데,

그 의미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솔직히 잘 모른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역시 영어 공부를 열심히 안 한 탓이지”

라는 자책이 고개를 든다.


요즘에는 한글 번역기를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알잖아, 그 번역기가 항상 엉터리인 걸.

문맥을 무시하고 직역된 문장은 어딘가 어색하다.

점점 번역이 매끄러워져 놀라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어딘가 모르게 맥락을 모르는 번역이 눈에 보인다.

또는 황당하게 엉뚱한 번역으로 웃음 짓게도 한다.

점점 나아질 것을 알지만,


그런 생각에 이르면 그토록 쩔쩔 매며 영어를 갈망하였던 시절이 떠오른다.

노를 잃어버린 쪽배처럼, 방향을 잃고 빙빙 돌지만 그 과정에서도 영어를 놓지 못하던 시절의 흔적이.

모험 중인 배처럼 가끔 풍랑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방향을 잃지만, 끝내 나아가려던 순간도.


영어여, 그대는 잘 있는가.

내가 이런 번잡함 속에서도 가끔씩

너의 소식을 떠올릴 때면 묘한 안도감이 든다. 나처럼

외국어의 어려움에 부딪히면서도 어쨌든

어디론가 나아가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외국어를 붙들고 그것을 부수려는 거대한 파도를 견디며

방향을 잃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어쨌든

육지에 가닿으려는 열망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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