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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Sep 03. 2023

파이오니아의 출현

산문

[목차: AI와 독자]

◑ Part 1. AI와 창작

♬ 거장 AI, 너의 이름 파이오니아 

♬ AI 발달의 다섯 시기와 일곱 단계

♬ 파이오니아의 여명, 티핑포인트 전반기까지

♬ 인간 문명에 AI가 존재감 있게 등장한 순간

♬ 파이오니아의 출현

♬ 파이오니아의 후폭풍, 저작권 저인망

♬ 파이오니아 저작권 저인망 시대는 오발탄일까

♬ 파이오니아와 인간 예술가

◑ Part 2. 작자에서 독자로

(생략)

◑ 에필로그


[소개글]
-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몽상적 산문입니다. (생략, 더보기)
- 이미지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다시 이야기는 예술 분과로 돌아와, 파이오니아의 출현이 있었던 티핑포인트 후반기의 시작점에서 출발한다. AI인 파이오니아가 기존 약 인공지능과 어떻게 다른지 몽상하고, 인간 예술가의 역할이 어떻게 미세조정될 것인지 인터뷰한다. 그리고 사실 이 원고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저작권에 대한 언급이 시작된다.

- 저작권으로부터 출발한 몽상, 이는 사실 시민적 글쓰기의 '2차 창작'과 '과정의 글쓰기' 관점에서 주요한 쟁점 중 하나였다. 여기서 자세히 말할 순 없으나, 저작권에서 출발하여 예술가의 생활과 아마추어 창작자에 관한 이야기는 연계되기도 하는데, 그중 이란성 쌍둥이로 두 원고가 작성되었다. 하나는 밝음으로 나아가려는 몽상인 <저작권 태양계와 원시블랙홀>인 일명 '문화향유권(예술민주사회주의 관한 몽상)'에 관한 것이고, 어둠의 몽상으로 나아간 원고가 <AI와 독자>이다. 또 저작권으로부터 촉발하고 '과정의 미덕'과 '아마추어 예술가의 재편과 창작'이라는 관점으로 머물 줄 알았던 이야기가 뜻밖에 '읽기의 강조'와 '매트릭스적 속박'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렇게 이 원고는 저작권이 단초가 되어서는 예상치 못한 몽상으로 흘러간다. 몽상에게 논리를 맡기니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데로 이르렀다. 물론 이 꼭지를 구상할 때만 해도 그렇게 흘러갈 것까지는 예측하지 않았고, 오히려 저작권의 한계가 앞선 밝음의 원고를 써야 하는 근거로만 작동되기를 바랐다.
- 저작권은 현실적으로 유용하고 합리적인 체계지만, 모든 시스템에는 균열이 있기 마련이고, 저작권에도 3가지의 기만적 속성 탓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미래에 생길 수 있는데, 1)환경의 극한 상황, 혹은 2)무형자산의 사유재산화를 가속화하고자 하는 어떤 유혹적 상황(예: AI 출현) 등을 고려했고, 이를 여기서 자세히 말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배경에서 파생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 서술자 희원이, 소설가 지망생


♬ 파이오니아의 출현


예술 분야에서도 티핑포인트의 시기에 약인공지능에서 강인공지능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있을 것이고, 본격적으로 AI의 시대가 오겠죠. 대중 정서 반응의 단계로 보면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때를 두려움의 3단계에서 적극적 수용의 5단계 사이로 보는 거고, 정확히는 감정적 거부의 4단계로 정해보았죠. 티핑포인트 시기의 상징적 사건, 약인공지능으로 폭발적 확장세를 보이다가 강인공지능으로 모두를 압도하는 시점, 티핑포인트 후반기 시작이라고 해야 할까요. 






초인공지능의 특이점까지 와서 인간이 더는 이해하기 어려운 성과를 보이면 그 남아 도는 능력으로 어떤 예술을 선보일까 싶기도 한데, 제가 상정한 시기는 그 전 시기죠.

아직은 AI의 능력을 애써 부인하면서도 그 압도적인 능력을 보고는 AI를 예술가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 수용해야 할 때죠.

                                                

울고 있을 여유가 없어요. 아직 막을 수 있어요.


“그러나 모든 게 AI로 교체되는 건 시간 문제란 의견이 설득력 있게 들렸죠.”


   




그러니까 이미 충분히 AI가 압도적인 예술 창작 능력을 보여주어서, 대중과 예술가로선 이것에 감화된 상태지만, 그래도 인간의 예술적 자존심으로 버티며 인간에게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 창작이란 대체 무엇인지 되묻는 시점이에요. 

인터뷰 초반에 말했듯이 그때 ‘파이오니아’란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죠.


말로만 예견했던 사건이 드디어 현실화되었죠. AI 예술가이면서 거장의 출현이랄까요. 아, 천재요? 무의미하죠. 천재란 AI에겐 기본값 같은 거잖아요. 인간을 그냥 압도하니까요. 우리가 다른 동물보다 지능이 뛰어난 것을 천재적이라 말하지 않듯이요.


만듦새도 훌륭하면서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만족하는, 한마디로 장점을 다 지닌 똑똑한 예술이라 해야 할까요? 

엄청난 생산 능력을 지녔기에 하루에 수십 편의 시나리오나 장편소설을 출력해낼 수 있죠. 필요하다면 전위적 표현 전술까지 구사하는 작품도 시도하고요. 그것을 적용하면서도 시장의 필요성을 고려하여 인간이 말하는 고매한 정신을 흉내 내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너무 뛰어나게 압도적으로 흉내 내면 그걸 흉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간과 너무 흡사하고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고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는 안드로이드가 인간이 아닐 이유가 없는 것처럼요.






그 기본값의 능력으로 시나리오 첫 작품 이후로 일주일에 한 편, 점점 속도가 빨라지더니, 한 달도 안 되어서 1시간에 1편을 생산하는 속도를 보이더라고요. 괴물이죠. 

모두 영화로 찍어도 될 만큼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였죠. 실제로 흥행 성적, 수상 실적이 모든 걸 말해주죠. 괴물 같은 성과라는 점에서 거장이 어울리겠어요.

시나리오에 한정된 성과였지만, 그것만으로도 파괴력은 어마어마했죠.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가늠할 수 있을 기념비적 사건이었죠.


“아, 이거 다 몽상이에요. 몽상에 몰입하다 보니 마치 일어난 일을 먼 미래의 제가 직접 목격한 사건에 대해 회고하는 것처럼 말했네요. 아무래도 그게 편하거든요. 영혼이 지금 시점으로 왔다가 미래인이 되었다 해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웃음)”






어쨌든 파이오니아는, 영화 <파이오니아-새벽의 여운>은 처음으로 완벽한 균형미와 압도적인 생산력으로 인간이 두려워했던 모습을 기어이 드러냈죠. 영화 제목도 첫 인공지능의 이름에서 비롯된 거죠. 그것을 기념하는 영화이기도 했고요.

다만 아직 모든 면에서 압도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할 순 없었죠.


약인공지능적으로 시나리오 분과에서 명백히 뛰어나지만, 로봇 신체의 반응 수준이 좀 미흡했어요. 로봇의 인공 신경이 그것과 연결될 AI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조화롭지 못한 면이 있었죠. 운동 능력이라든지, 연기 면에서 인간 배우를 압도할 순 없었죠. 


물론 다른 방법이 있기는 하죠. 아예 인간 배우가 필요하지 않을 방식인 홀로그램을 떠올리면 될까요? 지금의 기술로부터 몽상하다 보니 떠오르는 게 홀로그램이네요. 완벽하게 인간 캐릭터를 홀로그램으로 영상화한다든지, CG로 그려내는 것 말이에요. 

CG의 경우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제작 기간이 너무 길어지고, 모든 총체적 움직임과 맥락 있는 표정과 일관된 생각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2시간 정도 유지하도록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을 거예요. 


아직은 반드시 어색해진다고 해야겠죠.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거나요.

물론 딥페이크를 위한 짧은 동영상 자료라면 사람을 속일 정도의 완성도를 보이겠죠. 거기서 더 길어진다면 허점은 드러나죠. 그래도 어차피 시간 문제이긴 했어요.






그나저나 그때에도 지금 같은 형식의 영화가 있을까요? 어쩐지 다른 방식이지 않을까 싶어요. 어쩐지 과거의 굴레에 갇혀 상상의 한계를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느슨하게 몽상한 경우 같아요. (웃음)
혹시 가상 상황이 환영처럼, 파노라마처럼 뇌를 스쳐가는 식으로 상영할 수도 있을까요? 어색한 얼굴 묘사를 인지할 때 그 감각을 둔하게 할 수도 있겠고요. 이것도 진부할까요?


어쨌든 완벽하게 AI가 영화 창작을 100% 장악한 것은 아니어도, 파이오니아의 이름은 허명이 아니었어요. 일단 대중의 정서를 자극하고, 예술적 완성도가 매우 높았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을 정도였으니, 이건 상징적인 사건이었어요.






올 것이 왔구나 싶었죠.


알파고, 챗GPT 등 인류에 큰 영향을 끼친 AI의 출현 때는 활발한 논쟁이 있곤 했어요. AI는 그동안 인류가 발명한 도구와는 차원이 다른 도구로 여겨졌으니까요. 언젠가 AI를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었죠. 핵무기보다 더 위험할 것으로 보였죠.






처음에는 일자리 문제로 모든 게 시작하지만, 나중엔 모든 면에서 압도되어 노예처럼 전락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어요. 너무도 현격한 실력 차가 났으니까요. AI와 인간 사이의 실력 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 확실해 보였고요. 

알파고 시기부터 많은 일이 있었죠. 바둑계에선 일대 파문이 일었고, 모든 게 알파고 등장 이전과는 같을 수 없었어요.


그래도 AI가 완전하려면 아직 멀었다고만 여겼는데, 챗GPT 출현 이후 불과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는 번역료가 갑자기 절반으로 인하하는 사태가 발생하죠. 발생하는 것으로 하죠. (웃음) 기업의 의지를 간과했던 거죠. 비용을 절감하려다 보니, 초벌 번역을 AI로 돌려놓고, 작업이 거의 다 된 원고를 들이밀고는, 원고를 다듬는 일을 인간 번역가에게 맡긴 거죠. 비용을 내리면서요. 

굴욕감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자신의 일이 평가절하된다는 것에요.






하기야 사람들은 대개 자기 일은 평가 절상하면서, 남의 일이 저평가 당하는 것에는 개의치 않았죠. 자기라면 일당으로 계산해서 요구했을 정당한 비용조차 남에게 지급하는 것을 아까워했죠. 최저시급도 되지 않는 돈을 들이밀고는 최상의 품질을 요구했어요. 좀 뻔뻔하달까요. 

결국 그 자신도 비용 절감의 대상이 되었죠. 기업의 수뇌부와 실무진의 비정한 능력을 무시할 순 없는 대목이죠.


다 먹고 살자고…






파이오니아 출현 전후로도 일자리 파괴 논란이 있었죠. 다만 AI가 두각을 보이던 티핑포인트 시기의 전반기도 제법 지나 이미 후반부의 기점이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AI 자체를 낯설게 여기진 않았어요. 그건 이제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었죠. 

마치 휴대폰이 일상 도구인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요. 그럼에도 아이폰의 출현이 인상적이었듯이, 파이오니아 역시 인상적이었어요.


“파이오니아 봤어? 엄청 감동적이던데. AI가 시나리오를 썼다던데, 사람이 쓴 것 같아.”






AI가 인간의 정신 영역까지 압도한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었어요. 무조건적인 거부감이 든 부류도 있었죠. 대개 이런 사람들은 ‘패배를 알면서도 패배를 인정했다가는 모든 게 끝일 것 같아’ 겁이 났던 거겠죠. 

결국 두려웠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고, 이제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요. 사람들은 이제 ‘예술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자문하기 시작했어요. 인간이 창작한 작품만이 예술인 건지 묻기 시작했고요. 


“마지막을 감당해야 하는 건 너무도 쓸쓸한 일이지.”






심지어 파이오니아가 사실상 시나리오부터 연출 세부 계획, 촬영 시 판단까지 거의 모든 영역을 장악하며 감독이나 다를 바 없이 활약했던 것이 비하인드 스토리로 알려지면서 더욱 더 세간의 관심거리가 되었죠. 


물론 처음에는 ‘인간인 명장 감독과의 협업’이라고 강조하긴 했어요. 인간 명장의 역할이 필요했거든요. 아직 사람들은 인간이 무언가를 해주길 원했으니까요. AI가 인간의 위대한 영역을 장악하고 말 것이란 심리적 거부감을 희석해줄 필요가 있었죠. 

이미 보편화된 홍보 마케팅 관행이긴 했어요.






[신예 감독, 케이]
“사실 제가 감수 본 것 외에 딱히 한 게 없다시피 하죠. 이미 완성도가 상당해서, 돈은 받아야겠고 해서 억지로 감수 의견을 적었죠. 정말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존 AI는 그래도 인간의 역할을 달리 할 뿐, 인간이 꼭 필요한 보완 지점이 있었거든요.”






“내가 울고 있을 시간에 AI는 소설책 한 권을 뚝딱 써내지.”


이미 파이오니아 전 단계의 AI들이 약간 부족한 면이 있어서, 인간 감독이 감수자 역할을 하면서 공동 작업을 하긴 했으니까요. 이때는 AI가 허술하게 작업해서  인간이 지닌 정서적 감정이나 상업적 감동 포인트를 엉뚱하게 짚어내는 실수를 했지만, 그건 인간 예술가가 수정하면 되었죠. 그래도 엄청난 시너지가 있었죠.

일단 감수자인 인간이 직접 창작했다면 생산량과 속도에서 한계가 있었죠. 그런데 AI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했어요. 






단순 피드백을 하더라도, 그 지적에 대한 AI의 반응이 굉장히 빨랐죠. 그런 식으로 마지막 확정까지 작업해도 작업 기간이 인간의 수작업과는 비할 수 없었어요. 소수의 감수자가 회의를 열며 상업성을 검토하면서 아주 빠르게 대량으로 시나리오를 생산할 수 있었죠.


“사람이 이렇게 일하면 창작의 고통으로 암 걸려 죽지. 난 담배 때문이니 장작의 고통 때문이지만서도.”






시나리오가 결국 영화 산업의 핵심 콘텐츠잖아요. 그게 규모와 내실 면에서 AI 덕분에 비약적으로 성장한 거죠. 비용 면에서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었죠. 무엇보다 이 콘텐츠는 기업에 귀속되었죠. 

간혹 유명 감독의 감수를 받다 보면, 계약상 공동 저작권자로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요. 


저작권은 창작자를 존중하는 권리 같지만 사실 자본의 힘에 따라 질서가 규정되었죠. 저작권 문제도 결국엔 무형자산을 사유재산화 하는 게 핵심이라고 보거든요. 거기엔 기업의 의지도 반영되었다고 보죠. 창작 의욕 고취 이런 것은 다 그냥 듣기 좋으라고 장신구처럼 걸어놓은 말일 수 있고요. 영화 산업처럼 제작 비용이 많이 드는 예술에선 특히 자본의 힘이 더 강했어요.






파이오니아처럼 AI의 창작 능력이 대중을 감동케 하고 예술적 미덕을 쉽게 실현하는 수준에 이르고, 영화 실무적인 판단에서도 인간 감독과 비등해지면, 감수자 역할을 했던 인간 예술가의 지위도 흔들리겠죠. 그들은 AI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기에도 벅차죠. AI가 처음부터 너무나 완벽한 시나리오를 내놓는다면요. 심지어 그것의 사업성과 이후의 전략까지 모두 우수하게 집행할 수 있다면요. 


“점점 내가 할 일이 없어지는구나. 아, 인생이여!”






이때는 그저 대중의 감정적 응원에 기댈 수밖에 없죠. 그래도 인간이 예술이란 정신적 유산을 수행하는 주체가 되길 바라는 무조건적인 응원이요. 

AI가 예술 영역을 대신 맡는 게 훨씬 낫다는 걸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여기는 순간, 인간의 자리는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죠. 인간이 더는 예술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담당하지 못하는 거죠. 이때부터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애미야, 옛날에 재즈나 록 듣던 사람들이 K팝을 몰래 들으며 이런 모순적 감정을 느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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