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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Jul 21. 2023

얼굴이 없는

그림 소설

[목차: 꿈속에서]

♬ 꿈속의 로드킬

♬ 아기새가 새장을 벗어날 때

♬ 얼굴이 없는

♬ 끝내는 희미해져 끝에 가까워지는 것

♬ 길에서 온 고양이

♬ 해롭지 않다는 건


[소개글] 
- '꿈속에서'는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그림 소설입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여자는 있을 수도 있었을 어떤 가능성, 그 가능성의 상실을 생각한다. 그럼에도 살아야 할 방향을 보며, 자신을 흉볼 수도 있을 시선에 의연하려 한다. 남자는 연락이 없다.






♬ 얼굴이 없는


트위터에선 모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 보아주길 바라는지 일거수일투족을 말하며 시시콜콜하게 삶을 공유했다. 

그러다 보면 앞뒤 말이 하나도 맞지 않은 채 이상한 말을 지껄이고 나선, 원래부터 없던 계정이 되는 존재들도 있었다. 그들은 원래부터 죽은 존재들이지 않을까 싶었다. 좀비라는 말이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었다. 

트위터엔 좀비들과 사람들이 아웅다웅 모여 있었고, 솔직한 이야기를 수많은 시선 앞에서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도 아직 아무 말도 할 준비가 안 된 것 같았다. 브라운관 안에선 1천 년을 떠돈 여자가 앳된 모습으로 앉아서 을씨년스러운 고목의 말라비틀어진 잔가지를 바라본다. 그들은 죽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데, 죽어 있지 않았고, 때때론 흘러나오는 노래처럼 아름다웠다. 고목은 흉물스러운 채로 있어야 했는데, 어쩐지 여자만큼이나 쓸쓸해 보였다. 






그걸 보고 있는 여자의 방안은 지극히 평범했다. 동네는 평범했고 아름답지 않았다. 빌라들 너머로 보이는 높은 산이라곤 남산. 그런 데에 어떤 신비로운 사건이 있을 리 없고, 사실 그런 것을 기대한 적도 없다. 당장 월세를 걱정해야 했고, 남자는 나간 지 이틀이 되어도 소식이 없다. 

휴대폰은 꺼져 있다. 무엇을 알아서 하라는 것일까? 무엇을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일까? 무엇을 알아서 하고 싶은 것일까? 무엇을…. 






어째서 자신이 홀로 남아 비난을 들어야 하는지 감당하기 어렵고, 화가 났다. 

그러나 위축된 마음으론 그마저 쉽사리 드러내지 못했다. 남자는 연락이 닿지 않고, 이 순간 오로지 혼자였다는 사실을 평생 잊지는 못할 것이다. 그 마음 그대로 그를 대하겠지. 그와 계속 만나는 일이라도 있다면.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무것도. 


지구 틈으로 정말 많은 것이 사라지기라도 한 것 같다. 적어도 하나는 확실하다. 여자의 마음 한 구석에 설명할 수 없을 구멍이 생겼다. 그것이 기묘하게 들어찬 눈동자에 자신을 겨눈 누군가의 총구가 보이는 것 같다가도, 어느덧 자신에게 칼을 겨눈 사내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사내는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했는데, 도대체 칼을 내려놓으라는 말은 들어먹질 않았다. 꿈이었다. 






얼굴이 없는, 어쩌면 얼굴이 빠르게 수없이 바뀌면서 동시에 여러 얼굴로 있는 것 같은, 어떤 얼굴이 있었다. 그 얼굴이 잘 떠오르질 않았다. 붉은 색이었던 같다. 그래, 붉은 색만 기억났다. 

어쩌면 그건 파란색이어도 되고, 하얀 색이어도 되고, 검은 색이어도 상관없었다. 아무도 알아볼 수 없었고, 그것을 목격한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건 그냥 꿈속에 있었고, 그저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약간의 침묵이 감돌 때마다, 여자 역시 묵묵히 그 침묵을 받아냈다. 

“나이도 어린 게, 어쩜.”

그 말의 어감은 애매했다. 힐난하는 것인지 안타깝다는 것인지. 지나며 우연히 들린 말들이란 늘 그랬다. 다시 되돌아가서 따지듯이 되짚기도 애매했다. 혹시나 다른 이를 향한 것이었거나, 정말로 자신을 향한 것이었어도 전후맥락을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며 그냥, 꾹 참는 쪽을 택했다.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하지 못하고 어쩌면 숭녀(숭한 여자)가 된 것도 같았다.

당당하라는 권유에 그래보고도 싶었지만, 다락방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다니엘처럼 사는 것이란 쉽지 않았다. 여자는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도움을 청하러 간 곳에서 몇 번 기도를 하고 성경 공부를 했을 뿐이다. 






“타지에 산다는 건 인내가 필요하죠. 의지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닌 듯해요. 혼자서 굴욕적인 일을 담담히 견뎌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고요.”


길거리의 풍경을 을씨년스러웠고, 맞지 않은 규율을 지키며, 허허로운 마음으로 그럭저럭 지냈다. 가슴이 답답할 때면 언덕으로 전속력으로 뛰어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헉헉대다 보면 막힌 가슴이 뚫리는 것 같았다. 어쨌든 살고 있었고, 살아가야 했다. 예전처럼, 아니,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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