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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Aug 27. 2023

갈매기의 꾼

산문

나는 체념하면 자주 “대충 살다가 때 되면 돼지여야겠당.”이라고 말했다. 돼지에게는 실례가 되는 말을 자주 했다. 미안하다.

돼지는 진창 속에서도 힘겹게 기어이 살아낸다. 돼지는 깨끗한 동물이지만 가장 더럽다는 오명을 지니고도 꿀꿀 살아낸다. 꿀을 매일 뱉어내지만 그 삶을 베어낸다. 가장 노릇하게 구워져 살은 인간에게 바쳐지지만, 돼지는 마땅히 빨리 뒈지어야 할 존재였다. 돼지는 돼지였다. 돼지여야 했다.

그러나 리처드 바크는 “돼지의 횡격막(橫膈膜)과 간(肝) 사이에 있는 근육질의 힘살”에 주목한다. 갈매기살이다.

그는 일찍이 돼지의 숭고함을 간파했던 것일까. ‘돼지야말로 가장 비루하여 숭고함을 증명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그는 진정 알았던 것일까. 그 돼지의 한 구석을 겨우살이 하듯 붙어낸 살이라면 그 비루함을 더 말할 것 없다. 갈매기살이란 그렇다.

이 시대에 꿈을 꾸는 것은 사치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꽉 짜인 체제는 원하지 않는 삶으로 우리를 떠민다. 과다한 노동에 자기 계발할 시간 없는 이들은 겨우 남는 밤 시간에 술로 세상과 화해한다. 하룻밤 동안 화해하고 우리는 다시 전장으로 들어간다. 일요일마다 회개하는 기독교인들처럼 엿새의 죄와 하루의 참회는 우리의 삶이다. 참회로 죄를 씻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나는 나를 모르는 척 끝내 참외 하나를 물로 씻어낸다. 물을 틀었으니 수도세를 내야 한다. 수도 서울에 살기 위해서는 충분히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돈을 웬만큼 벌지 않으면 서울토박이도 서울을 나가야 했다. 집은 그들을 허락하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공간은 수치로 매겨지고 수많은 공간에 그들의 좁은 자리 하나 마련하기 만만치 않았다. 사람들은 서울을 버티기 위해 돈을 꾸고 서울 주변을 맴돈다.

이 시대에 돈을 꾸는 것은 의무라는 말이 있다. 도처에 깔린 소비의 유혹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일을 하여 돈을 꾼다. 돈은 돌아야 했다. 돌기 위해 쉴 새 없이 시대도 돌아야 했다. 지구도 도는데 시대가 돌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이 그럴 듯했다. 함께 돌아야 모두가 자신이 도는지 모르게 된다는 궤변은 꽤 현혹할 만한 것이었다. 돈을 번다는 것은 (곧 쓰기 위한, 혹은 쓰여야만 하고,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결국 돈을 꾸는 것에 다름없다. 사는 것(Buying)이 사는 것(Living)인 시대에는 (돈) 버는 것은 (꿈) 꾸는 것이었다.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빌리고 그 돈을 갚아간다.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이 이제는 당연히 긴밀히 관련 있게 되었다.

예컨대 갈매기살은 바다를 나는 갈매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아무 관련이 없어도 언어적 유사성 탓에 그것이 어쩐지 인연이 있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갈매기살은 갈매기의 날개 같기도 했다. 돼지는 돼지의 횡격막(橫膈膜)과 간(肝) 사이에 근육질의 날개를 숨기고 살 것만 같았다. 그것을 펼칠 수 없었다. 돼지는 주어지는 먹이를 쉴 틈 없이 먹고 꿀, 꿀 단 것을 모두 토해내고는 천대받으며 수도에서 쫓겨나 지방에 붙어야 했다. 그러나 그 텃세도 이기지 못해 날개는 지방을 뚫지 못했다.

갈매기는 날개를 펴지 못하고 돼지의 비좁은 속을 꾸어야 했다. 그 공간에 들어차 날개를 펼 기회를 노렸다. 갈매기는 꿈을 꾸기 위해 돈을 꾸었다. 돼지의 속이라도 돈을 내야 했다. 그것은 돼지가 아닌 인간의 몫이었다. 인간은 돼지를 죽이고 갈매기를 꺼내줄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갈매기에게 앞치마를 쓰게 하고 돈을 꾸었으니 돈을 갚지 못하면 돈(돼지)을 구우라고 말할 것이다. 갈매기는 고기 집에서 일했다. 자신에게 속을 내어준 돈(돼지)을 구웠다.

갈매기는 너무 미안해서 잠시 눈물을 훔쳤다. 자꾸 생각했다. 돼지가 끝내 죽임을 당한 날, 도살장에서 인간은 갈매기를 꺼내기 위해 돼지의 살을 베었다. 피가 다리를 타고 흘러 족발을 적셨다. 갈매기는 그때 돼지를 처음 보았다. 돼지는 비명을 지르며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갈매기를 알아보지 못했다. 갈매기는 고개를 돌렸다. 자기를 품어준 녀석의 처음이자 마지막 표정이었다. 돼지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었다. 헛발질을 하다가 지쳤는지 풀썩 주저앉았다. 끝까지 땅을 딛고 섰던 자리에는 발갛게 발자국(♥♥)이 남았다.

갈매기는 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고기 타는 바람에 연기가 눈을 맵게 했다. 갈매기는 손님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때 문득, 집에 가다 마트에 들러 그날 번 돈을 몽땅 털어 참외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도 씩씩하게 살아가려면 모조리 짠 눈물로 참외를 소독하듯 오래 씻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수도세마저 아껴 빚을 빨리 갚겠다고 생각했다. 을 향해 다시 날아갈 수 있다고 꿈꾸었다. 멀리 보기 위해 높이 나는 연습도 종종 했다.

 

나는 오늘 친구와 소주 각 1병과 돼지족발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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