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동호 & 천재론2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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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 인물의 관점
- 동호(서양 회화 전공): 천재는 개인의 역량으로 찬사의 대상. 사회를 뚫고 나온다. 낭중지추.
- 민규(사회학 전공): 천재는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사회는 필요한 때에 필요한 지점에서 천재를 호출한다. 마침 바로 거기 있는 자를 천재로 인정해주는 것뿐이다.
- 희정(재즈 피아노 전공): 사회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크긴 하지만, 천재의 개인적 역량도 무시하기 어렵다.
[소개글]
- 천재를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을 통하여 다양하게 천재를 바라본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으로 천재의 특성을 포착하려 했지만, 그건 엘리트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오히려 천재를 수용하는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시민의 역량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점으로 흘러간다. 창의성과 다양성의 역량을 강화할수록 천재는 다양하게 포착된다.
- 이 글은 세 명의 입장을 통해 각각의 주제에 대해 인터뷰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특정한 주장을 하기보다는 특정 주제에 대해 있을 법한 주장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려 하였다.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1.0] 동호: 결국 천재는 스스로 천재다
아무리 진짜 천재라 하더라도 홀로 태어날 수는 없다는 것에 동의해요. 그건 당연하죠. 천재도 사회인이니까요. 그러니 사회가 없다면 천재가 태어날 수는 없겠죠. 더구나 사회의 가치에 반기를 들려면 기존 사회를 충실히 알아야 할 거예요. 그런 점에서 사회에 숨겨진 모순이나 권태가 없다면 천재도 없을 거예요. 숨겨지지 않았다면 모두가 어떤 능력의 소유자가 필요한지 알아챌 것이고, 모순이나 권태로운 점이 없다면 극복할 문제가 없는 것이겠죠.
뭔가 사회의 순환 구조에 동맥경화 위험이 숨겨진 채로 도사려야 할 거라는 의미에요. 얼마 안 있어 사고가 터지든 한참 후에야 터지든 그것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존재가 필요할 즈음, 천재가 등장하죠.
그들은 시대의 거대한 파도를 맞아서 그 흐름을 타고 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파도를 뚫고는 역류하듯 서핑하며 파도 너머에 가려진 태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그도 아니면 파도의 결을 따라 빗겨 서핑을 타면서 빠져버린 사람들에 손을 내밀죠. 자신도 당장 빠져죽을지 모를 처지여서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마치 탄광에 들어갈 때 공기가 탁해지는 것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카나리아처럼요. 시인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유명한 문학적 비유이기도 하죠. 천재도 자기가 의식했든 본능적으로 감지했든 그런 위험 징후를 남들보다 먼저 발견해내는 사람이에요.
먼 미래에는 AI가 사회의 방대한 빅데이터를 통해 위험 징후를 사람보다 더 정확하고 이른 시점에 진단할 수 있겠지만요. 실제로 인체의 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에도 AI 기술이 적용될 것이라고 하잖아요. 서양의학에서는 표면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되기 전에는 모르는데, 한의학에서는 맥만 짚고도 알 수 있다는 그것, 이제 AI 기술로 정복될 날이 머지않았죠.
그래도 천재는 그러한 일을 아날로그 방식인 인간의 역할로 한정하는 것이겠죠. 어쩌면 천재의 모든 일이 AI로 대체되는 날이 오기 전까지, 어쩌면 그 AI에 맞서는 인간의 자원이 천재가 될 날도 올지 모르겠어요. 잠시 몽상까지 해보고 말았네요. (웃음)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도 인간은 사유할 수 있고 감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그 역할이 축소되더라도, 인간의 역할은 남아있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사는 거니까요. 우리가 살지 않으면 무의미한 것들도 우리가 사는 순간부터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와 관계하니까요.
물론 아무도 천재의 역할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더 정확한 AI가 있을 것을 몽상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지금도 천재에 대해서 우리 사회에 필요해졌다는 의미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취급하거나,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리죠.
지금 바로 카프카를 떠올렸네요. 그는 문학의 천재로 20세기 초에 세계 문학사에서 모더니즘이라는 사조의 중요한 작품을 발표했잖아요. 생전에 문학적 명성을 떨치지 못했으니 그 자신의 삶으로 보면 조금 아쉬울 수 있겠지만, 그나마 모든 원고를 불태워버리라던 그의 유언을 친구였던 막스 브로트가 들어주지 않은 것이 감사할 뿐이에요. 어쩌면 정말 자신의 원고가 하찮은 것으로 생각했나 봐요. 혹은 자신이 스러지듯 원고도 함께 사라져야 마땅하다고 ‘종교적으로’ 생각한 것일 수도 있어요. 출판하면 공동체에서 불이익을 받을 소재가 있었던 것일까요? 주기적으로 자신의 원고를 태웠다고도 하니까요. 그는 출판에 열의를 보이진 않았다고도 하는데, 유명해지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인지도 모르죠.
저같이 평범한 예술학도로선 이해하기 어렵죠.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게 솔직한 심정이니까요. 하기야 모를 일이죠. 사람은 다 개인 사정도 있고 때론 그렇게 적당히 불운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기도 하니까요. 카프카에게 어떤 속사정이 있을지 알 길은 없죠. 그저 한 사람의 인생을 충실히 따라가자니 그는 너무 조용히 살았어요. 그 내면에 허무함이 가득한 채로요.
그 과정에서 그는 우연히 자신의 한계상황 안에 갇히죠. 그건 시대 상황을 비유하는 것처럼 되었고, 그의 삶 자체가 온전하게 시대의 부조리를 감지하고 생생하게 만들어버렸죠. 그는 유대인으로 체코에 살았고, 독일어 영향권에 있었죠. 모든 것에 안식할 수 없었고, 점점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변해갈 세상을 감지했던 게 아닐까요?
<심판>과 <성>이 그런 소외를 그린 작품이라고 하죠. 더구나 그러한 상황은 단순히 2차 세계대전과 전체주의의 도래를 예언하는 데서 더 나아가 자본주의의 덫을 묘사하기도 하죠. <변신>에서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리고 돈도 벌어오지 못하는 자신이 가족의 천덕꾸러기가 되는 상황이잖아요. 이 때문일까요. 그가 이방인으로서 불안과 소외를 느끼는 것이 자본주의 시대에도 유효해요.
계란에 바위치기나 다름없는 싸움에서 스스로도 100전 100패를 예상하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천형 같은’ 소명을 부여받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굳이 그 길을 걸을 필요가 없고 누구도 그러라고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죠. 엄청난 권위를 부여받은 것도 아니어서 하찮아 보이는 모든 순간을 묵묵히 견디면서요.
그래요, 그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그냥 그걸 하고 있으면 기쁘고 자기 자신이 되는 것 같아서 놓지 못한 것이겠죠.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음에도요. 그 일을 결과와 상관없이 해내는 거죠. 그래서 천재는 결과로 말해지는 사람은 아니에요. 당장의 실패가 있더라도 그래서 영영 실패하더라도, 그 영감을 준 사람, 그런 존재가 천재인 것 같아요. 시대를 앞서간 사람. 나중에 성공하기도 하지만, 당시엔 그저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으로만 남아서 여전히 실패된 것으로 규정된 사건의 주도자일 수 있어요. 세상에 타격을 주고, 그다음을 상상하게 만든 인물이죠.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사회가 있어야 분명한 대항점을 만들 수 있고, 천재도 사회인이기에 사회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천재가 주도적이기 마련이에요. 세상의 변화는 여럿이 있기 전에 소수 혹은 고독하게 그 문제를 감지하고 몸부림을 쳤던 천재로부터 영감을 얻게 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천재가 먼저죠. 사회가 있어야 천재가 무엇을 극복할지 대항적인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지만, 그 역할의 비중이 천재 쪽이 주도적이니까요. 천재를 지우고는 창의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요.
이런 맥락에서 단순화해보면 천재는 대개 홀로 태어나는 거죠. 사회에 대비되어 태어난다는 점에서, 사회의 규칙이 완강하고 그 대비되는 새로운 영역이 헐거울 때 천재가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아져요. 사회가 엄격하고 완고할수록 그만큼 천재라 할 만한 경우가 드물어지지만, 아예 판을 뒤집어버리는 파괴자로 등장하는 블랙스완이 생기기도 해요. 천재는 사회를 압도하거나 주도하죠.
그때 사회의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어도, 결국 천재는 ‘스스로 천재하죠.’ 반대로 생각해보면 비범해 보이는 천재, 즉 사회에서 예측할 수 있는 천재는 천재라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진짜 천재는 낭중지추, 사회의 물결과 상관없거나 상관이 있더라도 그것을 타개하면서 등장한다고 믿어요.
물론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맞춰서 천재가 오기도 하지만, 그것을 압도하며 큰 변화를 주도하기도 하죠. 사실 그걸 아예 넘어서는 천재가 진짜 천재라고 생각하는 편이죠. 실제로는 드문 천재고요. 패러다임의 천재라고 해야겠죠? 그런 천재가 반드시 저주받을 필욘 없고, 세상이 조금 일찍 알아보거나 조금 늦게 알아볼 뿐인데, 그중에서도 사회에서 탈주하여 사회의 변화를 예비하는 존재들을 더 상찬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죠. 보통 그들은 하찮아 보여서 알아채기 어렵지만요. 너무 일찍 오는 바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