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동호 & 천재론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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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동호: 전 패러다임의 천재가 좋아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것도 저는 괜찮은 듯해요. 그렇게 따지니 다른 방식으로 천재를 보게 되네요.
일단 저는 바깥에 있는 존재들이 하찮아 보이든 위험해 보이든 세상에 타격을 주는 천재들인 것을 생각했는데, 먼저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듯이, 비범해 보이는 천재라고 시류에 편승하는 존재들은 아니거든요. 사실 그들이야말로 빈도수가 가장 많다고 했죠. 그럼에도 저는 하찮아 보이는 천재의 고군분투, 위험해 보이는 천재의 과감함을 더 의식적으로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보았잖아요.
그렇게 보면 자신의 인생을 걸고 위험부담을 짊어진 천재들이 많은 영역은 패러다임의 천재인 것 같네요. 물론 테크닉의 지점에서도 고도의 혁신이 이루어진다면 그 역시 패러다임의 천재로 전환되겠지만, 더 큰 영역에서 전면적으로 가치 체계에 도전하는 경우가 강할수록 패러다임의 천재 영역에 속하겠어요.
사실 테크니컬 천재는 비범해 보이잖아요. 이미 어느 정도 확립된 테크닉을 연마해서 그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니, 우리로서도 평가하기 위한 콩쿠르도 많은 편이죠. 그만큼 나름대로는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하는 기준이 성립된 거죠. 그것을 깨는 주법, 예를 들어 신중현의 기타 주법처럼 자신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경우도 있지만, 테크닉으로만 한정할 경우 패러다임의 혁신 관점에선 그 범위가 좁아지긴 할 거예요.
도전하는 야심 찬 아티스트라면 보편성의 천재든 테크니컬 천재든 당대의 가치 체계에 도전하는 패러다임의 천재로 전환되는 것을 노려보지 않을까요? 결코 쉽지 않고 너무 나가버리면 하찮아 보여서 마음고생 하겠지만요. 사실 범위를 너무 넓게 잡아도 실패할 확률이 높죠.
전면적으로 그 분야의 창작 개념을 바꾸겠다는 식은 좀 당돌하고 때로는 허황되죠. 간혹 우연음악의 존 케이지라든지, 프리 재즈의 오넷 콜맨이라든지, 오브제의 뒤샹이라든지, 힙합의 창작 기법처럼 기존의 가치 체계를 전면적으로 뒤흔드는 패러다임의 혁신이 있기도 하지만, 정말 쉽지 않죠. 하찮아 보이는 천재들 중에서도 그 정도로 전면적으로 세상과 맞대결한 경우는 많았을까요? 렘브란트는 <야경>으로 명성이 추락하기는 했지만, 단순히 비틂 정도라고 해야 할까요? 집단초상화의 사람들 표정을 다양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정도였죠. 고흐는 현상을 묘사하면서 거기에 주관적인 감정이 스민 묘사를 해서 자기를 표현하고 싶었던 거고요. 포우 정도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열어젖힌 거겠네요. 아, 멜빌이 있군요. 미국의 상징주의 자체를 열었죠. 그렇게 치면 고흐도 후기 인상주의를 의식적으로 열었다고 해야 할까요? 애매하긴 하네요. 어쨌든 방법론을 지니고 전면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경우보다는 테크닉을 붙들고 테크닉의 관점에서 본인이 만족하는 못한 것을 개선하려다가 느닷없이 패러다임을 전환해버린 사례도 많은 듯하네요.
다만 저는 보편성의 천재는 그냥 다른 유형이 있다는 정도에 의의를 두지, 그 존재들이 자기 인생을 걸고 모험을 하며 세상과 대결하는 천재들과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기존 관점대로 보면 인기에 영합하는 존재들일 수도 있어요. 그들의 재능을 인정하지만, 천재라고 상찬까지 해야 하는가 망설이죠. 테크니컬 천재들도 아직은 명인, 장인으로서 훌륭한 예술가이지만, 결국 자기만의 개성과 업적을 획득하려면 기존의 성과에 균열을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편이에요. 어쩌면 제가 그런 식으로 예술가를 동경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세상에 타협하지 않고, 남들이 문제 삼지 않는 가치에도 질문을 던지는 존재. 그게 진짜 천재라고 생각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