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희정 & 천재론
[목차: 천재론] 57편 중 11번 원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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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희정: 함께 인정 욕구를 품은 동료들
이런 무리한 시도도 결국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 때문일까요? 사실 천재들도 생활인이고 사회에서 성공하길 갈망하였죠. 혼자 도인처럼 우주의 본질을 알아내겠다고 예술을 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죠.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개는 인정욕구가 있고 누군가와 소통하려는 의지도 있죠. 때로는 그렇게 돈을 벌려고 예술을 하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서 남들에게 인정받고 돈도 버는 것이고요. 누구나 자기실현의 욕구는 있고, 그걸 폄하할 순 없죠.
그런 이들 중에서 일부가 운이 안 닿아 보편적인 주류로 향하였지만 실패한 채로 그 영역에서 벗어난 위치에 서야 했다면, 그런데 유사한 언더그라운드 동지들마저 없어 홀로 버텨야 했다면, 심적으로 고달팠겠죠. 혹은 체념했거나요. 진입을 거부당한 존재로서 자기들끼리 텃밭을 가꿀 환경도 무르익지 못해서 선구자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미지의 공간에 남았겠죠. 그 공간에 고립된 채 우연히 얻어진 개성이라는 점에서 개인적 재앙이면서도 천부적인 재능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러한 운명이 하늘에서 내려진 것이라면요. 그렇게 그들은 비범한 존재라기보다는 애정결핍증 환자로 남은 것이 아닐까 해요. 애정을 갈구하지 않았다면 결핍도 없었을 텐데, 그들은 분명 자신을 어찌하지 못하고 자기의 방식대로 인정받고자 한 것이니까요.
당시의 기준으로 실력이 없었거나 뭔가 애매하게 외따로 떨어진 그만의 실력이었을 거예요. 그것이 온전히 인정받지 못할 것을 알고 취미로 머물렀다면 좋을 텐데, 또 그런 상태로 세상의 보편 주류에 편입되고자 하는 호기를 부린 것이니까요. 위대하고 오만한 모험가라기보다는, 내성적이고 그곳 아니면 아무 곳에도 뿌리내릴 수 없는 기민한 열등생일 수도 있겠죠. 그런 상태로도 자신을 포기할 수 없는 우리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렇게 그는 자기의 문제에 집중했던 것은 아닐까요?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아서, 아무도 함부로 사랑할 수 없어서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여 자신을 탓하고, 자신밖에 사랑할 존재가 없어서 그것을 끝내 긍정하는 이중적인 상황으로 휘몰아치는 처연한 바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저주겠죠. 자신이 모험해서 얻은 길이라면 저주보다는 다른 느낌의 수사가 더 어울리겠지만, 그들에게 달린 훈장은 사실 자부심에 넘치는 천재의 징표라기보다는 고통, 실력 미달의 징표였을지도 몰라요. 우연한 자기만의 개성, 그래서 누군가 의미를 부여해주기 전에는 꽃이 되지 못하고 스스로도 대단한 것으로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인기가 없다는 것, 진지한 평가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 보편적으로 향유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끝내는 자신이 옳다는 확신마저 흔들렸겠죠. 속으로 자신은 대단하다고 강변하다가도 어느 날엔가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체념하듯 읊조렸겠죠. 고갱처럼 어쩌면 자신이 천재가 아닐지 모른다는 자책을 하면서 지루한 시간의 방 안에 고립된 것이겠죠.
그 재능을 옆에서 본다면 안쓰러울 수도 있어요. 아예 못 알아볼 수도 있지만, 대개는 꽤 통할 만한데 안 풀리는 경우도 허다하니까요. 유튜브나 사운드클라우드, 밴드캠프로 듣다 보면 세상엔 정말 숨은 고수가 많다는 생각이 들죠. 그들이 나와서 지금 인기 있는 아티스트를 대신해서 인기를 얻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요. 또 지금 뜨는 뮤지션은 '얼마나 거대한 모험과 실패의 토양에서 간신히 자라난' 빙산의 작은 일각인가 하는 생각도 들죠. 제가 우연히 흘려버린 수많은 무명 아티스트들의 곡 중에도 대단하게 들리던 곡도 분명 있었어요.
그들에겐 그걸 알아봐주고 지지해줄 팬들, 더 깊이 서로 공유하며 함께 기나긴 여정을 소화해줄 동료들이 필요해요. 많지는 않더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게 중요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