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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Aug 21. 2023

우리 동네(3)

그림 소설

[목차: 우리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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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개글]
- 삼행시, 놀이글 등을 콜라주 재료로 활용하여 그림 소설로 빌드업했습니다. 
- 콜라주 재로로는 1)녹용을 잘 못 먹어 돌았다는 어느 남자의 이야기 / 2)녹지에 쳐들어와 부적을 쓰더니 / 3)느그 엄마 누고 / 4)빛나는 은갈치와 양지은 의존증 / 5)짜파게티와 뻥튀기 등입니다.
- 이 중에 일부는 브런치스토리에서 공개했습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를 싫어했던 작중 인물 면지은. 매일 평탄하지 못한 상황이 너무 싫다. 남들처럼 산다는 것은 사치였다. 조금만 삐긋하면 모든 게 허물어질 상황 같았다. 그런데 모든 건 뜻하지 않게 전환된다. 삶이란 그랬다. 바로 다음 날도 예측할 수 없었다. 드라마에서 예측되는 완만한 흐름과는 달랐다. 그리고 지독히 미웠던 순간 덕분에 지금을 살기도 한다. 






선장을 할 때 바다에서 엄마를 봤다는 것에 이르면 <인어공주>를 본 걸 헷갈린 건가 그냥 저런 거짓말을 주정으로 즐기는 건가 싶었어요. 하늘에서 은갈치가 가로지르는데, 그 눈부심에 눈을 뜨고 보니, 바다에서 엄마가 접영으로 제주도까지 헤엄쳐서 갔다는 거였어요. 잠깐 배에 들러서 커피 한 잔을 하고요. 

그걸 농담으로 하는 거면, 실없다 여기고 웃고 말 텐데, 정말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죠. 


“선원 아저씨들도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더라고요.”






“이것들이 날 병원에 가두려고 해! 용서 못해.”


결국에 안 가겠다는 고집 피우는 걸, 신고까지 해가면서 의사 앞에 앉힌 적이 있어요.

본인의 완강한 거부 의사 때문에 다시 집에 돌아왔지만요. 아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죠.






엄마는 잠시 집을 나가 있었고, 저는 아주 지쳐 있었죠. 그날 제 처지가 너무 안타깝고, 서글펐죠. 공부로 대학 가겠다 뭐 이런 생각보다는 이런 지겨운 상황이 없었으면 좋겠다 싶은 바람이 있었거든요.

그날 잠이 잘 안 와서 수면제를 몇 알 먹었는데, 몇 알을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한두 알 먹었더니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몇 알 더 집어 먹었죠. 






실수로 잠결에 병을 쳤는지, 병 뚜껑이 잘 안 닫겨 있었는지, 엄마가 밤 늦게 집에 들어와서 저를 살피는데, 수면제가 방 바닥에 쏟아져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저를 깨워도 제가 일어나지 않자, 응급실로 바로 데려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죠. 아우, 그건 좀 창피하기도 했지만, 뭔가 지쳐 있으니, 주변의 시선쯤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이기도 했어요.


“김 선장네 아시죠? 그 딸래미가 수면제를 먹고 죽으려고 했었대요. 다행히 살았대요.”






응급실에서 제가 깨어났을 때 엄마가 있었죠. 둘이 안고 울던 순간이 기억에 남네요. 뒤늦게 왔다는 아빠는 결국 취기를 이기지 못해서 거기서 자기가 미안하다는 말만 하며, 못난 아빠를 용서하라며, 남들 부끄럽게 울었지요. 


“이제 다시는 집에서 그렇게 술 많이 안 마시마.”






정말로 그때부턴 집에서 마시는 날이 현저히 줄기는 했어요. 대신 바깥에서 마셨지요. 듣자 하니, 동네나 옆 동네로 가서는 안주도 거의 안 시키고 술을 홀짝 홀짝 마시다 온다고 하더군요. 반기지 않는 손님이었죠. 가끔 술값 때문에 시비가 붙어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지만, 대개는 조용히 술만 마시고 오곤 했지요. 돈을 안 쓴다시피 하다 보니 편의점에서도 민폐를 끼치기도 했고요. 


“인생은 미완성, 왔다가 사라지는.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살아야 해. 그런데 아름답지가 않구나.”






알코올 중독이 너무 심해져서 팔다리에서 벌레가 기어다니는 환각을 보기도 하였지만, 절대로 병원에는 가지 않으려 했고, 신고를 하려 하면, 불같이 화를 냈어요. 엄마는 그 상황에 질려서 그냥 상황을 피하려고만 했죠. 그런 삶을 저라도 오래 견딜 순 없었을 거예요.


그날도 똑같았어요. 바다를 더는 나갈 수 없는 처지였는데, 복귀를 생각하기는커녕 그냥 술만 마셔댔어요. 누군가를 계속 욕하면서요. 그리고 그날 영영 돌아오지 못했죠. 길거리에서 어딘가에 걸려 넘어졌는데 하필 머리부터 부딪히는 바람에 그날 응급실에서 돌아가시고 말았죠.






모든 끔찍한 결말에 대한 가능성이 갑자기 싱겁게 사라져버렸어요. 그리고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죠. 그래도 가족이었다는 식으로요. 좀 안타깝고 황망한 기분이 실제로도 들었죠. 너무 미웠는데 말이에요. 그것 참, 이상하더라고요. 


어찌 보면 다행이었을지도 몰라요. 일찍 돌아가셨기에 그나마 이렇게 아련한 부분도 남아있는 게 아닐까 싶었죠.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가족 모두가 상처를 입는 일은 없었으니까요. 아버지는 그냥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때는요. 

그래도 안타까운 부분도 있었어요. 아버지와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을 나이가 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말이에요.






장례를 마치고 그 동네가 너무 싫어져서 전학을 하려고 했죠. 엄마도 이사를 준비했는데, 그러다 아빠가 남긴 유산을 더 알게 된 거죠. 

입버릇처럼 술을 마시면서, 자기가 양주를 먹지 않고 소주를 마시면서 그 동네 땅을 조금씩 사들이고 있다는 허세를 부렸는데 정말이긴 했어요. 아빠가 안면이 있다 보니, 농부 아저씨들이 다른 개발업자에겐 안 팔아도 아빠에겐 팔았으니까요. 개발 소문이 돌기 전부터 아버지는 그곳 땅을 힘 닿는 대로 사고 있었더라고요. 


“예전에 이 동네 땅을 사는 것 같아서, 말리면서 크게 다툰 적이 있어. 그러고 그만둔 줄 알았는데.”






술 주정인 줄 알았는데 말이죠. 은갈치와 인어공주 이야기처럼요.


“그 땅에선 밤마다 사람과 고양이 귀신이 자라나거든. 그걸 들키면 사람들이 모조리 그곳을 파헤치겠지. 그러면 그것들은 갈 곳이 없어져. 그래서 내가 그곳을 사기로 했지. (딸꾹)
그래서 그때부터 양주 대신 소주를 마신단다. 거참, 술을 끊지는 못하겠고. 이렇게 마시다가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 너에게만 말하는 거다.”






술을 마시고 가끔은 갑자기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서, 자신이 해왔던 일을 알리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그저 술주정으로만 여겼는데, 또 무서운 동네의 비극이 연상되는 것 같기도 하고, 환각을 보는 상태를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까 싶기도 할 때였어요.

답답할 뿐이었죠. 


그때 내가 먼저 돌 것 같았어. 네게도 미안했고.





→ 나, 면지은


이 나이에 이르니 가끔 생각나요. 그때도 선장집 딸에서 횡재집 딸이 되었다며 선생님들이 놀리는 건지, 부러워하는 건지 모를 어색한 말을 하기도 했죠.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었지만요. 돌아가신 아빠가 미웠지만, 그런 식으로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전학을 가지는 않았죠. 그 땅에 아파트가 올라가는 것도 지켜보았고요. 가끔은 그 공간마다 이름 모를 영혼들이 입주하는 것인가 싶기도 했지요. 고양이들이 입양되듯이요. 






아버지요? 아직 미워하냐고요? 글쎄요. 이제는 조금 멀어진 과거로 느낀다고 해야겠죠. 동네를 떠나면서 더더욱 그렇게 되어버렸죠. 눈 앞에 보이는 게 없으면 그만큼 자극도 덜 받으니까요.

아버지는, 그러니까 아빠는 분명 그곳의 지긋지긋한 순간들을 선사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사람이기도 하죠. 


제가 어떤 사건들에 조금은, 잘 공감하지 못하게 된 것이 그때 단련된 경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요. 또 어차피 인간은 자기 생겨먹은 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하면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에 그 순간을 잘 버텨낸 것일 수도 있겠죠. 아빠를 탓할 생각은 없어요. 그렇다고 아빠가 잘했다는 것도 아니죠. 

만일 지금까지 사셨다면, 일단 그때 술부터 끊게 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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