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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Aug 20. 2023

우리 동네(1)

그림 소설

[목차: 우리 동네]

1

2

3


[소개글]
- 삼행시, 놀이글 등을 콜라주 재료로 활용하여 그림 소설로 빌드업했습니다. 
- 콜라주 재로로는 1)녹용을 잘 못 먹어 돌았다는 어느 남자의 이야기 / 2)녹지에 쳐들어와 부적을 쓰더니 / 3)느그 엄마 누고 / 4)빛나는 은갈치와 양지은 의존증 / 5)짜파게티와 뻥튀기 등입니다.
- 이 중에 일부는 브런치스토리에서 공개했습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작중 인물 면지은은 가난한 동네에 산다. 개발 소문이 돌기는 하였지만, 그와는 별개로, 우범 지대란 인식이 있을 만큼 안 좋은 이미지의 동네였다. 충격적인 뉴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도 있었다지만, 산 하나를 두고, 거짓말처럼, 마술적인 느낌으로 그런 사건은 없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소문은 많았지만, 정작 끔찍한 사건을 목격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보다는 작은 동네라면 있을 만한 속 시끄러운 시선과 장소가 있는 조금은 평범하게 가난한 동네였다. 아팠던 사람들도 그럭저럭 함께 살았던.






♬ 우리 동네


“신문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사건이 있던 동네로 유명했죠.”


우리 동네는 안전하거나 쾌적하거나 부유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외지고, 위험한 사건으로 인식되기도 했었죠. 그린벨트로 묶인 지역도 있어서 농토도 그리 값이 나갈 것으로 여기지 않았는데, 끝까지 소유했던 땅을 처분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꽤 큰 이익을 취할 수 있었죠. 벼락부자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농부들도 있기는 했어요. 





→ 나, 면지은


그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살지 궁금하기는 해요. 멋 모르고 일찍 팔았다면 땅을 쳤겠죠. 그렇다고 땅이 아파할 리 없지만요. 땅땅거리고 살 사람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일화들은 어쩌면 지금도 그리 흔하지는 않지요. 그다지 살고 싶어하지 않는 동네에서 번듯하게 떠날 수 있다는 게 마을 사람들에겐 그리 나쁘지는 않았으니, 그런 뜻밖의 횡재를 두고 축복이라고 했어요. 저 역시 수혜자이기도 했죠.






그곳에서 보던 것들은 견디기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으니까요. 여자로선 좀 무서웠다고 해야겠죠. 일진들이 많았던 동네라서 불량 청소년들에 대한 소문은 늘 돌았죠. 정작 저는 그리 자주 맞닥뜨리지 않았고, 엄청난 위협을 겪은 적은 없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분명 조심해야 할 만큼 무서워보이는 학생들이 몰려 있으면 다른 곳으로 돌아서 집에 가곤 했었죠. 


심심하다. 재미 있는 일 없나?






그런 곳이다 보니 흉흉한 소문도 돌고, 실제로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난 강력 사건으로 한동안 시끄럽기도 했어요. 살인 사건에 관한 오래 전 소문과는 차원이 다른 끔찍한 사건이었죠. 아, 자세히는 말하기 싫어요. 






본드를 분 청소년들이 어린 초등학생을 토끼로 착각하고 죽인 사건이었는데, 그 과정도 그렇고,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 싶은 마술적인 느낌마저 들었답니다. 아무 말이 없이 낮게 포복한 듯한 야산 너머의 우범 지대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데, 엄마는 해가 지기 전에는 집에 돌아오라고 하거나, 최소한 야산 근처에는 가지 말라고 했었죠. 저도 그럴 용기는 없었어요. 겁이 많아서 오락실도 안 가는 성격이었으니까요. 


“경계선을 넘으면 제가 알지 못하는 위험한 비밀이 드러날 것 같았죠. 저는 그곳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어요.”






동네는 깨끗한 편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오래 산 사람들이 많은 평범한 동네답게 정겨운 면은 있었죠. 그런데 그게 또 저 같은 사람에게는 불편한 면이 있었어요. 교회나 성당 다니다 보면 아시죠? 괜히 서로 불필요하게 많이 알아서, 동네를 나가더라도 인사를 해야 하고, 무엇보다 집안의 비밀이라는 게 없잖아요. 






교회 다닌다고 뭐 대단할 거 없잖아요. 누구네 딸애는 어느 대학을 갔네, 무슨 문제가 생겨서 아이가 생겼네 어쩌네 하면서요. 서로 자식 자랑 배틀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다 하다 할 자랑이 없는지 ‘기도빨’ 자랑까지 하잖아요. 네, 저는 솔직히 그냥 끌려서 몇 번 교회나 성당을 가다 보니, 신앙이 있지는 않았거든요. 엄마 따라 교회에 몇 번 가고, 친구 따라 성당에 몇 번 간 적이 있을 뿐이죠. 






차라리 불자들이 제일 나은 게 아닐까 싶었죠. 절은 멀리 있으니까, 어차피 도 닦으러 들어가신 분이 뭔 말을 하는지 알 수 없고, 불자들끼리 각자 동네에 분산되어 있을 테니, 종교와 연결짓기가 어려운 면도 있을 거예요. 거기도 똑같겠죠 뭐. 


“계속 노동을 하는 건 몸을 고되게 해서 말을 할 여력을 없애기 위함이지요. 주지스님 자리에 욕심이 있고 그런 건 아닙지요.”






어찌 보면 정돈되지 않고, 차라리 알아듣기 어려운 황당무개한 말이 가장 신선하고 제 삶에 균열을 주었던 것 같아요. 유쾌한 경험은 아니더라도요.


“이 동네에는 마가 끼어서 꽃들조차 오래 못 살지. 죽어서라도 여기를 뜨려고 하지.”






사실 이 동네엔 어떤 비극이랄까요. 근원을 모를 우울함이랄까요. 슬픔이랄까요. 그런 게 색이 바래고 낡은 건물만큼이나 오래도록 동네에 내려앉아 있었다고 해야 할 거예요. 낙후된 동네, 개발의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던 이런 누추한 곳에서 무슨 특별한 희망이랄 게 있었겠어요? 

눌러 앉아 살던 사람들은 특별한 전통도 없던 이 곳에 대단한 애착을 보이던 것도 아니죠. 그저 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보니 사는 곳이었어요. 





→ 나, 면지은


전 솔직히 이 동네를 언젠가 떠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죠. 그건 악착 같은 열망이라기보다는 또래라면 당연하게 여겼던 무언의 신앙 같은 것이었달까요. 이곳은 ‘구리고’ 딱히 희망도 없고, 우리는 이곳을 떠날 자유가 있다는 거였죠. 

양지은이라고 예쁘고 노래 잘 부르는 가수 아시죠? 그 양반도 그 풍경 좋다는 제주에 안 살잖아요. 그곳에서 뭘 하려고 해도 서울만 하겠어요? 우리나라는 아직 서울이죠. 서울로 와야 뭐라도 하죠.






그리고 그러한 무언의 신앙이 조금 더 강렬한 열망으로 바뀌는 계기는 있었죠. 본능적으로 이곳에서 살면 동네의 불길한 슬픔에 오염될 것이란 답답증을 앓고 있었는데, 우리 중학교 앞에 있던 미용실 아줌마가 눈에 띄더군요. 그 미용실 앞에서 담 하나를 두고 저희 반 이었거든요. 창문으로 아줌마를 볼 때도 있었죠. 그 아줌마, 비만 오면 문밖으로 나와서는 소리를 지르듯이 뭔가를 구시렁대곤 했어요. 수업할 때는 창문을 닫곤 했는데, 자율학습 때는 간혹 그냥 창문을 열어둘 때가 있었죠. 그러면 그 소리가 넘실대며 교실로 불길하게 스미곤 했죠. 






“악령들이 몰려온 거야! 그래서 이 동네에 먹구름이 낀 거야. 비가 갑자기 내리는 것 좀 봐. 다 죽으라는 거지.”


라고 비가 올 때 소리를 치는데, 그게 참, 비가 올 때마다 엇비슷한 소리를 하니, 뭔가 근거 없는 신뢰감마저 생기더라니까요. 일관성이란 그랬나 봐요. 점점 더 오싹했었죠. 설마 그럴까 싶으면서도 뭔가 공포영화 소재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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