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엔조이였니? / 주희, 이 나쁜 계집애!

소설

by 희원이

[목차: 한여름에 우주]

제1장. 그때 우주

제2장. 우주의 부재

제3장. 우주에 하나


[소개글]
- 이 성장소설은 스냅사진처럼 짧게 찍은 어떤 풍경을 통하여 이야기를 진행한다. 콩트처럼 운영하지만, 내용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상하였다.

- 이주희는 종훈에게 금방 관심이 식는다. 사실 모든 관심사가 맞질 않았다. 이주희는 결국 일진과 사귀기 시작하고, 종훈의 짧았던 연애사는 그렇게 끝난다.





♬ 나 엔조이였니?

하지만 깔끔한 멜로물이라고 여겼던 우리의 이야기는 갑자기 삼류멜로물로 변해버린다. 어쩌면 에로물이었을 수도 있다. 그녀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벌써 그녀는 다른 녀석을 사귀고 있었다. 그는 동네에서 잘나가는 날라리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하필 같은 학교 1년 후배이자 일진이었다.

“너 오토바이 하나 사라.”

주희가 억지를 부릴 때부터 어째 느낌이 안 좋았다. 생떼를 쓰던 그녀가 오토바이 사라는 말을 더는 하지 않게 된 지 보름도 되지 않아, 폭주족 양아치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소문이 내 귀에 들렸다.


부모님의 성화로 학원을 들락거린 지 어언 6개월. 그 정도면 그녀는 대통령 표창을 받아 마땅했다. 물론 그중 절반은 땡땡이 쳤다. 나머지의 절반은 나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나머지의 절반의 절반은 할 일이 없어 왔다가 자고 갔다.

이런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경우만 비로소 책을 펴고 뭔가를 끄적거리긴 했다. 말하자면 그녀에게 학원은 사전적 의미로 순수하게 기능하지 못한 셈이다. 그녀에게 학원은 기피의 대상이요, 애인과의 놀이터이고, 여인숙이며, 뭔가를 끄적거리는 곳이었다.

뜨거움을 속에 숨긴 주희는 여름이 가까워지자 타지 같은 학원에 도저히 머물 수 없었나 보다. 그렇다고 하필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 후배인 ‘원터치 짱’(후배의 별명이다. 한방이면 싸움이 끝난다고 ‘원터치 짱’으로 불렸다.)이라 불리는 녀석과 어울릴 건 뭐람.


그래도 잘 참은 것이다, 주희로서는, 사실 홈그라운드로 돌아간 것이다.






♬ 주희, 이 나쁜 계집애!

설익은 관계는 어차피 끝나기 위해 유지됐다. 나는 ‘사랑’이라는 간판을 ‘미움’이라는 간판으로 바꾸어 걸었다. 그래도 미움의 끝자락엔 상황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미련이 아직 걸려있었다. ‘무슨 사정이 있을 거야’라며 미련이라는 놈은 끝까지 상황판단을 흐리게 하면서 자신의 수명을 연장했다.

지금은 그녀 때문에 운 나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땐 주춤거리고 움츠러들었으며, 울었다.

열아홉,

나는 끝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끝이 있다면 그건 아름다운 비극 같은 거라고 믿을 만큼 어렸다. 나는 그녀를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만들기도 하고 남자주인공을 파멸로 이끄는 요녀로 만들기도 했다. 미련이 남아있을 때까지의 일이다.


너무 간단하게,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끝을 알린 주희에게 난 이유만이라도 듣고 싶었다. 일주일 동안 그녀의 집 앞에서 서성거렸다. 호출을 했고 집에 전화를 걸어 주희 어머니가 받으면 끊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한번을 응대해주지 않는 거지? 그녀의 차가움에 서서히 몸서리를 쳤고 미련이 걷혀갔다. 그녀는 내 머리에서 서서히 요녀로 고정되어갔다.


내 모든 청각의 주파수는 전화벨 소리와 호출음에 맞춰졌다. 일주일 동안 수십 번 깜짝 놀랐고 긴장했으며 매번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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