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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Sep 05. 2023

너의 초상화

산문


깨어나 보니, 공룡은 아직도 저기에 있었다. 
- 아우구스토 몬테로소의 <공룡>

 

 

 지금도 미아가 셀 수 없이 생겨난다. 방금까지 사랑했고 의지했던 사람의 행방을 알지 못한 채 망연히 서서 울게 될지도 모른다, 이 순간부터-

 나의 아이가 그 미아들 중 하나로 규정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내 아이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맬 것이다. 그 녀석이 갈 만한 곳을 샅샅이 뒤질 것이고, 경찰에 신고할 것이고, 정신적 충격을 받은 아내를 위로하느라 힘들 것이다. 며칠째 잠자지 못할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아이의 깜찍한 등장을 기다리다가, 아이의 등장이 느닷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세월이 흘러가고 말 것이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잊고 싶지 않은 그를 마음속에서 밀어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꿈은 그러한 과정 속에 도사리는 지뢰 같이, 터져오는 아픈 감정을 한꺼번에 드러내 줄 것이고, 악몽이 반복되고 거의 동시적인 소망과 절망이 스테레오 음향처럼 나의 감각을 두드려댈 것이다.

 문득 깨어날 때마다 아이는 ‘아직도’ 저기에 있을 것이다. 광고문구 같은 아우구스토 몬테로소의 <공룡>이 머리에 꽉 차 있을 것이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본 바스키아의 ‘공룡’(*)은 아이가 즐겨 그리던 공룡을 닮았다 느낄 것이고, 그 장난 같은 그림이 그림을 볼 줄 모르는 나를 비웃듯 자꾸만 아른거릴 것이다, 꿈에서.

 사람을 당혹스럽게 했던 이 두 가지의 문제작들은 절묘하게 어울려, 어쩐지 아우구스토 몬테로소의 <공룡>과 바스키아의 ‘공룡’은 하나의 대상에서 나왔을 것만 같다. 둘은 아무래도, 하나였을 것이다. 단지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하나의 얘기를 다른 방법으로 했을 뿐이다.

 하나님.

 

 그러나시간이 흐르면

 나의 얼굴을 잊을너는-





진짜 제목이 ‘공룡’인지는 모르겠고, 그 동물이 공룡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그 그림 자체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이 아닐지도 모른다. 굳이 정확한 정보를 찾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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