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민규 & 천재론2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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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민규: 서태지를 통해 본 천재란 개념의 가변성
그런데 대개 천재인지 아닌지 고민하게 되는 경우엔 시기에 따라 다른 처지로 전환되기도 하고, 또 범위에 따라 자기 집단에선 연예인 팬덤에서 엄청난 추앙을 받다가도 그 바깥으로 나설 때는 비판이나 무관심에 직면하기도 해요.
전 서태지 덕분에 그런 생각을 해보았죠. 올드 K팝을 찾아듣다가 서태지의 음악에 빠졌죠. 제게도 서태지는 오래 전 인물이지만 서태지는 정말 낡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왔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K팝이라 하면 보통 댄스음악 쪽이고 그 댄스음악의 정서를 거슬러가보면 90년대 서태지를 만나니까요. 힙합, 록, 헤비메탈, 뉴메탈, 일렉트로닉 등등 다양한 음악 문법이 뒤섞인 채 서태지만의 아기자기한 선율을 담아내는 게 특장점이죠. 듣기 편한데 배경의 사운드는 광포했죠. 가공할 인기였다고 들었어요.
사촌형에게 들어보니 90년대 초반에 그 인기는 광풍이라고 표현해야 하고, 사방에서 서태지의 <난 알아요> <하여가>가 울려 퍼졌다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6개월쯤 잠적했다가 컴백하는 행보도 당시로써는 독특했다고 하더라고요. 계속 잊히지 않기 위해 음반을 이어서 발표하면서 활동을 연결하는 분위기에 배치된 것이었죠. 당시 청소년들에겐 아티스트는 이런 거구나 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하던데, 그래서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끼쳤죠. 동시에 많은 비난에 시달렸고요.
숱한 표절 시비가 있었잖아요. 당시엔 유튜브 같은 매체가 없어서 해외에서 유행하는 것을 몰랐는데, 서태지를 싫어하는 사람들, 아니다, 우연히 서태지의 싫은 면을 발견해버린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서태지의 오점을 찾아내는 것에 힘을 쏟았던 것으로 보여요. 나중에 보면 좀 너무하다 싶은 해외 인기곡을 갖다 붙이고는 비난을 해댔으니까요.
실제로 모든 혐의 있는 작품 중 여전히 표절이 의심되는 작품이 있다고 하던데, 어떤 작품은 장르의 관습을 수용한 상태로 서태지의 선율이 절대로 죽지 않으면서 묘한 개성을 획득한 것에 주목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비슷한 분위기를 내기라도 하면 다 잡아서 죄를 묻는 형국인 것 같았어요. 사실 당시에 많은 아티스트가 해외 유명 인기곡을 연구하면서 작품을 내다보니, 교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달라서 표절이 아닌가 의심을 받곤 했죠. 헤비메탈과 뉴메탈을 적용했던 사례가 여기에 해당되지 않았나 싶어요. 갱스터랩을 적용한 히트곡의 경우엔 정말 좀 비슷하긴 해요.
서태지도 그런 맥락에서 표절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일 텐데, 너무 많은 장르를 빠른 시간 내에 학습하여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이겠죠. 또 인기가 너무 많다 보니 더 많은 공격을 받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마 그 자신이 해외 음악을 몰래 수입하는 것보다 이런 음악 장르를 사람들이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자기화해서 수입했다고 하던데, 그런 면에서 해외음악 수입상이란 비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보이죠. 당시에 유행하던 최신 음악을 수입하는 해외음악 수입상이란 비판도 표절 의혹만큼이나 대표적이었잖아요. 그걸 들으니 우리 학계에서 최신 유행 이론을 수입하는 서양 이론 수입상이라는 비판과 겹치더라고요.
해외음악 수입상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당대에 유행하던 미국 음악을 집중해서 듣고 끊임없이 잘게 쪼개서 분석하고 거기에 자기 선율이 어긋나지 않게 얹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봐야겠죠. 그럴 때 모든 면에서 개성적이면 좋겠지만, 결국 그러지는 못했어요. 그럼에도 절대로 서태지의 선율, 그 정서적인 면을 정확히 해석할 순 없지만, 서태지만의 개성이 분명하죠. 그걸 전 좋아하고요. 어떤 장르든 맞지 않은 선율이 배치되면 이물감이 들기 마련인데, 서태지의 곡들은 자연스럽게 들렸어요. 또 아무리 연주력이 뛰어난 음악가라도 선율 창작에 재능이 없으면, 그걸 억지로 감상하면서 좋은 음악이라고 최면을 걸어야 하던데, 서태지의 음악은 그렇지 않았어요. 적어도 제게는요. 지금의 아이돌 선율 감성의 상당 부분이 듀스와 함께 서태지에게서 기원한 게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까지 하게 되었죠.
개인적으로 서태지는 판매량에서 확실하게 압도적이었던 90년대까지 보편성을 획득한 데서 더 나아갔다고 봐요. 그 뒤로도 지속적으로 정서적 혁신에 기여했으니까요. 제 관점으로는 그렇게 생각해요. 마치 김승옥이 한글세대의 문학을 보여주면서, 그 이전의 문학과는 확연히 다른 정서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말이죠. 또 그러한 정서적 혁신이 그 이후 세대로 이어진 것이라 보듯이, 서태지도 한국 대중음악에서 그런 정도의 기여를 한 것으로 보았죠.
댄스 뮤직으로 음악 시장이 획일화되었다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그러한 비판을 잠시 접어두고, 댄스음악으로 재편된 K팝이라는 분야 안에서 서태지가 정서적 혁신을 했다고 보았죠. 그런 면에서 그는 확실히 패러다임의 천재 영역 안에서 검토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물론 그 패러다임의 전환이 과연 긍정적인가 하는 부분을 놓고 격론하다 보면, 천재로 상찬하자니 걸리는 부분이 생겨서 조금 더 검토하며 망설이던 시간도 겪었고요. 지금 와서 BTS가 세계적으로 K팝의 위상을 알리고 우리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세계로 진출한 교두보가 마련된 시점이다 보니, 조금 더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진 거죠. 2020년에는 피치포크에서 서태지 1집을 호출해서는 8.3점의 평점을 매기기도 했죠. 역대 K팝 중 최고 점수이자, 전체로 따져도 높은 점수인데 K팝의 원형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하죠.
다만 10년 뒤에는 어떻게 바뀔지 또 모르죠. 댄스음악으로 일변도가 되다 보니, 정작 그 수명이 짧게 된다면 다시금 시기별로 재평가 혹은 외면 받을 수도 있어요.