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목차: 한여름에 우주]
제1장. 그때 우주
제2장. 우주의 부재
제3장. 우주에 하나
[소개글]
- 이 성장소설은 스냅사진처럼 짧게 찍은 어떤 풍경을 통하여 이야기를 진행한다. 콩트처럼 운영하지만, 내용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상하였다.
- 입시생이었던 종훈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학하고는, 갑작스럽게 여러 일을 겪는다. 모두가 보기에는 가족사가 가장 큰 문제였고, 종훈의 일시적인 일탈도 그 때문이라 여겼다. 오해였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오해가 아닐 수도 있었다.
♬ 오해가 진실이 될 수도 있어
내가 가출한 뒤 엄마는 그 사람을 간통죄로 엮는 걸 포기했다. 엄마와 외할머니에게서는 신뢰를 저버린 한 인간을 향해 절절한 분노의 감정을 내비추었지만 나는 모른척했다.
누구도 내가 가출한 이유를 묻지 않았고 나를 혼내지도 않았다. 단지 엄마가 간통죄 고소를 취하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그 영화 참 슬프더구나, 블루.”
라고 말했을 뿐이다. 아마도, 모두들 내가 아버지라는 사람의 일 때문에 가출한 것이라 여긴 듯하다. 일이 꼬이다 보면 어느 게 진실이고 어느 게 거짓인지 모르게 되거나 어느 게 앞이고 어느 게 뒤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가 그랬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처음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기억에 남기도 한다.
심지어 나조차 주희 때문이라기보다 아버지 사건 때문에 가출한 것일 수도 있다고 착각했다.
당시 예상과 결과는 대개 달랐다. 다행히 졸업은 했다. 나는 단과 학원을 다니며 집 근처 독서실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말보로 레드를 꾸준히 피웠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과 연락이 끊긴 건 그즈음이다. 생각해보면 뭘 그리 심각하게 여겼는지…… 그땐 정말 그랬다.
♬ 비슷하지만 조금은 달라진
화장실 문을 닫자 음악 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그 느낌이 좋았다. 외부와 조금이나마 단절될 수 있다는 느낌은 때로는 사람을 외롭게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기도 했다. 화장실에선 여전히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소변기에 얼음도 꽉 차 있었다. 바지 지퍼를 내리고 얼음을 향해 조준했다. 뜨듯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얼음을 타고 누런 액체가 튀어 오르기도 했고 얼음과 얼음 사이로 흘러내리기도 했다. 버릇처럼 얼음 사이에 꽂힌 나프탈렌을 세었다. 하나, 둘, 세며 좌우로 엉덩이를 살짝 흔들었다. 오줌 줄기가 흔들렸고 손에 오줌 방울이 살짝 튀었다. 자주 있었던 일이다. 나는 능숙하게 바지를 추스르고 세면대에 다가가 손을 씻었다.
모든 게 우주와 자주 놀러 왔던 4년 전 그대로였다. 그런데 우주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시간이 흘렀다. 4년이라는 감각하기 어려운 시간이 흐르고 나는 여전히 불안한 그대로 있는 듯한데, 모든 게 조금씩 달라졌다.
세면대 근처에 마련된 드라이기에 젖은 손을 말리고 있을 때 화장실 문이 열리고 어디선가 낯익은 남자가 들어왔다. 아마도 동문일 그가 화장실에 들어서며 내게 알은체했다. 음악 소리가 날카롭게 쏟아져 내렸고 잠시 후 소리가 다시 낮아졌다. “야, 오랜만이다.”라고 거의 동시에 말하며 잠시 어색한 순간이 흘렀다. 우린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이름은 쏙 뺀 채 형식적인 대화를 짧게 이었다. 어쨌든 어색하지만 능숙하게 서로 아주 반가운 꼴을 취한 것이다. 4년이라는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나 보다.
생각해보면 이들을 4년이 흘러 이곳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을 몰랐거니와 아버지와의 만남도 4년이라는 미묘한 시간 위에 놓여 있었다.
‘누굴까? 혹시 와타나베 씨?’
휴대폰을 꺼내어 플립을 열었다. 이번으로 세 번째 시도였다.
통화 신호음이 떨어지고 한참을 기다려서야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다. 부재중이니 메시지를 남겨달라는 내용이 아까처럼 반복되었다. 나는 그냥 끊었다. 그는 아직 일본에서 돌아오지 않은 듯했다.
‘누구를 소개해주고 싶은 것일까?’
궁금증을 떨치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더욱 궁금해졌다. 차라리 물 흐르듯 생각나는 대로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